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 April 2026 (Vol. 50 No. 02)

'어쩔수가없다'라는 선택

한국 영화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김혜리 기자에게 물었다. “비행 중에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까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2025)는 준비 과정에서 오랫동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원작 소설 제목 〈액스〉를 가제로 썼다. 기획한 지 20년 만에 완성된 영화 제목이 최종 결정되었는지 물었을 때 박찬욱 감독은 대답했다.

“〈어쩔수가없다〉입니다. 그런데 띄어쓰기 없이!”

어째서 띄어 쓰면 안 되는 걸까? 짐작한 바가 있긴 하다. 박찬욱 감독은 극 중에서 여러 인물이 내뱉는 “어쩔 수가 없다”라는 문장이, 뇌가 생각이란 것을 하기 전에 우리의 입에 달라붙어 버린 일종의 감탄사로 들리기를 바란 것 같다. 모두가 한숨 쉬듯 훅 내뱉고 돌아서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고.

‘어쩔수가없다’ 주의

제지회사에 25년 근속한 현장 관리자 만수(이병헌)는 아내 미리(손예진)와 남매 그리고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로 이루어진, 홀마크 카드 도안 같은 가정의 가장이다. 다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순간 만수는 회사를 인수한 새로운 경영진으로부터 정리 해고 통보를 받는다. 사측의 해고 사유는 물론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시적일 거라 믿은 구직 기간은 기약 없이 늘어나고 아내 미리가 과거 직장에 재취업하고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 상황까지 오자, 만수는 어쩔 수가 없어서 유령 종이 회사의 구인 광고를 내 구직 경쟁자를 하나씩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 만수가 “어쩔 수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투쟁을 소재로 삼은 한국산 텍스트 〈기생충〉, 〈오징어 게임〉과 쉽게 한 그룹으로 묶이지만, 〈어쩔수가없다〉는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에 쫓겨서가 아니라 다만 중산층으로부터 낙오하지 않기 위해 개인이 어떤 행위까지 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는 점에서 관심사가 조금 다르다. 만수는 고용주와 자본의 냉혹한 배신을 한탄하면서도 자기를 바꾸거나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와 연대하는 길이 아니라 경쟁자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만수는 그가 증오해 마지않던 자본주의의 속성,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고 효용성이 가치를 압도하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체화한 셈이다.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처럼.

© Illustration by Kim Sihoon

박찬욱식 폭력의 구조

결과적으로 〈어쩔수가없다〉는 살인의 계획을 한 칸씩 완수해 가는 상승 운동과 만수와 가족의 도덕적 추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충돌의 구조를 취한다. 〈아가씨〉(2016), 〈리틀 드러머 걸〉(2018), 〈헤어질 결심〉(2022)을 거치며 유려하고 우아한 양식미를 꽃피운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에 이르러 장면을 충돌시키는 편집과 소리에 소리를 덧칠하는 사운드 디자인으로 만수의 폭주를 그린다. 만수의 첫 번째 희생자 범모의 집에서 1980년대 히트 가요 〈고추잠자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벌어지는 슬랩스틱 시퀀스라든가, 상점의 차임벨이 연신 대사를 훼방 놓는 구둣가게 장면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 연쇄 살인극이 캐릭터들이 사막에서 쫓고 쫓기는 <루니 툰즈>같은 인상을 준다면 사운드와 음악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극 중 세계에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는 대화를 거부하는 만수와 미리의 딸 리원의 첼로 연주 정도인데, 가족의 도덕적 공백을 흡수하는 소실점 역할을 하는 이 어린 첼리스트는 가족 대신 반려견들에게 처음으로 온전한 연주를 들려준다. 아직도 많은 관객이 박찬욱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긴장하지만 〈어쩔수가없다〉의 폭력은 수위로 차별화되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은 직접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적나라한 위해보다 타인을 사물처럼 다루는 태도를 폭력성의 핵심으로 짚는다. 특정한 방식으로 묶인 시신의 이미지, 토사물을 살인의 도구로 사용하는 선택은 관객을 불쾌의 계곡으로 슬쩍 밀어 넣는다.

© Illustration by Kim Sihoon

인간의 조건을 말하기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만수는 자동화된 제지 공장의 유일한 인간 노동력으로 채용된다. 관객은 그가 단지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만수는 자동화가 더 진행되면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 고용주에게 묻지 못한다. ‘어쩔수가없다 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문화 비평가 마크 피셔가 발명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떠오른다. 자본주의를,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회 조직 방식으로 믿어버리는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사회적 모순을 구조 개선 대신 개인의 테라피로 해소한다거나 공공기관이나 예술까지 기업의 언어로 운영하는 현상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부산물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순응한 우리는 변화한 미래를 상상할 능력을 잃는다. 계급 이동의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 양극화 환경에서 개인에게 남겨진 선택지가 시스템에 사기를 치거나 완전히 이탈해 버리는 것 정도다.

