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 April 2026 (Vol. 50 No. 02)

젊은 작가, 김윤신

김윤신은 70년 가까운 작업 끝에 비로소 ‘지금’의 언어로 읽히고 있는 작가다. 회고가 아닌 현재형의 작업을 이어온 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을 작업으로 바꾸어온 한 예술가의 묵묵한 태도와 마주하게 된다.

Photo: Eun Chun

지금, 김윤신

김윤신은 70년 가까이 작업을 이어왔지만, 그의 이름이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본격적으로 호명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한국과 유럽, 남미를 오가며 축적된 긴 시간,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40년의 긴 체류 기간 동안 그는 제도나 유행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만의 언어를 다져왔다.
그러다 해외에서 시작된 재조명을 계기로 그의 작업은 완결된 회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를 갱신하며 이어지는 현재의 작업으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2024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주요 국제 전시에 초청되면서 본격화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간 개별적인 궤적으로 존재해 온 김윤신 작가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 다시 호출되었다. 그리고 ‘지금 왜 김윤신인가’라는 질문은 그의 작품 앞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거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그의 삶은 이동하며 쌓인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시간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단단하지만 급하지 않고, 크지만 과시적이지 않은 조각들. 그의 조각은 조형 언어이기 이전에 삶의 태도를 닮아 있으며, 그의 나이는 작업의 속도와 밀도를 설명하는 배경일 뿐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곧 작업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김윤신의 세계는 조각에서 출발한다. 그는 조각을 형태를 만드는 일로 설명하지 않으며, ‘합이합일, 분이분일’, 즉 나와 재료가 만나 하나가 되고 다시 나뉘며 관계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최근 몰두하고 있는 회화 작업 또한 조각과 분리된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가 서로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나무와 함께 보낸 긴 시간 속에는 한국의 사계절과 남미의 햇빛, 그리고 이동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러한 그의 이동은 유행을 좇는 선택이 아니라, 작업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고집에 가까웠다. 국적이나 정체성은 작업을 규정하는 제약이 아니라 작업이 가능해지는 조건이었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 그의 자리였다. 그래서 김윤신은 돌아온 작가라기보다, 한국의 시간에 다시 합류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업을 멈추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작업은 삶 그 자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을 남긴다. 그가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무엇을 하든,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할 것. 이는 예술을 넘어, 지금도 작업을 통해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한 작가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혼돈 끝의 희망 2025-112025-11〉, 2025,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80×450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인터뷰

선생님의 작업에서 조각은 출발점입니다. 나무를 가르고 덩어리를 나누는 조각의 행위는 선생님의 사고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해 왔나요?

처음에는 인체 조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인체를 아주 치열하게 공부했고, 점차 비례를 변형하면서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죠. 목을 늘리고, 팔을 과장하면서 형태를 바꾸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추상’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변형 자체가 창작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죠.
나무 조각으로 들어오면서 그 생각이 더 분명해졌어요. 조각은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쌓여 나오는 과정이라고요. 내가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집중이 극에 달했을 때 나무를 자르든, 물감을 바르든 감정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거기에 머무르면서 형상이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조각은 내 사고를 조직했다기보다 내가 살아온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행위였다고 생각해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88-91〉, 1988, 알가로보, 23×50×50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Choi Chul Lim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92(기원(祈願))〉, 1992 – 2014, 나무, 52×32×33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네 면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구성한 ‘회화-조각’ 작업은 하나의 생각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구조처럼 보입니다. 이 형식은 선생님의 사고나 작업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이 작업은 내가 미술사에 남기고 싶은 하나의 언어입니다. ‘회화-조각’이라는 말 자체를 남기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생각은 결코 한 면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고, 동시에 여러 얼굴을 갖고 있어요.
이 작업은 의식적으로 계획했다기보다는, 팬데믹 시기에 재료가 부족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버려진 나뭇조각을 주워 작업하다 보니 그 조각들이 다시 회화가 되고 또 다른 조형으로 이어졌죠. 어린 시절 혼자 놀며 상상하던 감각들이 다시 살아났고, 그 기억들이 작업 안으로 들어왔어요. 하나의 생각이 여러 면으로 확장되는 방식은 내 삶의 방식과도 닮아 있어요.


Photo: Eun Chun

최근 회화 작업에 더욱 몰입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조각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평면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나 표현이 있을까요?

회화는 조각보다 훨씬 즉각적이에요. 나는 판화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찍고 눌러서 우연히 생기는 형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같은 행위를 반복해도 결과는 늘 다릅니다. 손가락을 찍었는데 손가락 모양이 나오지 않고, 물감이 붙을 수 있는 곳으로 흘러가 전혀 다른 형상이 나타나죠. 그 우연성을 받아들이는 게 회화의 재미예요. 조각이 공간을 찾아가는 작업이라면, 회화는 순간의 밀도와 흔적을 받아들이는 작업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요즘 회화-조각을 하며 그 두 가지 표현을 한 작품에 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회화는 조각을 위한 또 하나의 언어인가요, 아니면 조각과는 다른 사고가 시작되는 장소인가요?

1984년부터 13년 동안 남미의 단단한 나무와 오닉스로 주로 조각 작업을 했습니다. 1998년에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즈음 잘린 나무 조각 형태의 그림을 캔버스에 그리며 조각의 일부를 회화로 옮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회화는 회화대로 또 다른 사고를 열어주었습니다. 결국 조각과 회화는 분리된 장르라기보다 서로를 확장시키는 관계예요.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다시 돌아오는 구조죠.

