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가 우리에게 거는 주문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매일 음악을 이야기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 그가 남긴 음악 메시지
단 한 번의 청취로 마음을 빼앗겼다. 진심으로 매혹적이었다. 거의 주술적이라고 할 만큼 사람을 휘어잡는 노래였다. 이 곡을 처음 접한 나는 그 어떤 장소에서든 후렴구를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 주문의 포로가 된 독자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한다. 주문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이콘의 탄생
아이콘이란 무엇인가. 스타가 불이라면 아이콘은 불을 머금은 불이다. 그리하여 예측 불가능한 폭발력으로 시대를 상징하고, 세대를 휘어잡는다. 먼저 로제 이전 블랙핑크의 등장을 떠올려보자. 자신감이 넘쳤다. 패기로 똘똘 뭉쳤다. 네 멤버의 ‘위에서 군림하는 듯’ 도도한 표정과 태도가 당대 수많은 음악 팬을 사로잡았다. 과연, 그것은 걸 그룹의 새로운 ‘도상(圖像, 아이콘)’이 팝의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순간이었다.
로제 역시 마찬가지다. ‘APT.’로 로제는 빌보드 ‘핫100’ 톱 3에 올랐다. 한국 여성 가수로는 가장 높은 순위다. 그녀는 이 곡으로 단번에 유튜브, 스트리밍, 쇼트폼 세대를 휘어잡았다. 그러고는 2024년을 상징하는 ‘아이콘(적 순간)’ 중 하나가 됐다.
여러분은 그것이 아이콘적 순간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는가. 내 기준은 이렇다. “이제 충분하니까 그만 좀”이라는 불평이 나오면 역설적으로 그것은 명백하게 ‘아이콘적 순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와 퀸의 음악이 그랬다. 그 외 수많은 아이콘적 순간이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반감을 낳았다. 따라서 ‘아파트’가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다른 곡 좀 듣자”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도리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아이콘적 순간이 아니라면 그러한 반감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제는 블랙핑크의 메인보컬이자 리드댄서다. ‘메인’과 ‘리드’, 즉 팀의 전위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우선, 재능이라는 영역에 있어 로제의 그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을 드러냈고, 2012년 시드니에서 열린 YG 글로벌 오디션에서 무려 7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재능이란 또 무엇인가. 무릇 빼어난 재능이란 개인적 자질의 단련인 동시에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어야 비로소 주목받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치열한 노력이 더해져야겠지만 여전히 조금 모자란다. 그렇다. 시대적 상황, 즉 운이 맞아야 한다. 여러분도 동의할 것이다. 700 대 1의 경쟁률을 이겨내려면 재능만으로는 쉽지 않다. 탄탄한 기본기가 더해져야 한다. 더불어 ‘선곡’과 ‘목소리 컨디션’ 등 이런저런 운이 운명이라는 이름 아래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이 모든 게 하나로 작동할 때 미래 아이콘의 씨앗은 움트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열아홉 살에 블랙핑크의 멤버로 첫선을 보인 뒤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빌보드를 포함한 전 세계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휘파람’과 ‘붐바야’를 시작으로 ‘뚜두뚜두(DDU-DU DDUDU)’(2018), ‘Kill This Love’(2019), ‘How You Like That’(2020) 등의 메가 싱글이 쉴 틈 없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아는 그 곡 ‘APT.’로 2024년 연말을 평정했다.
로제의 강점은 무엇보다 개성적인 음색에 있다. 어떨 때는 비성 섞인 목소리를 들려주다가도 곡에 따라 선명한 목소리 컬러로 변화를 줄 줄도 안다. 더 큰 강점은 그 어떤 곡을 들어도, 설령 모르는 곡이더라도 로제임을 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MBC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당시 판정단이 “가면 쓰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던 장면을 들 수 있다.
아이콘에서 스타로
마지막으로 라이브를 언급해야 한다. 2023년 로제는 세계 최대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에 블랙핑크의 멤버로 무대에 올랐고, 커리어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일관된 찬사가 이어졌다. 한데 코첼라는 쉽지 않은 무대다.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는 와중에 라이브, 그것도 녹음 반주가 아닌 밴드와 합을 맞추면서 노래해야 한다. 수만 관중을 휘어잡을 감정적인 설득력 역시 요구된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로제의 가창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라이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통제 속에 창조되는 예술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완벽한 라이브’라는 건 이를테면 유니콘 같은 것이다. 요컨대, 라이브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예술 행위다.
