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 February 2026 (Vol. 50 No. 01)

바다의 풀, 한국의 맛

한국인의 일상 식탁에서 깊숙이 자리 잡은 해조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오래된 지혜가 현대 미식과 만나 새로운 맛의 문을 연다.

양식장에서 수확 중인 김

한국 문화의 또 다른 이름, 해조류

해조류의 영문명은 ‘앨지(algae)’다. 이는 미세조류, 대형 해조류 등의 모든 바닷속 원생생물군을 지칭하는 단어로 꽤 넓은 범주에 속한다. 다시마 등의 해조류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물질을 알긴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 어원에서 비롯됐다. ‘시위드(seaweed)’라는 표현 또한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만 특정 종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처럼 구체적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건 먹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름이 없는 풀을 먹지 않듯, 식재료로 자리 잡기 위해선 명명과 문화적 맥락이 필요하다. 해조류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과 식탁에 깊숙이 자리해 왔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해조류가 제철인 겨울이면 유통에 문제가 없었고, 말리거나 염장하면 더운 날씨에도 얼마든지 보존할 수 있어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소중한 식재료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은 사철 해조류를 먹게 됐다. 해조류는 특히 말리면 아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게가 가벼워져서 효용이 컸다. 내연기관이 등장하기 전, 보부상이 이동하면서 전국의 구석구석까지 식품을 판매했는데, 이때 해조류는 주요 품목이었다. 가볍고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해조류는 그 덕에 오랫동안 화폐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한국인은 ‘부조’라는 전통적인 행사를 1년 내내 나누고 산다. 과거에는 이 부조 행위에 돈 대신 말린 미역 등을 주고받기도 했다.



미역이라는 관습


미역은 한국인에게 아주 각별한 재료다. 단순한 식품을 넘어 출산과 산후조리, 수유까지 이어지는 삶의 의례와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산을 마친 여성은 미역국을 오랫동안 챙겨 먹는다. 그래서 산모를 위해 미역을 살 때는 절대로 값을 깎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고래가 새끼를 낳고 미역이 많이 자라는 ‘밭’(미역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암반층)에서 미역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먹이기 시작했다는 흥미로운 설도 전해온다. 이후 미역의 여러 가지 영양학적 효능이 밝혀지면서 과거의 신비주의적 미역 먹기 관습은 실제로 과학적 근거까지 갖추게 됐다. 해조류가 자라난 해역의 특징이 해조류의 개성을 만들어내는데, 미역 또한 그렇다. 남해 완도의 잔잔한 바다에서 자라는 것은 부드럽고, 동해의 거친 파도와 싸우며 자란 미역은 진하고 깊은 맛을 낸다고 하여 구분한다. 동해 미역은 파도에 맞서느라 조직이 쫄깃하고 탄탄하다는 뜻으로 ‘쫄쫄이 미역’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 동해와 제주의 미역은 특히 해녀가 생산하는 것이 많아 해녀 문화와 함께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해조류가 자연 해양 서식지에서 자라는 모습

김, 바다의 옷


한식에서 김은 해조류 중 가장 고급스럽고 섬세한 동시에 대중적인 미식 재료로 자리 잡았다. 김은 이미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서부터 등장하는데, 과거에는 ‘바다가 입고 있는 옷’이라는 뜻의 해의(海衣)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렸다. 해안 지역에서는 김을 재배하는 행위를 ‘김한다’나 ‘해의한다’라고 표현한다.

김은 바다에서 광합성을 하며 자라지만 산소 농도에 매우 민감해 재배가 까다롭다. 게다가 한겨울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확한다. 그래서 김은 누군가의 고단한 노동을 통해 우리 식탁에 오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젖어 있는 물김 형태로 채취해 한 장씩 사람이 직접 떠서 말린 후 유통했는데, 이제는 생산도 포장도 자동화됐다. 그렇더라도 김 농사는 여전히 거칠고 힘든 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김은 오랫동안 귀한 식재료였다. 열 장짜리 김 한 묶음을 살 수 있는 집은 살림이 넉넉한 편이었고, 기름 발라 숯불에 구운 김은 부잣집의 상징이었다.

