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예찬
봄 하면 나물, 나물 하면 봄이다. 봄을 맞아 나물로부터 요리의 영감을 얻는 이들과 나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인에게 봄은 나물과 함께 온다.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탄생 설화에서 곰은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해 웅녀가 된다. 신화 속 마늘은 오늘날의 마늘이 아닌 나물류, 그중에서도 달래(또는 명이나물)로 추측되곤 한다. 쑥과 달래로 대표되는 나물이라는 존재는 이렇듯 한국의 역사와 정서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 겨우내 언 땅을 녹이며 봄을 알리듯 움트는 봄나물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사계절, 봄 그리고 나물
식탁에서 사계절 중 가장 다양한 나물을 접할 수 있는 계절, 봄. 나물은 한국 식문화의 고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재료이자 음식이다. 나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잎 그대로의 식재료를 지칭함과 동시에 데치고 삶고 찌는 등의 조리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봄나물, 산나물, 들나물, 잎나물과 같이 그 종류와 구분 방식도 채취 장소와 시기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요리의 근원을 나물에서 찾는 두 명의 ‘나물 전문가’에게 이렇게나 다양한 나물에 대해 물었다. 3년 연속 미쉐린 그린 스타(2021~2023), 빕 구르망 ‘황금콩밭’의 윤태현 대표는 나물과 함께하는 한 상 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연으로부터 뿌리 내린 콩과 채식 기반의 미식에 관심이 깊은 그에게 나물에 대해 묻자 가장 먼저 봄나물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에게 나물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싹트는 봄나물의 이미지로 가장 강렬하게 다가와요. 늦겨울이나 초봄에 들판과 야산에서 솟아나기 시작하는 나물과 순을 직접 캐고 따면서 향긋한 향을 통해 봄기운을 느꼈던 기억은 나물에 대한 정의 그 자체 같아요.”

실제 연구 결과 나물 중의 나물, 봄나물은 긴 겨울 동안 응축된 영양분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다른 계절에 비해 비타민, 미네랄을 비롯한 영양소가 더욱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응축된 영양과 향으로 먹는 봄나물이 주는 강렬한 맛은 나물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봄과 나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나물’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봄나물’이라는 각별한 단어가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 OurPla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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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던 TV 프로그램인 〈한국인의 밥상〉 취재 작가를 거친 음식 탐험가이자 지속 가능한 식문화를 고민하는 ‘아워플래닛’의 장민영 대표. 제철 음식만 한 보약이 없다는 말처럼 그녀가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계절성이다. 그리고 나물 요리는 그 계절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계절과 맞물려 그 단어만으로도 봄나물은 무언가가 태동하는 느낌을 주죠. 겨울에 미처 보지 못했던 새순과 싹이 올라오는 것에 대한 설렘도 있고요. 봄에 나물이 제일 맛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봄을 시작으로 여름, 가을까지도 푸성귀라고 할 수 있는 초록 나물이 굉장히 많아요. 나물을 먹는다는 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을 먹는 셈이죠.”

나물의 본질은 그 계절에 먹어야 하는 음식을 그 때에 맞추어 먹는 것. 제철 나물은 식탁 위의 작은 변주로 일상에 활력을 더해 찰나의 기쁨을 준다.


© OurPla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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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은, ‘익숙함’
그렇다면 어떤 봄나물을 탐닉해 볼까? 윤태현 대표는 봄나물로 가장 먼저 쑥을 소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력이 강한 쑥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쑥쑥’ 자란다. 흔한 나물이라 구하기 쉬우며 그만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그래서 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봄나물의 이름이다.
“쑥은 무침으로도 먹지만 국에 넣으면 향이 일품이죠. 해안가에서는 도다리와 함께 끓여 많이 먹고 해산물이 부족한 내륙에서는 된장국으로 즐겨 먹습니다. 제 어린 시절, 배고팠던 시절에는 봄에 쑥버무리를 해서 끼니 대신으로 많이 먹었어요. 오늘날 쑥은 나물 이상으로 새로운 맛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기도 하죠.”

윤 대표의 말처럼 쑥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된 한국의 독특한 맛 중 하나다. 독특한 향미와 색으로 전통적인 조리법을 따른 쑥떡부터 쑥 라테, 쑥 케이크 등 변주를 가미한 것까지 쑥 음식이 즐비하다.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다시 즐기고자 하는 ‘할매니얼’ 트렌드를 타고 새로운 ‘요즘의 맛’으로 부상했다. 다만 쑥의 경우 고유한 독성 때문에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종자에 따라 개인의 사용 외에는 판매가 금지돼 있고, 식용으로 사용하는 종류와 지역 또한 매우 한정적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한국의 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쑥은 초목 지대라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식물이지만 한국에서 자생하는 주된 종의 경우 타종보다 독성이 현저히 낮다. 특히 봄철에는 독성이 거의 없어 어리고 연한 잎을 자연스레 식품으로 활용해 왔다. 이렇듯 쑥처럼 봄이 되면 늘 떠오르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물이야말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걸맞아 보인다.
새순
봄에 흔히 접할 수 있는 다른 나물에도 주목해 보자. 장민영 대표는 나뭇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솟은 새싹인 ‘순’을 보며 봄의 기운을 찾는다.
“새싹, 특히 나무의 순은 시고 떫고 쌉싸름한 맛이 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선호하지 않는 향과 맛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맛을 가진 식재료를 조합해 미각의 균형을 맞추면서 생기는 기쁨도 있거든요.”

두릅부터 화살나무순, 다래순, 참죽나물 (가죽나물)까지. 어떤 이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나물 종류다. ‘봄나물의 황제’ 두릅은 겨우내 저장된 영양분이 가지 끝에 맺힌 것으로, 두릅나무(참두릅)의 어린 순이다. 화살나무는 나뭇가지가 마치 화살촉처럼 화살 끝에 달린 깃털 같은 독특한 모양을 가져 이런 이름이 붙었다. 화살나무의 가지 끝에 달린 새순, 화살나무순은 홑잎나물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다래순과 참죽나물 역시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긴 겨울을 이겨낸 나무가 새순으로 봄을 알리는 신호다.

- 글. 노소영
- 사진. 신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