〈어쩔수가없다〉로 전자의 길을 보여준 박찬욱뿐 아니라 21세기의 많은 영화 작가는 길이 끊긴 절벽 앞에 선 듯한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시라트〉는 사막의 레이브(비트가 강한 전자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는 파티) 참가자들을 통해 주류 사회를 탈주한 이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한편, 생존을 둘러싼 싸움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시대극 〈씨너스: 죄인들〉에서 아일랜드계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보여주듯 약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십상이다.

〈어쩔수가없다〉의 결말에서 로봇에 둘러싸인 공장으로 처음 출근한 만수는 경영진이 불필요하다고 말했음에도 과거 직장에서 했던 대로 거대한 종이 두루마리를 막대로 두드린다. 지금 그는 말하자면 환지통을 앓고 있다. 곧이어 만수의 외로운 실루엣을 삼켜버리는 육중한 암흑이 오히려 자비롭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균열이 불러온 거대한 파장, 〈어쩔수가없다〉를 닮은 수작들

복수는 나의 것 (2002)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 여파 속에 신자유주의 체제에 관한 질문을 던진 박찬욱 감독의 첫 번째 복수 영화다. 장기 밀매 업자에게 신장을 도둑맞은 노동자가 돈을 받는 즉시 돌려보낼 요량으로 중소기업 사장의 딸을 유괴하지만, 행동의 결과는 의도를 넘어선다. 〈박쥐〉(2009)와 더불어 박찬욱이 발견한 배우 송강호의 색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1988)

〈어쩔수가없다〉는 어설픈 범죄자를 중심에 둔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설정은 영국 일링 스튜디오 코미디가 종갓집이다. 일링 코미디의 유산을 계승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는 보스가 투옥된 동안 다이아몬드를 차지하려는 도둑들의 좌충우돌을 따라간다. 국민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자조하는 영국식 코미디의 진수다.

파고 (1996)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자동차 영업맨 제리는 돈이 급해 아내의 납치를 사주하고 부자 장인에게 몸값을 받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희생자가 발생하자 만삭의 경찰서장 마지 건더슨이 느리지만 성실한 수사에 나선다. 추악한 인간 행위 가운데를 터벅터벅 걸어가며 냉소에 지지 않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가 백미다.

비밀은 없다 (2016)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신진 정치인의 10대 딸이 선거를 앞두고 실종된다. 남편의 소극성에 실망하고 딸을 찾아 나선 엄마 연홍은 숨겨진 진실과 동시에 자신의 본령을 찾아간다. 〈어쩔수가없다〉의 영혼을 담당하는 미리 역의 배우 손예진이 주연한 한국 영화의 숨은 보석이다.


MOVIE PREVIEW

#역사와권력

뉘른베르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독일 전범 헤르만 괴링(러셀 크로)의 전쟁범죄 책임을 묻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린다. 미 육군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켈리(라미 말렉) 대위는 재판에 앞서 수감자들의 정신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되고, 그 과정에서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링과 직접 면담을 진행한다. 점차 형성되는 미묘한 유대와 심리적 긴장 속에서 켈리는 혼란에 빠진다.

남산의 부장들

남산 자락에 자리한 중앙정보부, 이른바 ‘남산의 부장들’은 박 대통령(이성민)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핵심 권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제2인자 김규평(이병헌)이 있다. 그러나 전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의 폭로와 회고록 출간 소식, 그리고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의 부상으로 그의 입지가 급격히 흔들린다. 권력 내부의 긴장과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1917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 모든 통신망이 끊긴 전선에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가 단 하나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부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에린 무어 장군(콜린 퍼스)의 중지 명령을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전달하는 것. 제한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1600명 아군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저스트 머시

젊은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마이클 B. 조던)은 인종적 편견 속에서 부당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월터 맥밀런(제이미 폭스)의 사건을 맡는다. 그는 명백한 증거와 증언이 존재함에도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며, 깊게 뿌리내린 차별에 계속해서 맞서 싸운다. 끈질긴 법정 공방과 외로운 설득의 과정에서 확고한 신념이 어떻게 한 개인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화 기반의 법정 드라마.

