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 February 2026 (Vol. 50 No. 01)

천년의 빛, 나전

천년을 이어온 나전 칠기는 조개껍데기가 머금은 경이로운 오색 광을 예술로 승화했다. 자개(螺)와 옻칠(漆)의 조화 속에서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지혜와 지극히 섬세한 장인정신을 발견한다. 시간을 초월해 빛나는 한국 공예의 정수, 나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 Future Heritage K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독창적인 것이라는 바탕 생각 아래 과거의 지혜와 미학이 오늘의 창작 안에서 어떻게 새로운 미래 유산으로 진화하는지를 살펴보는 칼럼이다.

나전칠기, 오색 광의 미학

소라를 뜻하는 라(螺)와 머리를 장식하는 비녀를 뜻하는 전(鈿)이 결합된 나전(螺鈿)은 조개껍데기 내면의 영롱한 층을 세밀하게 갈아내어 기물에 상감하는 전통적인 장식 기법이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이를 ‘자개’라는 고유어로 불렀으며, 칠기(漆器)와 결합된 ‘나전칠기’는 한국 칠공예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자개를 활용한 공예가 발전했지만, 한국의 나전칠기는 자개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정교한 상감기법에 몰입했다는 점에서 뚜렷이 차별화된다.

나전칠기를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인 칠기는 나무, 종이 등의 바탕재에 옻나무 수액을 여러 번 덧발라 완성한다. 옻칠은 탁월한 견고성과 방수성은 물론 항균성까지 지녀 생활용품의 보존성을 크게 높인다. 나전칠기는 이처럼 견고한 옻칠의 표면에 영롱한 자개가 만개(滿開)한 형태의 예술품이다.

자개가 경이로운 오색 광을 발산하는 원리는 주성분인 탄산칼슘의 무색 투명한 결정이 빛과 조우할 때 발생하는 프리즘과 같은 색광 현상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청록빛이 감도는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주로 활용했으며, 예로부터 남해에서 채취한 색패(色貝)를 최상의 재료로 꼽았다. 이 오색 광의 스펙트럼이야말로 한국 나전칠기 아름다움의 핵심이다.


나전칠기는 기본 틀 제작, 옻칠, 자개상감, 재건조 등 수많은 반복 공정을 거쳐야 해 완성까지 짧게는 수십 일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 Shin Gyuchul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자개는 주로 전복, 소라, 진주조개 등을 사용한다.
© Shin Gyuchul
얇게 자른 자개를 기물에 붙이고 있는 손대현 장인의 모습
© Shin Gyuchul

섬세함의 정점

한국 나전칠기의 뛰어난 기술력과 미적 완성도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고려 나전의 위상은 11세기 문종이 요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진상했다는 〈동국문헌비고〉의 기록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1123년, 고려를 찾은 송나라 사신 서긍은 저서 〈선화봉사고려도경〉을 통해 고려 나전의 기술적 경지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나전 기술은 지극히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는 뜻의 ‘세밀가귀(細密可貴)’라는 표현으로 한국 나전칠기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묘사했다. 이 찬사는 훗날 고려 나전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수사(修辭)로 자리 잡았다. 나전칠기의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을 구현하는 데에는 줄음질과 끊음질이라는 두 가지 핵심 기법이 동원된다. 줄음질은 실톱이나 줄을 사용해 자개를 오려 붙이는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곡선이나 꽃, 동물, 산수 등 유기적인 형상을 표현할 때 특히 숙련된 줄음질 기술이 요구된다. 자개를 실처럼 얇게 켜서 끊어 붙이는 끊음질은 직선적이고 규칙적인 국화문, 귀갑문(거북등문) 등 기하학적인 연속 패턴을 만드는 데 주로 활용된다.

이 두 기법은 장인의 손 기술을 거치며 한국 나전칠기 특유의 독창적이고 섬세한 미감을 완성하는 근간이다. 나전칠기 한 점에는 백 번, 천 번을 넘어 때로는 만 번에 달하는 정교한 손길이 요구되며, 이는 나전공예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장인 예술의 영역임을 입증한다.

나전칠기 기법으로 제작된 한국의 전통가구,자개장의모습. 붉은 칠 위에 조개껍데기를 얇게 썰어 붙여 정교한 무늬를 표현했다.
© Shin Gyuchul

이어지는 오색 빛

작은 모란문이 정교하게 장식된 고려 후기 〈나전경함〉, 보물 제197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대 나전장 최상훈 〈나전칠 모란넝쿨문 합〉,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근대에 들어 나전칠기는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서양식 가구와의 접목이 시도되고 수출용 공예품으로서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기계화와 분업화를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전통 문양과 서구적 장식 요소가 혼합되는 등 새로운 미감이 탄생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중심에 자개장이 있었다. 자개장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대표적인 나전칠기 가구로, 전통공예 기술과 서양식 가구 양식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했다. 대체로 2~3층 구조의 장롱 형태로 제작됐으며 문양에는 십장생, 봉황, 모란 등 길상적(吉祥的) 상징이 빠짐없이 사용됐다. 이는 단순한 미적 장식을 넘어 장수, 부귀, 자손 번창 등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선조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1920~1960년대 사이, 자개장은 ‘기와집 한 채 값’에 비견될 정도로 고가였으며, 혼례문화 속에서 신혼 가정의 품격과 경제적 위상을 상징하는 지위재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근대 나전칠기의 혁신을 주도한 주요 인물은 한국 최초의 나전장(螺鈿匠)인 수곡 전성규(1880~1940)였다. 그는 근대적 도안 도입과 공업용 실톱 확산을 통해 나전칠기의 산업화와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후학 양성에도 힘써 한국 나전칠기의 계승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의 나전장들은 전성규의 유산을 발판 삼아 전통의 보존과 시대적 수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 최상훈 장인과 같은 이들이 줄음질과 끊음질 등 전통 기량을 계승하는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며 나전 칠공예를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승화시키고 있다. 전통을 지키되 동시대와의 소통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전통 옻칠공예를 이어오고 있는 손대현 장인은 전통적인 옻칠 기법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결합해 현대 공예의 영역까지 범위를 넓혔다. 대표작인 〈나전 건칠 달항아리〉는 건칠 삼베 위에 자개를 끊음질로 붙여 빛의 조형을 구현했다. 이로써 전통공예의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완성된 형태는 지금의 감각과 호흡하도록 했다.

2025 APEC 슈퍼 위크 당시 한-싱가포르 정상회담 선물로 제공된 나전 일렉트릭 기타, 멋질연구소 제공

오늘날 나전 칠공예는 단순한 기법의 보존을 넘어 현대적 미감과 실용성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순수예술, 인테리어 오브제, 하이엔드 패션 소품 등 다양한 영역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전통공예의 계승과 창조적 변용을 통해 독창적인 K-디자인의 가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려의 정교함부터 현대의 창조적 발전까지, 천년을 이어온 나전칠기는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창의성을 함께 담아내는 한국 공예 문화의 대표 유산으로 여전히 막강한 광채를 발하고 있다.

  • 글. 정은주
  • 정은주는 서울공예박물관 소속 학예연구사로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들의 밑그림을 조명한 〈나전장의 도안실〉, 의복 및 장신구를 다룬 〈의依·표表·예藝, 입고 꾸미기 위한 공예〉 등 전통공예의 미학과 현대적 가치를 잇는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해 왔다.
  • 편집. 한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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