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 April / 2025

우리가 사랑하는 여행 예능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를 답하는 이현민 평론가가 K-예능의 오늘을 바라본다.

지난 수년간 예능 콘텐츠의 소재는 다양하게 변모했다. 먹방, 쿡방, 집방, 연애, 여행까지. 변모의 와중에도 꾸준히 사랑받은 콘텐츠가 있으니, 바로 여행이다. ‘여행의 설렘’이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능 판과 닮았기 때문일까? ‘여행 예능’의 무한 변주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여행 예능의 시작과 진화

한국 여행 예능의 시초는 KBS의 〈1박 2일〉이다. 국내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기본 콘셉트를 지난 18년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1박 2일〉이 여행 예능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여행지는 단순히 예능의 무대이고, 그 여행지에서 미션 수행,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출연자 간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 콘셉트이기 때문이다.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은 한국 예능 역사의 주요 분기점이다. 〈1박 2일〉과 더불어 SBS 〈패밀리가 떴다〉, MBC 〈무한도전〉 해외 특집 등의 프로그램이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며 여행지의 매력을 소개했다. 이들 프로그램의 주요 공통점은 여행을 배경으로 하되 ‘리얼버라이어티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출연진 간의 케미, 미션 수행, 버라이어티적 재미를 구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 예능이라기보다는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예능 형식에 여행이라는 소재가 가미된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웹툰 작가 기안84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음악적 영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예능. 자유로운 여행과 음악 창작을 결합해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인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2010년대부터 여행 콘텐츠의 형식은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여행(투어)’ 자체가 여행 콘텐츠의 중심이 된다. 2010년대가 돼서야 진정한 여행 예능이 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지가 중심이었던 프로그램들이 해외로 장소를 확장하면서 여행 예능은 더욱 본격화됐다. 나영석 PD 사단이 시작한 〈꽃보다〉 시리즈가 성공적인 해외여행 예능의 신호탄을 쏘았다. 〈꽃보다〉 시리즈가 다양한 여행지, 출연진, 콘셉트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투어’ 형식을 빌린 예능들이 연이어 제작됐다. 여행 경로와 일정이 촘촘하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소개하며, 그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유형이다.

tvN 〈짠내투어〉나 KBS 〈배틀트립〉 등이 해외의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탐방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먹방도 강조했다. 2010년대 여행 예능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비예능인으로만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의 시작에 있다. 예능인보다는 ‘배우’를 주요 출연진으로 기용하면서, 이전에 추구하던 웃음과 방향성이 달라진 것이다.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했던 리얼버라이어티 형식의 웃음에서 벗어나 소소한 에피소드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웃음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일상생활 같은 여행은 더 큰 재미를 유발했다. 이는 여행 예능의 색깔과 콘셉트도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이 주는 대리만족과 힐링이 중심이 되고, 웃음과 감동을 함께 선사하는 서사 중심의 여행 콘텐츠가 리얼버라이어티형 여행 예능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여행과 예능의 트렌드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악재는 여행 콘텐츠와 트렌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더불어 OTT 플랫폼의 확산은 콘텐츠의 제작과 소비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며 여행 예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유튜브식 여행 예능이 예능 판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OTT 스타일 여행 콘텐츠, 자유·무계획·도전의 포맷이 여행 예능의 대세로 등장한 것이다. 이제 흔한 여행지를 흔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더 이상 이목을 끌지 못한다.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콘텐츠, 리얼, 짠 내, 사람 냄새, 생생한 여행 정보가 시청자들의 니즈가 된 것이다. 또 코로나19 이후 급부상한 한 달 살기 열풍은 ‘계획 없이 떠난 그곳에서 현지 스타일로 살아보기’와도 맞물려 창의적이고 몰입감 있는 콘텐츠로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최근 인기 여행 예능 〈태어난 김에〉 시리즈가 있고, 〈텐트 밖은 유럽〉 시리즈, 〈핀란드 셋방살이〉가 뒤를 잇는다. 이들은 호텔,고급 레스토랑, 관광 명소에서 벗어나 캠핑과 현지인들의 자연 숙소를 활용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현지에서의 삶을 직접 경험하는 형태로 여행을 확장했다. 특히 시청자들이 가장 대리만족을 느끼는 ‘해외 캠핑’과 ‘현지인처럼 살기’라는 핵심 콘셉트를 유지하며 보다 깊이 있는 여행의 매력을 선사한다.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의 경우 미국 전역을 즉흥적으로 여행하며 ‘음악’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음악은 부차적인 요소이고, 무계획과 현지 체험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또 〈핀란드 셋방살이〉와 〈텐트 밖은 유럽〉 시리즈처럼 텐트를 치며 유럽 여행을 하거나 오두막에서 현지에 녹아든 삶을 살아보면서 일상의 쉼표 같은 여행과 소소한 행복을 조명한다. 즉, 리얼하고 짠 내 나지만 관계와 환경에 집중하며 ‘느리게 살아가기’라는 메시지를 통해 일탈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더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여행 예능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여행이 주는 설렘과 감동이다. 훌쩍 떠나는 게 현실 생활에서 쉽지 않지만, 여행 예능이 있기에 잠시나마 그 열망을 대리 실현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열망이 자꾸 커지면, 예능의 여행 코스를 따라 한 번쯤 떠나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얻는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여행 예능을 계속해서 찾아보는 이유가 아닐까?

