따뜻한 기술을 통한 더 나은 삶: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
인명을 구조하는 로봇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술 구현까지. 데니스 홍은 로봇이 실생활에 기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로봇공학자다. 그가 생각하는 인류를 위한 로봇의 정의와 역할, 더 나아가 그가 창조하는 따뜻한 기술이란 무엇일까? 과학자이자 SF 소설가인 곽재식이 데니스 홍을 만나 로봇의 현재와 인류와 공존하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곽재식
반갑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차 ‘데이빗’, 축구 하는 로봇 ‘다윈’, 소방 로봇 ‘사파이어’, 재난 시 인명 구조 로봇 ‘토르’ 등을 보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로봇을 만든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데이빗’의 운행 성공을 두고 〈워싱턴 포스트〉에선 ‘달 착륙에 버금가는 위업’이라고도 했죠.
데니스 홍
2009년 ‘데이빗’에 이어 2011년 ‘브라이언’을 만들었어요. 자동차가 센서로 정보를 수집하면 시각장애인 운전자에게 촉각적 자극을 전달해 정확한 운전을 지시하는 방식입니다. 시각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운전하면서 음악 듣고 옆자리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 말예요. 시각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똑같이 운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곽재식
개발 과정 중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데니스 홍
로봇 연구 개발 과정이나 결과에는 늘 실패와 저항이 있어요.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에 저항이 없을 수는 없어요.

로봇이란?
곽재식
그렇다면 로봇이 무엇인지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죠. 로봇의 기술적 정의로 센스, 플랜, 액트를 꼽으셨는데, 세 가지 조건을 적용해 보면 로봇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게 꽤 많아집니다.
데니스 홍
로봇이 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먼저 센스.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데, 사람의 경우 눈, 귀 등 감각기관을 통해 반응하는 것이죠. 로봇은 카메라 센서를 통해 환경을 인식하는 식이고요. 다음 플랜.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거예요. 사람으로 치면 뇌인 거죠. 마지막 액트. 판단한 후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일하는 거죠. 로봇이 걷거나 뛰거나 움직이거나 물건을 짚거나. 그럼, 스마트폰은 로봇일까요, 아닐까요?
곽재식
액트가 없어요.
데니스 홍
스마트폰에는 다양한 센서가 있죠. 카메라는 물론이고 가속도를 측정하는 센서들도 들어 있고요. 거기 담긴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과 판단을 하게 되죠. 폭탄 제거 로봇은 어떨까요? 움직이니까 액트, 카메라가 달렸으니 센스가 있지만, 판단할 수 없으니 플랜은 없는 거죠. 엘리베이터는요?
곽재식
무게를 감지해서 삑 소리를 내거나, 5층, 10층 같은 방향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움직여요. 엘리베이터는 로봇이다. 새로운 접근인데요.
데니스 홍
로봇을 정의할 때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지겨운 일(dull), 지저분한(dirty), 위험한 일(dangerous)에서 인간을 대신하기 때문에 따뜻한 기술이라는 거예요.
곽재식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분리수거 처리를 하잖아요. 가정이나 산업현장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완벽하게 분리된 게 아니라서 결국 쓰레기처리장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서 사람이 직접 분류해요. 쓰레기 소각장에선 태운 찌꺼기를 퍼내는데, 사람이 삽으로 합니다. 찌는 열기 속에서 견디며 해야 하는 힘들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죠.
로봇, 그리고 인간의 미래
데니스 홍
미래에는 우리의 2025년 현재 생활상을 기록으로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일을 인간이 했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곽재식
소위 ‘3D’로 불리는 일을 로봇이 대신한다면 훨씬 안전하고 효율성 있게 하게 될 겁니다. 한편으론 로봇으로 대체됐을 때 직업인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어요.
데니스 홍
로봇과 기계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 죽 있어온 논의예요. 미래를 봤을 때 두 가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첫째, 바뀌는 스피드가 가속화되는 것. 둘째,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직업이 기계나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거예요. 자동차를 발명하기 전에는 주유소나 정비소가 없었고, 자동차보험이란 게 없었어요. 우리 일상생활에 로봇이 들어서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종류로 새로운 직업이 생길 거라고 봐요. AI를 두고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의 직업은 AI에게 뺏기는 게 아니고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뺏기는 거라고요. 여기에 동의해요.