김은 한국과 일본이 주 소비국이며, 최근 중국에서도 소비량이 느는 추세다. 과거 미국에서는 한국 교포들이 즐겨 먹던 김을 ‘검은 종이’로 오해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김으로 만든 김밥이 글로벌한 K-푸드의 상징이 됐다. 게다가 K-팝 아이돌의 연습실 간식으로 자주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해외 팬층에 각인됐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김밥 장면이 화제에 오르며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미국 간편식 시장에서 트레이더 조스가 선보인 냉동 김밥 제품은 폭발적 수요를 불러일으키며 품절 사태를 빚었고, 덕분에 김과 김밥은 현대 K-푸드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떠올랐다.

감태로도 잘 알려진 가시파래는 김과는 다른 맛을 내는 또 다른 해조류다.
김을 채취해 네모난 모양으로 말리면 우리가 아는 형태의 김이 된다.

모던 퀴진이 발견한 한국의 재료, 우뭇가사리


한국에는 냉면처럼 여름이면 꼭 먹는 차가운 음식들이 있다. 우뭇가사리도 이런 음식의 주요한 재료 중 하나다. 특히 동해안과 남해안, 제주에서 많이 먹는 우뭇가사리는 음식으로 만들려면 아주 길고 힘든 갈무리 과정을 거친다. 채취한 것을 햇볕에 잘 말린 후 나무 방망이로 두들겨서 다시 말리고 끓여 식힌다. 슬로푸드의 전형이다. 이렇게 얻은 것을 보통 ‘우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우미’라고 부르는데, 적당히 잘라서 차가운 우물물에 넣고 부추와 식초로 맛을 낸다. 입맛 없는 여름날 한 그릇을 들이켜면 기운을 차릴 수 있다고 알려진 음식이다. 제주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우무로 냉국을 만들어 먹었다.

우무는 다른 말로 ‘한천’이라고도 한다. 이 재료가 유럽과 미국에서 ‘뜬’ 것은 분자 요리의 성행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분자 요리를 포함하는 모던 퀴진이 각광받기 시작한 1990년대의 일이다. 한천은 별난 질감으로 여러 분자 요리와 디저트의 재료로 쓰이게 됐다. 미역과 김의 인기 이전에 이미 우뭇가사리는 유럽 최고급 식당에 먼저 입성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해조류로 쓰는 미식


김밥을 색다르게 풀어낸 정식당의 메뉴, 모듬 김밥. 김부각으로 만든 바삭한 김밥 위에 원하는 재료를 올려 먹는다.
ⓒ JUNGSIK
랑빠스81의 소시지. 김과 청양고추를 넣어 짭짤하고 매콤한 맛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감태 퓌레를 버무린 면이 돋보이는 감태 국수
ⓒ JUNGSIK

최근 한식의 폭발적인 인기는 해조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 셰프들까지 김과 미역을 손질한다. 해조류는 ‘바다의 풀’을 넘어서 창조적 미식의 재료가 됐다. 뉴 코리안 다이닝을 선보이는 〈미쉐린 가이드〉 2스타 정식당에서는 김부각으로 만든 바삭한 김밥 위에 가리비, 캐비아, 성게알, 육회 등을 올려 먹는 독창적인 메뉴를 선보인다.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한 국내 유일 샤르퀴트리 전문 레스토랑 랑빠스81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친숙한 김과 청양고추를 소시지로 재해석했다. NOR에서는 면 대신 신선한 다시마로 만든 반죽 시트를 활용한 라사냐를 선보이는 등 해조류 기반 미식의 입체적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 글. 박찬일
  • 박찬일은 요리와 글쓰기 두 영역에서 꾸준한 존재감을 보여온 한국의 셰프다. 이탈리아 요리 유학과 현지 레스토랑 경험을 통해 폭넓은 실전을 쌓았으며, 귀국 후에는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요리 연구와 칼럼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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