〈이루어지다 20120188 – 1717〉, 2018,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00×100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선생님에게 자연은 관찰의 대상인가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존재인가요?

자연은 관찰의 대상이라기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 같은 존재였어요. 어릴 때 산 밑에서 살면서 하루 종일 혼자 자연과 놀았죠. 전쟁 중에는 나무를 뿌리째 캐서 연료로 쓰는 모습을 보며 살아 있는 존재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죠.

선생님의 작업에서 나무는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상대처럼 느껴집니다. 나무와 마주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무의 상태입니다. 나무와 내 감정이 맞아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무와 하나가 되어야 해요. 조각은 공간 예술이에요. 어디를 잘라야 공간이 살아나는지 계속 생각하면서 조율해 가는 과정이죠. 그것이 조각 작업이고 작업 중에 집중해서 쏟아부은 감각, 생각, 느낌으로 완성된 것이 나의 조각 작품입니다.

선생님을 설명할 때 전기톱이라는 도구가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도구보다 그것을 다루는 감각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힘’은 어떤 의미인가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1984-11V1〉, 2025, 알루미늄에 아크릴 물감, 158x63x55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힘으로 하면 안 됩니다.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오지 않으면 작업이 위험해져요. 특히 전기톱을 쓸 때는 더 그래요. 힘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나무와 기계와 내가 동시에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전기톱은 무섭고 위험한 도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2002-788V1〉, 2025, 알루미늄에 아크릴 물감, 91x70x35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Choi Chul Lim

선생님께서는 작업이 ‘운동’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업을 멈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작업을 멈추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죽음이지요. 움직여야 살아 있다고 느껴요. 아파도 작업에 집중하면 통증을 잊게 됩니다. 그래서 작업을 멈춘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어요.

한국, 파리, 남미를 오간 긴 시간 동안 ‘한국 작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해 오셨나요?

어디에 있든 작업하는 그곳이 제 자리였습니다. 정체성을 인식하며 작업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외국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한국 작가’로 불리긴 하죠. 그러나 작업할 때는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 곧 내가 있을 곳입니다.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오며 멈추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나는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전쟁을 겪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늦게 왔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작업에는 빠르고 늦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지금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작업은 언제나 현재에서만 가능하니까요.

〈내영혼의노래2013–50〉, 2013
캔버스에 유채, 150 ×460 cm, 개인소장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개념이 언제 삶의 언어가 되었나요?

이 개념은 제 작업의 근원입니다. 나와 재료가 만나 또 하나가 생기고, 그것이 다시 나뉘어 또 다른 관계를 만드는 것. 삶도 그렇고 예술도 그래요. 전체는 끊임없이 분화되고 다시 합쳐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 개념은 생각이라기보다, 내가 살아온 방식 그 자체입니다.

1970년대 여성 조각가 협회를 만들었던 경험은 어떤 책임 의식을 남겼나요?

그때는 책임감이라기보다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일을 특별히 ‘여성’의 문제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파리에서는 여성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는데, 한국에 오니 모두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모았고, 그게 하나의 흐름이 됐죠. 누군가는 시작해야 했고, 그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2022-2〉, 2022, 느티나무, 140×68×50cm
© Kim Yun Shin, Courtesy of the artist, Lehmann Maupin and Kukje Gallery

지금 선생님의 작업을 처음 만나는 젊은 작가나 관객에게 ‘태도’ 하나만 전한다면요?

집중이에요. 온 정신을 다 쏟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쉼 없이,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하세요. 그 태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결국 자기 길을 가게 될 거예요. 이건 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 자기 인생에서 하는 일에는 한 번쯤 그렇게 온 정신을 써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이합일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2013 – 16〉, 2013, 알가로보, 135×202×56cm
© Kim Yun Shin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and Kukje Gallery / Photo by Studio Kukla

김윤신을 만날 수 있는 곳

© Choi Yongjoon / Courtesy of Hoam Museum of Art

호암미술관

김윤신:합이합일 분이분일
3.17 – 6.28

호암미술관은 한국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중심으로 국제 미술의 흐름을 깊이 있게 조명해 온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으로 학술 연구와 기획 전시를 통해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지속적으로 재해석해 왔다.
이번 전시는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70여 년 작업을 조망하는 첫 대규모 회고전으로 나무 조각을 중심으로 판화와 회화를 아우르며 한국, 프랑스, 아르헨티나를 거쳐 형성된 그의 조형 언어를 아시아 모더니즘과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새롭게 읽어낸다.

  • leeumhoam.org/hoam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

김윤신 전시실
상설전시장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은 한국 문화와 예술을 중남미에 소개하는 거점 기관으로,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 세계를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다. 문화원 내에 마련된 김윤신 전시실은 1980년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온 재아동포 김윤신에게 헌정된 특별 전시관이다. 김윤신은 1985년부터 2016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제작한 회화 10점과 조각 8점, 총 18점의 작품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기증했고, 이 중 14점이 한국문화원 김윤신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 argentina.korean-culture.org
  • 대한항공은 인천 — 애틀란타, 댈러스 직항(주 11회) 및 경유 편 탑승
ⓒ Korean Cultural Center Argentina
  • 글. 최진이
  • 사진.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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