로봇에게도 윤리가 필요할까?
곽재식
로봇이나 로봇 관련 기술 중 중요하고 좋은 것임에도 주목받지 못해 아쉬운 게 있을까요?
데니스 홍
기술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윤리. 그게 제일 중요해요. 저는 뼛속까지 ‘공돌이’인 엔지니어죠. 하지만 이러한 인문학적인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로봇이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로봇이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이슈가 되는 걸 보면서 제 학생들과 한 달에 한 번가량 기사와 영상을 보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져요.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민하는 거죠. 늘 답이 있진 않아요. 하지만 기술을 개발할 때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곽재식
최근의 토론 가운데 기억나는 주제가 있습니까?
데니스 홍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다리가 넷인 로봇개를 출시했어요. 테스트 당시 로봇을 발로 차는 개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는데, 혹시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 봤나요? “로봇 학대”예요. 로멜라 연구소에서는 로봇을 발로 차면서 기술적인 테스트를 하고 로봇이 제어하는 것을 확인합니다. 일상적인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입니다. 여기, 지구가 납작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어요. 그는 지구에서 떨어질까 두려워 배 타고 항해하는 걸 겁내요. 공포심이라는 감정을 가졌으니 불쌍하다고 여겨야 할까요?
곽재식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가르쳐야죠.
데니스 홍
맞습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해요. 발로 차는 로봇을 보는 사람의 감정은 진짜지만 그에 맞춰서 로봇을 발로 차면 안 된다고 할 게 아닙니다. 로봇은 감정도 느낌도 없다는 걸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곽재식
로봇을 보호하려고 로봇 학대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무리 기계인 로봇이라도 함부로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는 게 맞습니다. 로봇은 로봇일 뿐이지만, 로봇을 사용하는 인간의 감정이나 윤리의식이 어디까지 갈지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기 때문에 가늠이 힘들 수 있어요. 어떠한 선은 정하는 게 맞다는 생각입니다.

진짜 로봇과 가짜 로봇, 그리고...
곽재식
데니스 홍이 로봇 공학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한 것이 영화 〈스타워즈〉잖아요.
데니스 홍
실제로 로봇을 다루게 되면서, 몸담고 있는 UCLA 로멜라 연구소에서 만든 로봇을 할리우드의 영화감독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많았어요. 다들 기술력에 감탄하는데, 실제 출연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그 이유는 그들이 CGI로 영화적 표현을 하기 때문이죠. 연기, 동작 등 표현을 할 수 있는 로봇 기술도 존재하지 않고요. 진짜 로봇을 설계할 때는 모든 디자인이 물리법칙에 따라야 하고 안정감 있게 걷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모든 디테일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영화상의 로봇들은 표현을 위해 그 모양이 결정되지요. 예를 들어 영화상으로 표현되는 로봇의 머리가 크면 움직일 때 휘청거려서 실제로는 현실적이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어려움들이 제게는 또 새로운 도전들이랍니다. 사실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하진 않았지만 할리우드의 어느 아주 유명한 영화감독과 함께 로봇을 위한 로봇을 개발 중이랍니다. 곧 극장에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곽재식
그렇다면 공상과학 장르를 보며 황당할 땐 언제인가요?
데니스 홍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타임머신 혹은 거대한 로봇인 마징가Z, 태권V 등 거대 로봇의 경우에는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크게 만들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요. AI 분야의 유명한 학자와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객석의 누군가가 로봇이 자의식을 갖고 사람을 해치면 어떡하냐고 질문했어요. 패널의 대답이 멋졌어요. 로봇이 사람을 해칠까 염려하는 건 마치 화성의 인구문제를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요. 화성에는 아직 사람이 살지도 않잖아요.
곽재식
미래의 언젠가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 인구문제로 고민할 수 있고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너무나 먼 일이기 때문에 미리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다, 그런 말씀인거죠?
데니스 홍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어때요? 소주 한잔 놓고요.
- 데니스 홍은 로봇연구소 로멜라의 소장이며,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 자동차 ‘브라이언’, 오픈소스로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다윈’, 헬륨가스 풍선으로 만든 ‘발루’ 등을 개발했다. 곽재식은 SF 소설가이자 과학자다. 과학 지식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 중이다.
- 인터뷰. 곽재식
- 에디터. 최정순
- 사진. 김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