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한 콩나물
세대를 거쳐 한국인의 식탁을 지켜온 식재료, 콩나물. 이제 콩나물은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미래의 식탁을 준비하고 있다.
“콩은 오곡 가운데 하나지만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곡식이 사람 살리는 역할을 한다고 할 때 콩의 공은 대단한 것이다. (···) 좋은 곡식과 맛난 음식은 다 힘있고 잘사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이 살자고 기댈 만한 먹을거리는 오직 콩뿐이다. (···) 또 싹을 내어 콩나물로 만들면 양과 가치가 몇 배나 커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콩을 갈고 콩나물을 꺾어 이 두 가지로 묽거나 된 죽을 쑤어 배를 채울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 사상가 이익이 남긴 방대한 저술 〈성호사설(1681~1763)〉의 ‘콩[菽(숙)]’에 관한 내용 중 일부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지적인 모험에 큰 영향을 끼친 대학자인 이익에게도 콩은 참으로 소중한 자원이었다. 콩을 말할 때에는 콩나물 또한 빠뜨릴 수 없었다. 한반도의 콩 재배 환경과 저장 중심의 곡물 문화는 이러한 겨울을 견디며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필요로 했다. 그 조건 속에서 물과 시간만으로 기를 수 있는 콩나물은 사계절을 이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식량이었다. 이익은 글의 말미에 “시골에 살기에 이런 점을 익히 알고 있다(余居鄕村, 熟知其事)”라며 이를 “백성을 기르고 다스리는 자가 보고 깨닫길(記之以竢牧民者得焉)” 바랐다.
보편적인 숙주 VS 한국인의 콩나물
지식인이 이렇게 쓰나 저렇게 쓰나 시골 농투성이들은 진작에 콩나물이 있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예컨대 농촌의 열두 달을 노래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11월령’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콩기름 우거지로/조반석죽(朝飯夕粥) 다행하다.”
‘콩기름’은 콩나물이다. ‘조반석죽’은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이라는 뜻이다. 밥 짓고 죽 끓일 때 콩나물과 우거지가 요긴하다는 의미다. 이렇듯 콩나물은 평범한 한국인에게 익숙한 먹을거리요, 한반도의 서민 대중에게 만만하면서도 고마운 식료품이다. 녹두에서 싹을 낸 숙주와는 또 다르다. 숙주는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은 물론 동남아시아 어디서나, 아시아 사람이 뿌리를 내린 온 지구 어디서나 먹는다. 하지만 대두(大豆) 또는 대두와 가까운 콩에서 싹을 낸 콩나물을 한국인처럼 먹어온 예는 드물다.
돌아보면 콩나물은 콩만 있으면 쉬이 얻을 수 있는 자원이다. 잘 여문 콩을 물에 불렸다, 물 잘 빠지는 어떤 용기에나 담아, 그늘에서 매일 물을 주며 기다리면, 닷새 늦어도 열흘 안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란다. 대두가 발아하면서 콩나물 조직이 팽팽하게 살아난다. 부드러운 식감의 숙주와 달리, 속은 수분을 머금어 촉촉하면서도 아삭하고 탄력 있는 식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콩나물을 먹다
언제부터 먹었을까? 모른다. 다만 대두의 원산지로 알려진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사이에서 콩을 먹기 시작한 이래, 한국인의 먼 조상들이 자연스레 그 싹까지 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게다가 차디찬 겨우내 신선한 채소를 구할 길이 없던 시대에는 이를 대신하는 식재료이기도 했다. 다시 〈성호사설〉로 돌아온다.
“내가 이즈음에 삼두회를 마련하였으니, 콩죽과 콩나물김치와 두장 세 가지를 갖춘 모임이었다(余近作三豆會. 黃豆爲粥, 黃卷爲菹, 與豆醬爲三集).”
위정자가 콩나물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랐던 지식인 이익이 베푼 모임의 다담상 차림이 위와 같았다. 콩죽, 콩나물김치, 메주를 빚어 익힌 장이 있는 다담상이야말로 친구, 친지, 학문적 동지와 모인 자리에서 나눌 만한 음식이었다. 이익은 그렇게 여겼다. 콩나물김치라니, 여전한 한국인의 반찬 아닌가.