콘클라베

교황의 예기치 못한 죽음 이후, 바티칸에서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선거 ‘콘클라베’가 시작된다. 선거를 총괄하는 단장 로런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즈)은 교황의 선종 경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마지막 행적과 숨겨진 정보들이 단순하지 않음을 감지한다. 이어 주요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드러내며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생존을위한게임

© NEW
© CJ ENM

인질

평소와 다르지 않던 어느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톱배우 황정민(황정민)이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납치된다. 잔혹한 범죄 전력이 있는 최기환(김재범)을 중심으로 한 일당이 그를 결박한 채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고, 황정민은 제한된 시간 안에 살아남기 위해 이들과 위험한 심리전을 벌인다.

조작된 도시

게임 속에서는 완벽한 리더지만 현실에서는 무직인 청년 권유(지창욱)는 피시방에서 우연히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갑자기 잔혹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고, 모든 정황과 증거가 정교하게 그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누구도 권유의 결백을 믿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게임 멤버이자 해커인 여울(심은경)이 이 사건이 단 3분 16초 만에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 2026 Universal Studios

프레디의 피자가게 2

괴담 속에 묻혀 폐업했던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수십 년 만에 문을 열자, 그곳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신형 애니메트로닉스들도 함께 깨어난다. 더 기괴해진 이 존재들은 이제 거리와 축제, 학교 등 일상 공간으로 공포를 확장시키며 세상을 위협한다. 게임 원작 특유의 어둡고 기계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이 붕괴되는 순간의 공포가 엄습한다.


#프랜차이즈_블록버스터

© 2022 Warner Bros. Ent. All Rights Reserved TM & © DC
© 2018 Paramount Pictures

샤잠! 신들의 분노

마법의 주문 한마디로 슈퍼히어로가 된 평범한 소년을 통해 성장과 책임의 의미를 유쾌한 액션과 가족 서사로 풀어낸 DC 히어로 시리즈 〈샤잠!〉의 속편. 신들의 힘을 얻은 빌리 뱃슨(애셔 에인절)과 친구들은 슈퍼히어로로서의 삶을 즐기지만, 인간에게 빼앗긴 힘을 되찾으려는 아틀라스의 딸들, 헤스페라(헬렌 미렌)와 칼립소(루시 리우), 앤시마(레이첼 지글러)가 등장하며 세상은 다시 한번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범블비

1987년, 오토봇 한 대가 기억을 잃은 채 낡은 폭스바겐 비틀로 변신해 캘리포니아의 폐차장에 숨어든다. 소녀 찰리(헤일리 스타인펠드)는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하다 자동차가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그에게 ‘범블비’라는 이름을 붙이며 특별한 유대를 쌓아간다. 트랜스포머 유니버스의 스핀오프작.

© 2025 Lions Gate Entertainment Inc. and affiliated companies.

나우 유 씨 미 3

화려한 마술과 대담한 사기로 권력자들의 비리를 폭로해 온 마술사기단 ‘포 호스맨’은 훔치고 속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독특한 조직이다. 은퇴 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이들 앞에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카드가 도착하고, 멤버들은 자신들을 모방하던 신예 마술사들까지 합류시켜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


#다시_출발선에서

© 2009 DW STUDIOS L.L.C. and COLD SPRING PICTURES.
© 2026 Beginners Movie LLC.

인 디 에어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삶 속에서 고독과 거리두기를 기조로 살아온 인물이다. 천만 마일리지를 목표로 비행기와 호텔을 전전하던 그는 온라인 해고 시스템을 제안하는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와 자유로운 연애관을 지닌 알렉스(베라 파미가)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관계와 책임, 그리고 삶의 목적을 두고 고민에 휩싸인다.

비기너스

자신만의 세계를 지닌 올리버(이완 맥그리거)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할(크리스토퍼 플러머)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75세의 나이에 커밍아웃하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올리버는 아버지의 솔직한 삶을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게 된다.

© Showbox
© Warner Bros. Discovery, Inc.

퍼스트 라이드

24년 지기 태정(강하늘), 도진(김영광), 연민(차은우), 금복(강영석)은 첫 해외여행으로 태국 파타야로 떠난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태정의 동생 친구 옥심(한선화)이 합류하며 여행은 시작부터 어긋나고, 예상 밖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라이프 오브 더 파티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로 삶의 균형을 잃은 디애나(멜리사 매카시). 미뤄두었던 대학 졸업을 위해 딸이 다니는 학교에 다시 입학한 그녀는 낯선 캠퍼스와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좌충우돌을 겪지만, 특유의 솔직함과 에너지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고 자신감을 회복해 간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Share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