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 February 2026 (Vol. 50 No. 01)

한국 예능의 역할 뒤집기 실험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에 답하는 정덕현 평론가가 K-드라마의 오늘을 바라본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만큼 재미있는 게 있을까. 그래서인지 최근 한국 예능은 ‘역할 뒤집기’를 주요 서사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이서진과 김광규가 매니저에 도전하는 〈내겐 너무 까칠한 매니저 - 비서진〉(이하 ‘〈비서진〉’)과 은퇴한 배구 레전드 김연경이 선수가 아닌 감독직에 도전하는 〈신인감독 김연경〉은 바로 그 새로운 영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역할 뒤집기의 과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흥미로운 건 두 프로그램 모두 역할에 대한 도전을 예능 장치로 삼으면서도 서로 다른 장르적 진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비서진〉, 평균 나이 55.5세가 뛰어든 매니저의 세계


내겐 너무 까칠한 매니저 ‐ 비서진
연예인으로서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오던 이들이 이번에는 직접 매니저가 돼보는 예능 프로그램. 현장에서 드러나는 성향의 차이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역할 속에서 관계를 조율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 현실 관찰형 예능이다.
© SBS

“내가 본래 수발 전문가예요.” 〈비서진〉에서 이서진은 자신이 왜 매니저라는 직업에 최적인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가이드에 요리까지 살뜰하게 수발했던 경험이 있다. 어딘가 퉁명스럽고 까칠해 보이지만, 의외로 섬세한 배려가 몸에 밴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들을 챙기는 매니저라는 직업이 어려울 게 없다는 얘기다. 이서진과 함께 비서진에 뛰어든 김광규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동산 중개 3년, 웨이터 1년, 영업 사원3.5년 그리고 택시 기사 5년 경력을 갖고 있다며 큰소리를 땅땅 친다. 하지만 어디 그런 큰소리가 이 새로운 영역에서도 통할까. 나이 많은 이서진은 이수지 같은 요즘 대세 개그우먼의 기발한 개그에 어디서 웃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택시 경력으로 큰소리 쳤던 김광규는 정작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조차 익숙하지 못하다. 연예인이 마실 커피를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SBS 인기가요〉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서 스타의 챌린지 영상을 엉성하지만 열심히 찍는다. 새로운 직업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진땀 나는 일들은 그들에게는 고역이지만 보는 이에게는 ‘꿀잼’이다.

〈비서진〉은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이 주는 묘미와 더불어 역할 전복의 재미가 도드라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평균 나이 55.5세의 매니저들이 수발든다는 건 수발을 받는 연예인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수지나 유노윤호같이 예능적 재미를 아는 이들이 대놓고 이런저런 일로 부려 먹는 걸 보는 맛이 쏠쏠하고, 정반대로 대선배들이 어려워 하루종일 뭐 하나 원하는대로 한 게 없다며 투덜대는 지창욱, 도경수 같은 이들을 보면서도 웃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초보 매니저들의 실수가 만들어내는 웃음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때때로 배려가 도드라지는 이서진의 모습이나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김광규의 면모가 훈훈함을 안기기도 하고, 그것이 매니저라는 직업이 갖는 ‘숭고함’이라는 걸 에둘러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고,별은모두 빛을 받아 빛나는 거라고 했던가. 영화 〈라디오 스타〉의 그 대사처럼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의 이면에서 뛰고 또 뛰는 매니저라는 직업의 세계가 새롭게 다가온다. 낯선 도전이 만들어내는 웃음에 빠져들다 보면 그 안에서 스타와 매니저라는 직업적 관계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면모들에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신인감독 김연경〉, 경이로운 배구의 세계