한국인이 콩나물을 어떻게 먹을거리로 만들어 먹어치우는지 돌아보자. 기본 가운데 기본은 콩나물무침이다. 데쳐, 펼쳐, 수분을 날리며 식혀, 소금으로 간하고 참기름을 살짝 지르는 것만으로 무침이 된다. 양념장을 더해 무치거나, 파와 마늘에 고춧가루까지 더해 붉게 무치는 수도 있겠다. 또는 곰피와 같은 해산물을 더해 무칠 때에는 된장을 쓰기도 한다. 더 붉게 무쳐 맛을 더 들인 콩나물김치, 맛국물을 따로 부어 만드는 콩나물물김치, 콩나물 데친 물을 차게 식힌 뒤 옅게 양념해 데친 콩나물을 띄워 마시는 콩나물냉국 등도 맛나다. 한 끼니 또는 요기로는 어떨까. 콩나물밥, 콩나물비빔밥, 콩나물죽 또한 반갑다.
어른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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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콩나물 운운하며 콩나물국을 빼놓을 순 없다. 그냥 콩나물을 바탕으로 국 잘 끓이면 그뿐이다. 오로지 소금 간만 한 맑은 콩나물국 또는 간신히 고춧가루만 살짝 흩은 콩나물국 한 사발을 뜨거운 채로 들이켜며 “어, 시원하다!” 외치는 감각은 통번역 가능할까? 한국어 용언 ‘시원하다’는 물리적으로는 이완(弛緩), 진경(鎭痙), 진정(鎭靜)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야말로 내장의 긴장이 풀어지며 속이 후련해진다는 뜻이다. 몸이 풀리며 개운해지는 느낌까지 깃든 말이다. 한식 국탕 가운데 가장 간단한 방식이라고 할 만한 콩나물국은 한국인이 언제 어디서든 훌훌 마실 수 있는 가장 시원한 국탕이다. 은은한 콩 향 위로 맑은 수분감이 번지고 씹을수록 담백함이 진해지는 맛은, 화려하진 않지만 진득히 입안에 스미는 매력이 있다.
콩나물국을 바탕으로 하는 콩나물국밥은 특히 전주 지역에서 일찌감치 현대 요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19세기 전반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에도 콩나물과 콩나물국의 풍미에 눈뜬 사람의 찬양글이 실렸을 정도다. 콩나물은 이렇게 아득한 옛날을 건너, 세기를 건너, 현대로 당대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북엇국, 무국, 잡채, 냉채, 떡볶이, 쫄면, 비빔국수, 라면, 김칫국, 아귀찜, 해산물볶음, 돼지고기두루치기 등에서 주재료와 어울려 식감과 풍미에 이채를 더할 때, 그 미각적 쾌감의 핵심이란 곧 콩나물 줄기가 아삭 씹히고 톡 터지며 뿜는 시원함일 터다.
“난 몰라/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고/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1938년에 노래하고 녹음된 박향림(朴響林, 1921~1946)의 만요(漫謠) 〈오빠는 풍각쟁이〉 1절에도 콩나물의 한 풍경이 이렇게 담겨 있다. 무심한 듯 구수한 콩나물의 풍미, 그 풍미를 바탕으로 한 온갖 콩나물 반찬, 콩나물 음식의 풍미는 어린이가 단박에 알아채기 어려운 세계일 수도 있겠다. 그 세계는 음미하는 사람에게만 열릴 미각과 감각과 관능의 세계일 수도 있으리라. 내가 그래도 아주 어린아이에서 한 뼘가웃이라도 자랐나 궁금할 때, 콩나물무침을 좀 씹어도 보고, 콩나물국을 좀 넘겨도 볼 만하지 않은가.
- 글. 고영
- 고영은 음식 문헌을 기반으로 한국 음식과 식문화의 역사, 문화, 대중적 현상을 깊이 탐구하는 음식 인문학자다. 현재 〈경향신문〉에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는 등 우리가 먹는 음식이 지닌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을 꾸준히 써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