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 April 2026 (Vol. 50 No. 02)

제주, 숨비소리를 따라 걷다

제주의 해녀는 오래된 전통이자, 현재진행형의 삶이다. 해녀가 오가던 길을 따라 걷고, 해녀가 먹던 음식을 맛보고, 해녀가 숨을 고르던 자리에 잠시 머문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상징적인 존재가 된 ‘제주해녀문화’는 오늘도 바다와 호흡하며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해녀 문화가 가장 밀도 높게 남아 있는 지역인 제주 동쪽은 밭담과 마을, 바다와 작업장이 그 증거다. 해녀의 일상과 노동, 공동체의 질서가 여전히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쉰다.


해녀라는 문화

해녀는 별도의 산소 공급 장치 없이 약 10m 깊이의 바다로 잠수해, 짧게는 수십 초에서 길게는 1분 남짓 머문 뒤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때 길게 내뱉는 숨이 바로 ‘숨비소리’다. 제주 전역에 자리잡은 해녀 문화는 이러한 물질 방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잠녀 혹은 잠수라 불리는 해녀 개인의 기술부터 공동체 안에서 세대 간 전승되는 지식, 바다의 여신인 용왕 할머니에게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잠수굿, 서우젯소리와 해녀 노래에 이르기까지, 해녀의 삶 전체가 하나의 문화로 이어져 왔다.

해녀의 삶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세화리의 해녀박물관을 찾아보자. 2006년 개관한 이곳은 해녀의 생활 풍습과 공동체 규범, 무속 신앙과 세시풍속을 중심으로 제주의 해양 생활사를 풀어낸다. 관람을 마친 뒤 3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해녀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을 참고 오르내렸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산물을 채취 중인 해녀
ⓒ 구좌마을여행사협동조합

숨비소리길, 일상과 풍경

해녀의 삶은 길 위에서 이어진다. 제주해녀박물관을 기점으로 밭담길, 해안길, 별방진 등을 도는 ‘숨비소리길’을 따라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로 부지런히 오가던 길을 걸어보자. 전체 코스의 거리는 약 4.4km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닷물이 드나드는 물가에 용천수 자리와 갯것할망당이 나타난다. 물질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던 해신당으로 바다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곳이다. 해녀들이 몸을 녹이고 옷을 갈아입던 공동의 쉼터인 불턱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모닥불을 피우며 쉬고, 갓 잡은 해산물을 구워 먹던 이 공간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곳이 더 많지만,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하는 해녀들의 장소로 남아 있다. 코스의 동쪽 끝에 놓인 별방진은 조선시대 제주 동부를 지키던 진성으로, 지형을 활용해 쌓은 성곽이 바다를 등지고 서 있다.

이 밖에도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옛 어로 방식의 흔적인 갯담, 고려 삼별초 시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축조된 해안 방어 시설 환해장성, 해안가 마을의 생활용수였던 용천수 등 다양한 삶과 역사의 흔적이 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녀들이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수없이 오갔을 숨비소리길. 이곳을 한 바퀴 도는 일은 해녀의 하루를 함께 걷는 것뿐 아니라 제주의 시간과 해녀의 삶을 마주하는 경험이 된다.

바닷가의 용천수를 가둬놓은 도구리통은 밀물이면 바다에 잠긴다.
숨비소리길은 전체 약 4.4km에 이른다.

해녀 되어보기

해녀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방법도 있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김녕 해녀훈련소에서는 제주 바다에서 평생 물질을 해온 베테랑 해녀 ‘삼춘’이 교관이 되어 숨 고르기와 장비 사용법, 질의 기본을 직접 전한다. 단순한 일회성 체험을 넘어, 실제 바다에서의 물질을 진지하게 익혀보는 과정이다. 2박 3일간 이어지는 스테이형 프로그램은 전문 지식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맨손으로 보말과 조개, 게를 줍는 바릇잡이부터 해녀 삼춘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과정까지, 해녀의 일상을 단계적으로 만난다. 잡아 올린 해산물을 직접 손질해 요리하고, 중간중간 해신당에 들러 바다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며 김녕리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반가운 덤이다.

바다 입수가 부담스럽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 해녀와 함께 해녀박물관을 돌아보고 해산물로 식사를 준비하는 세화 해녀마을 홈스테이 프로그램이나, 간단한 장비 착용과 낚시 체험을 중심으로 구성된 협재해녀체험처럼 비교적 가벼운 방식으로 참여해 볼 수도 있다. 제주에서의 해녀 체험은 단순히 물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장면을 따라가며 해녀의 삶이 쌓여온 시간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해녀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해녀 밥상 이야기

제주 곳곳에는 ‘해녀촌’, ‘해녀의 집’처럼 해녀의 이름을 단 작은 식당들이 있다. 해녀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차려낸 한 상이다. 동복해녀해산물직판장에서는 바다를 마주한 자리에서 해산물을 맛보고, 시흥 해녀의 집에서는 직접 캔 조개로 끓인 조개죽을 만날 수 있다. 해녀의 손을 거친 해산물을 그 자리에서 맛보는 경험은 제주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해녀 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공간도 있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의 음식과 삶을 공연과 미디어 아트로 엮어낸다.

북촌점에서는 불턱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종달점에서는 실제 해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 공연과 함께 식사가 이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기억인 해녀 문화가 이곳에서는 현재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식탁에 오르는 재료 모두가 해녀가 직접 공수한 해산물과 제주 텃밭에서 자란 재료라는 점도 이 공간에 의미를 더한다. 제주 동쪽을 걷다 보면, 해녀의 숨비소리는 더 이상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바다와 땅, 길과 식탁 사이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오래된 현재다.

해녀의 부엌에서는 해녀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Haenyeokitchen
  • 글. 노소영
  • 사진. 장은주


Share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