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 April 2026 (Vol. 50 No. 02)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모닝캄〉은 일상의 풍경에 깊은 사유를 더한 ‘옴니버스 스토리’를 전한다. 다국적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 비행 중에도 비행이 끝난 후에도 독자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과학을 연구실 안에 머물게 두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끌어오는 이정모의 통찰은 이제 ‘여행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설명하고, 또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휴식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벗어나 몸을 열고 마음을 느슨하게 만드는 시간. 물론 여행에는 그런 기능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행이 그보다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진지한 의미로 다가온다. 여행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낯설게 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우 익숙한 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언어로 말하고,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는다. 삶은 편리하지만 자아는 굳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낯선 곳에 가야 한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음식 냄새마저 다른 곳에서야 비로소 일상이 벗겨지고 그 아래 숨어 있던 내가 드러난다.

하지만 내 여행의 시작은 사실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낯섦을 경험한 곳은 아주 가까운 골목이었다. 다섯 살 무렵이었다. 세 살짜리 동생의 손을 잡고 ‘옆의 옆의 옆 골목’쯤 되는 곳까지 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본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들 손을 잡고 지나간 적이 분명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처음으로 동생과 단둘이 나섰다. 세상이 갑자기 달라 보였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담벼락이 높아 보였고, 집들은 낯선 얼굴처럼 느껴졌다. 골목이 미로가 되었다. 그때 어디선가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네들 집 잃어버렸나 봐.”

그 말이 내 몸속으로 공포가 되어 들어왔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이 한순간에 낯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이 더 무서워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에서는 심장이 뛰고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집을 찾아 들어간 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그날 이후 나는 집 안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믿게 되었다.

Landmannalaugar, Iceland 2020 ⓒ Hyejina

물론 나는 자라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러나 그때의 여행은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가 있었고 안전이 보장되었으니까. 대학에 들어가서는 친구들과 여행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떤 지역을 여행한다기보다 친구들과 노는 일이었다. 떠들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알아갔다. 그 시절의 여행은 낯섦보다는 젊음의 소란스러움이었다. 대학 3학년 때 월정사에서 소금강까지 백패킹을 하기로 했는데 친구들이 시험공부를 한다며 모두 빠져버렸다. 나 혼자 길을 나섰다. 무모했다. 여러 명이 나눠 들어야 할 장비를 혼자 다 짊어졌다. 5인용 텐트까지 등에 멨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가는 길도 고행이었다. 다음 날 상원사에서 내려와 산길로 들어섰을 때는 다 포기하고 싶었다. 한 경찰관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 짐을 메고 이 산길을 가는 건 위험합니다.”

그 나이가 그렇지 않은가. 그 충고가 오히려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기어이 산을 넘었다. 정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그 길 끝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산의 풍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정말 대책이 없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제명대로 살지 못하겠구나.”

여행은 종종 이렇게 나를 들춰낸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운전면허를 딴 후 나는 독일로 유학을 하러 갔고 몇 년 뒤 주행거리 17만km인 폴크스바겐(VW) 폴로(Polo)를 40만 원 주고 샀다. 내 인생의 첫 차였다. 운전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차를 샀으니 휴가를 떠나야
했다. 아내와 아직 유아차를 타야 하는 어린 딸을 데리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4박 5일 동안 1400km를 달렸다. 본에서 출발해
코블렌츠, 괴팅겐, 고슬라, 브레멘, 뤼벡, 브레머하펜, 브레멘, 뒤셀도르프를 거쳐 다시 본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커다란 지도책을 펼쳐 들고 달렸다. 과학의 도시 괴팅겐과 브라운슈바이크가 여행의 목적지였지만, 사실 우리는 그곳을 대충 지나쳤다. 아내의 관심사는 과학보다 마녀의 도시 고슬라와 브레멘 악대의 도시 브레멘이었다.

딸은 아직 말을 못 했으니 우리 부부는 1400km 여정을 둘만의 대화로 채웠다. 나는 운전이 서툴고 아내는 지도를 보는 게 서툴렀다. 우리는 티격태격했지만, 없는 돈에 구입한 첫 차로 가족 여행을 한다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 둘째 날 운전 중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내가 물었다.

“내가 운전이 서툰데 사고가 날까 걱정되지 않아?”

아내가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가족 셋이 모두 다 함께 있는데 뭐가 문제야? 죽어도 다 같이 죽잖아.”

웃기게도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가장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운전 실력은 놀랍도록 늘었다. 2012년 여름, 나는 EBS ‘세계테마기행’ 마다가스카르 편에 출연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이었다. 첫 번째 제3세계 여행이었고 원초적인 자연으로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마다가스카르는 인간이 들어간 지 불과 2000여 년밖에 안 된 섬이다. 하지만 약 1억 50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와 그 어디와도 다른 생물상을 만들어낸 곳이다. 여우원숭이를 찾아 숲을 헤매고, 시골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의 다른 문화를 경험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했다.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가
보아왔던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동물들 앞에서, 나는 자연사 속에서 나를 찾게 되었다.

2019년에는 아내와 한 달 동안 남미 여행을 했다. 갈라파고스에서 나는 바다거북과 바다이구아나와 함께 헤엄쳤다. 섬을 옮겨 다니며 찰스 다윈이 된 듯한 마음으로 탐험했다. 그때는 이미 자연사박물관장 임기를 마친 뒤였는데 나는 그제야 비로소 자연사가가 된 것 같았다. 몽골 고비사막에서 공룡 화석을 캘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때는 일이었고 연구였다. 여행이 아니었다.

그리고 2025년 겨울, 나는 40일 동안 남극에 다녀왔다. 크라이스트처치까지 항공편으로 가서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해 중앙해령의 열수분출구를 연구하는 항해에 합류했다. 그 넓은 바다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앨버트로스를 비롯한 바닷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도, 섬도 보이지 않는 바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였다. 우리는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2000m 깊이의 바다 바닥에 빔을 쏘아 해저 지형도를 작성하고, 자기장을 측정하고,
무인잠수정을 내려보내 거기에 있는 광물과 생물을 확인하고 채취했다. 중앙해령 인근의 지면은 지구에서 가장 젊은 땅이다.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이 아니라 지구의 일부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남위 74도에 있는 남극 장보고 기지에 갔을 때 나는 분명한 이방인이었다. 남극은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곳은 펭귄과 바다사자와 스쿠아 갈매기의 땅이다. 나는 밤이 전혀 없는 시간을 보름 동안 경험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얼음만이 있는 곳, 어둠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남극은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없는 세상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낯선 곳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인간을 벗겨낸다. 내가 여행을 많이 했다고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풍경은 TV로도 볼 수 있고 음식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여행이 주는 진짜 선물은 따로 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틈을 갖는다는 것.

그렇다면 낯선 곳을 여행한 나는 과연 내가 누구인지 찾았을까? 나는 아직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여행이 더 필요하다. 어쩌면 여행이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계속 질문을 던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에서 다시 나를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떠나야 한다.

  • 글.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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