‘언더도그’의 해결사. 선수 시절 김연경은 그렇게 불렸다. 일본최하위팀JT마블러스에 입단해 창단 사상 첫 우승을 안겼고, 배구 최강국 튀르키예의 만년 하위 팀 페네르바흐체 SK에 들어가 창단 최초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바로 그 김연경이 언더도그 선수들로 새로 뭉친 배구팀 ‘필승 원더독스’의 신인 감독 도전에 나섰다. 2부 리그가 없어 팀에서 밀려나면 은퇴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의 배구선수들을 위해 〈신인감독 김연경〉이라는 프로그램에 뛰어든 것. 스포츠 예능이지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방송의 차원을 넘어선다. 목표 자체를 여덟 번째 프로구단에 들어가는 것으로 세웠고, 일곱 팀과 대결을 벌여 50%대 이상 승률을 기록하지 않으면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방송이 아닌 김연경의 진짜 도전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초반 흔들리는 팀워크로 고전하던 필승 원더독스는 김연경의 지도 아래 급성장하더니 2024~2025 시즌 프로 통합 준우승 팀인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를 포함해 3연승을 하면서 50% 승률을 달성했다. ‘언더에서 원더로’ 비상한 것이다.

〈신인감독 김연경〉이 담아낸 리얼한 여자배구 도전은 실제로 배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렸다. 배구 소재의 인기 저패니메이션 〈하이큐!!〉를 보는 듯한 편집으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구성해 낸 이 프로그램은 감독의 작전과 이를 따르는 선수들의 시너지가 어떻게 경기를 변화시키는지를 직관하게 해줬다. 여자배구가 얼마나 재미있는 스포츠인지를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됐고,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는 잘 몰랐던 선수들이 매력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팀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 표승주는 물론이고 심적 동요를 극복해 낸 이나연 세터, 김연경을 통해 ‘성장캐’로 거듭난 몽골 자매 타미라와 인쿠시, 느리다는 평가를 완전히 뒤집은 문명화까지 모든 선수가 팬을 갖게 됐다. 이러한 성장은 이미 은퇴한 선수들의 프로 복귀로도 이어졌다. 방송 차원을 넘어서는 도전이기에 가능했던 현실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예능만큼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인 분야가 있을까. 물론 예능 에서의 도전은 철저히 안전망 안에서 수행된다. 그럼에도 이들 예능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실패해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도 현실에서 결과만이 아닌 과정을 통해 즐거움의 가치를 찾아보면 어떨지. 지금부터 새로운 여정에 도전해 보자.

  • 정덕현은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기고, 방송, 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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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PREVIEW

© tvN

신사장 프로젝트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전설적인 협상 전문가 신사장(한석규). 그는 협상가라는 과거를 뒤로하고, 미스터리한 정체를 숨긴 채 시장에서 작은 치킨집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동네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에 휘말리며 그의 협상가적 기질은다시 빛을 발한다. 임대료 분쟁, 허위 보도, 이웃 간 갈등 등 법과 제도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신사장은 정의에 대해 묻는다.

© 2026 Universal Studios

더 페이퍼 시즌 1

에미상을 수상한 시트콤 〈더 오피스〉의 제작진이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미국 중서부의 오래된 지역 신문사를 무대로, 종이와 뉴스라는 올드한 매체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버티고 변화하는지를 파고든다. 특유의 모큐멘터리 형식을 앞세워 기자들의 취재 현장, 사내 갈등, 사라져가는 지역 저널리즘의 현실을 유머러스하고 현실감 있게 담아낸 시리즈.

디 오픈 (제153회 오픈 챔피언십) ‐ 골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대회인 디오픈 챔피언십의 153번째 무대. 북아일랜드 앤트림주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로열 포트러시에서 치열하게 진행된 전략 싸움과 정상급 선수들의 집중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최종 합계 17언더파, 2위와는 4타 차로 우승을 차지한 프로는 과연 누구일지 끝까지 지켜보자.

© EBS

세계테마기행 스페셜 ‐ 해피 뉴 이어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이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을 따라가 보자. 새해 스페셜판 세계테마기행에서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의 새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축제와 의식, 일상의 순간에 담긴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를 통해 새해의 설렘을 차분하게 전한다.

© KBS

K-FOOD 쇼 ‘맛의 나라’ ‐ 김치의 나라

지역마다 다른 재료와 손맛, 발효 과정이 만들어내는 풍미를 따라가며, 전통 음식이 오늘의 식탁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푸드 다큐멘터리. 김치가 세계적인 K-푸드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현지 장인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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