  • 이현민은 문화콘텐츠학 박사로 대중문화 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다. 저서로는 〈키워드로 보는 콘텐츠 대중문화〉,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공저) 등이 있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텐트 밖은 유럽 - 로맨틱 이탈리아
배우들이 유럽 각지를 캠핑과 로드 트립으로 돌며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여행 예능. 라미란, 곽선영, 이주빈, 이세영이 보여주는 궁상과 낭만 사이 캠핑 적응기가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핀란드 셋방살이
핀란드의 셋방에서 자급자족하며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는 리얼리티 여행 예능. 이제훈, 이동휘, 곽동연, 차은우가 전기, 수도,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며 핀란드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고 소소한 일상과 힐링을 선사한다.

TV PREVIEW

© 2024 SLL Joongang, Co., Ltd. All rights Reserved.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

냉장고 문이 다시 열린다. 셰프들의 즉흥 요리 대결과 스타들의 솔직한 식생활 공개로 사랑받은 〈냉장고를 부탁해〉가 시즌 2로 돌아왔다. 제한 시간 15분, 오직 출연자의 냉장고 속 재료만을 활용한 요리 배틀이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출연 셰프들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더 강력해진 셰프 라인업과 예측 불가능한 특별한 한 끼가 준비된다.

© 2022 Masayuki Qusumi, Jiro Taniguchi, fusosha/TV TOKYO

고독한 미식가 시즌 10

수입 잡화점을 운영하는 이노가시라 고로(마쓰시게 유타카)는 오늘도 공복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맛집을 찾아 나선다.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를 원작으로, 2012년 첫 방송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화려한 스토리 대신 디테일한 음식 묘사와 주인공의 솔직한 독백이 주를 이룬다. 소소한 위트는 덤. 대부분이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독특한 모노드라마 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 Coupang Play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일본 유학 중이던 홍(이세영)은 준고(사카구치 켄타로)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갑작스러운 이별로 상처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5년 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준고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재회하게 되는 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 BBC Studios 2025

더 그레이트 브리티시 베이크 오프 시즌 15

2010년 첫 방송 이후 10년 넘게 사랑받아온 더 그레이트 브리티시 베이크 오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서바이벌’이라는 명성을 이어가며 긴장보다는 달콤한 웃음이 가득한 이 쇼는 실수조차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 CJ ENM

2024 마마 어워즈

K-팝이 다시 한번 세계를 울렸다. 일본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개최된 2024 마마 어워즈가 글로벌 음악 시상식으로서 위상을 더욱 확고히 했다. 더 큰 무대로 확장해 나가는 무한한 가능성의 K-팝, 그 뜨거운 순간을 돌아본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Share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