바로 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라이브의 한계를 관객의 인식에서 지워내고 환호를 이끌어내는 능력, 세상은 이걸 스타성이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음악과 무대로 시대와 세대의 엔진이 되는 그 순간을 세상은 “아이콘적이다”라고 표현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아이콘이란 재능, 노력, 운이 오직 삼위일체의 황금 비율로 섞일 때만 탄생하는 그 무엇이다. 블랙핑크가 일궈낸 여러 순간이 바로 그랬다. “아파트”라는 주문이 폭풍처럼 세상을 덮친 2024년의 연말 또한 그랬다. 그렇다면 이제 K-팝의 역사는 블랙핑크를 넘어 솔로로도 아이콘의 지위에 등극한 로제를 위해 별도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실 첫 장의 제목은 이미 써진 상태다.“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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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은 음악평론가이자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100장의 음반〉, 〈청춘을 달리다〉, 〈평양냉면: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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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의 앨범 〈rosie〉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내 ‘Korean Music’에서 청취가 가능합니다.
배순탁이 추천하는 로제의 곡들
Toxic Till the End (2024)
정규 1집 〈rosie〉의 간판 싱글. 수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흡사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듣는 듯하다. 로제만의 캐릭터가 휘발된 것은 아니지만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쨌든 테일러 스위프트로 대표되는 현대 팝의 흐름을 근사하게 반영했다는 점에서 첫 싱글이 될 자격만큼은 충분하다.
Number One Girl (2024)
차분하게 전개되다가 후반부에서는 파워 넘치는 보컬을 만날 수 있는 슬로 템포 싱글. 연주는 지극히 정제됐고, 최소주의 `프로덕션은 보컬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지독한 악플에 대한 반응 같은 노래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곡에서 로제는 1인칭 시점으로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토로한다.
Drinks or Coffee (2024)
미니멀한 비트에 따스한 질감을 지닌 사운드가 귀를 편안하게 한다. 자연스레 최신 R&B와 팝 장르에 대한 로제의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당대의 트렌드를 캐치해서 깊이 있는 주석을 다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대중가수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자질이다.
APT. (2024)
슈퍼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한 이 곡을 빼놓을 수 없다. 단순한 구조에 매력적인 후렴구 선율을 더해 세계적인 히트를, 그것도 한국 여성 아티스트 역사상 빌보드 최고 순위를 달성했다. 공개되자마자 유튜브를 휩쓸었고, 대중은 아파트 게임이 대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2024년 연말 이보다 더 거대한 곡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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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텔라, 그리고 봄
따뜻한 바람처럼 다가오는 포레스텔라의 〈그리고 봄〉. 클래식과 발라드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멜로디 위로 네 구성원의 하모니가 피어오른다. 설렘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이 곡은 계절의 변화를 닮아, 듣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흔든다. 봄이 오듯 서서히 스며드는 음악, 포레스텔라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수민 & 슬롬, MINISERIES 2
수민과 슬롬이 두 번째 합작 앨범 〈MINISERIES 2〉를 발매했다. 전작 〈MINISERIES〉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앨범은 펑키한 감성을 담은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슬롬은 수록곡 전반의 편곡을 맡아 굵직한 뼈대를 잡았고, 수민은 그 속에서 수많은 디테일을 만들어내며 곡의 채도를 높였다. 총 9곡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다양한 질감의 R&B로 연인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수민과 슬롬의 음악적 시너지를 입증한다.

스트레이 키즈, 合(HOP)
스트레이 키즈의 세 번째 정규앨범 〈合(HOP)〉. 여덟 멤버가 모여 이룬 조화의 ‘합(合)’과 힙합의 ‘합(HOP)’을 결합해 중의적 의미를 담아냈다. 타이틀곡은 강렬한 퍼포먼스와 사운드를 통해 이들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선보이며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솔로곡에는 공감 어린 스토리를 담아냈다.

켄드릭 라마, GNX
2025년 그래미어워즈 5관왕의 주인공 켄드릭 라마가 여섯 번째 정규앨범 〈GNX〉로 다시 한번 힙합의 본질을 묻는다. 묵직한 비트 위에 분노와 자부심 그리고 날카로운 서사가 얽혀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강렬한 메시지와 치밀한 프로덕션이 맞물려, 또 하나의 시대를 기록한다.

위키드: 더 사운드트랙
무대 위에서 수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던 뮤지컬 〈위키드〉의 마법이 영화와 함께 새로운 목소리로 다시 태어났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이리보가 선사하는 ‘Popular’과 ‘Defying Gravity’ 등은 원작의 감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더 깊어진 감성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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