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조민석
도시는 늘 먼저 변하고, 건축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자리를 잡는다. 조민석 건축가는 이 느린 간극 속에서 장소의 기억을 읽고 사회의 상태를 관찰하며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을 조심스럽게 설계해 왔다. 1970년대 아파트 복도에서의 추억부터 세계적인 서펜타인 파빌리온까지, 그가 설계한 공간에는 늘 ‘함께’라는 화두가 흐른다.
Q. 건축가 조민석의 출발점을 돌아봤을 때, 지금의 작업 세계를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민석⎮ 아주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5층짜리 아파트는 지금과 달리 ‘수직 마을’에 가까웠어요. 계단과 복도를 오르내리며 이웃을 모두 알고, 그 공간에서 놀고 생활하던 경험이 있었죠. 엘리베이터도 없는 좁은 복도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빨래를 널고 김장을 하던 그 풍경은 강남 개발 이후의 개인화된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커뮤니티의 원형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거대한 인공 구조물 안에서도 공동체의 온기와 서사가 생겨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운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이 제 건축 세계에 무의식으로 남아, 현재 설계하는 대규모 건축물에서도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Q. 비교적 안정적인 커리어 경로 대신 다른 선택들을 해오셨습니다. 그중 잘한 선택 하나를 꼽는다면요.
조민석⎮ 당시에는 늘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호기심을 따라간 선택’들이었습니다. 뉴욕을 떠나 네덜란드 OMA로 간 것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모두 그렇습니다. 결정의 순간마다 계산을 하기보다는 ‘이걸 안 해보면 평생 궁금하겠다’는 마음이 더 커서 그에 따랐던 것 같아요.
Q. 뉴욕에서 활동하다 갑자기 네덜란드의 OMA로 옮긴 선택이 독특합니다. 당시 어떤 마음이셨나요?
조민석⎮ 커리어라기보다 개인적인 갈망이 컸습니다. 처음에는 뉴욕 생활에 적응하느라 OMA의 제안을 거절하고 후배를 대신 보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두세 달 동안 밤잠을 설칠 정도로 후회했어요. 결국 다시 전화를 걸어 렘 콜하스와의 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죠. 두고두고후회할 뻔한 선택을 되돌린 셈인데,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소중한 친구들과 스승을 만났고 그들이 제 인생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Q. OMA에서 보낸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건축가 조민석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요?
조민석⎮ 강도 높게 일하다 보니 2년 반이 7년처럼 느껴졌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세상을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눠 보곤 했는데,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훨씬 복합적으로 바라보게 됐죠.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결론과 함께, 편향되지 않은 시야를 갖게 된 것이 가장 고마운 부분입니다.
Q. 네덜란드 건축계는 건축가를 철학가로 대우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는 어떠했나요?
조민석⎮ 특별히 네덜란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논리성을 바탕으로 깊게 사고해야 하죠. 네덜란드는 간척지라는 환경적 특성상 인간의 합리성과 과학을 믿는 실용주의적 전통이 강합니다. 모든 것을 팩트로 이해하려는 합리성이 때로는 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아주 특별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네덜란드의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Q. 조민석 건축의 특징으로 ‘이야기성’과 ‘맥락 읽기’가 자주 언급됩니다. 설계에서 가장 먼저 읽으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조민석⎮ 대부분의 경우 공간은 어떤 ‘사건 현장’처럼 주어져 있습니다. 특히 도시에서는요. 그래서 저는 탐정처럼 그 장소의 과거를 더듬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를 만났을 때는 그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는 ‘동화’ 같은 서사를 상상하고, 반대로 도시의 무질서한 환경을 만났을 때는 과거를 추적하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고민하죠. 여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먼저 이해하려고 해요. 그다음에야 비로소 건축이 개입할 자리가 보인다고 할까요.
Q. 서펜타인 파빌리온 설계에도 그런 철학이 반영되었나요?
조민석⎮ 맞아요. 당시에는 파빌리온이 건축가 개인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뽐내는 장이 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대신 누구나 들어와서 즐길 수 있는 ‘한국식 멍석’을 깔아주고 싶었어요. 건축가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사회성을 조직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Q. 공공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경험하는 동안 ‘좋은 공공 건축’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셨을 것 같습니다.
조민석⎮ 공공 건축은 건축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무대라기보다,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솔직해야 하고, 동시에 희망을 담아야 합니다.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되고 싶은 모습’을 제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Q.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는 그런 고민이 집약된 프로젝트처럼 보입니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원칙은 무엇이었나요?
조민석⎮ 이 공간이 지닌 시간의 층위를 지우지 않는 것이었죠. 예산과 일정의 제약이 많았지만, 적어도 외형과 구조만큼은 이 장소의 기억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화려한 외관보다는 많은 사람이 내 집처럼 자주 찾아와 사회적 유대감을 촉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러 행정적 변수와 예산 문제로 2027~2028년 개관을 예상하고 있지만,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상태죠.
Q. ‘한국적인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조민석⎮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존경하는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는 전통이 “변화를 내포한 것”이라고 말했죠. 결국 중요한 건 지금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정직하게 담아내는 일입니다. 건축은 시대의 자화상이니까요.
Q. 변화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건축이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할까요?
조민석⎮ 건축은 본질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행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영역이 아니죠. 오히려 긴 호흡으로 가야 합니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남는 질문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지금의 조민석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조민석⎮ 결국은 호기심입니다. 성취에 대한 욕망도, 문제의식도 모두 호기심에서 출발하죠.선택을 했다면 그다음에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요. 다만, 너무 아름다운 장소 앞에서는 호기심을 앞세우기보다 그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으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Q. 후배 건축가나 젊은 창작자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전한다면요.
조민석⎮ 사실 조언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면, 젊었을 때 조금 더 겸손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합니다. 자신보다 앞서 경험한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랄까요.
Q. 조민석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조민석⎮ 장소와 ‘좋은 짝’을 이루는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걸 ‘세상과의 바둑두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장소가 지닌 고유성을 망가뜨리지 않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더하는 것.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끝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 글. 한미림
- 사진. 박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