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에 남는 마음, 자수
한 땀 한 땀 이어간 바느질은 삶의 필요에서 시작해 다양한 쓰임과 의미를 담았다. 한국의 자수는 왕의 어깨와 가슴에 권위를 새기고, 아기의 굴레 위에 축원을 적고, 자투리 천을 모은 조각보는 수행의 미학을 드러냈다. 공예와 예술, 살림과 의례 사이를 오가며 이어져 온 자수는 지금 갤러리와 런웨이 그리고 생활 위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한국의 전통 자수는 인격 함양의 교양교육, 일상의 살림, 종교 및 정치 의례, 순수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속한다. 민수(民繡)의 살림 공예는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삶을 위한 도구이다. 버선의 연꽃 문양 자수는 가족의 평안한 발걸음을 위한 기원이다. 또한 궁수(宮繡)의 의례는 최고의 기술과 재료로 왕실의 화려한 권위를 구현한다. 왕실 보(補)의 용 문양은 발톱의 개수로 권력을 상징한다. 공예와 예술, 살림과 의례, 전문가와 아마추어, 권위와 배려, 저작권과 협업은 자수 미학의 핵심 논제이다. 한국의 근대에 모더니즘 예술 체계가 유입되면서 자수는 도전에 직면했고 횡단, 병합, 확장의 길로 나섰다. 더불어 동시대 포스트 예술은 섬유 및 패션 산업의 기계적 대량생산과 순수예술의 조용한 관조에 의문을 던지며 아마추어 자수의 재도전을 응원한다.
실로 그리다
© The Han Sang Soo Embroidery Museum
인류가 천에 바느질하여 생활용품과 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자수는 바늘과 실로 그린 그림이다. 자수의 바탕은 대부분 천이지만, 가죽, 종이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된다. 자수의 그림에는 글자, 문양, 구상, 비구상 등이 있다. 자수는 정교한 기술을 요구하고 종교 및 정치적 의례에 기여하기에 다른 섬유공예에 비해 늦게 등장했다. 한국의 자수는 불교가 전래되고 고대국가가 형성된 삼국시대에 시작되었다. 흔히 자수는 목적을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 공예로 분류된다. 하지만 감상만을 위한 예술 작품도 제작되었다. 신라의 진덕여왕은 손수 비단을 짜서 〈태평송(太平頌)〉이라는 오언시를 수놓았고 통일신라의 비구니 작가 원해(圓海)는 헌강왕의 초상화를 자수로 제작했다. 조선의 신사임당은 자신의 〈초충화훼도〉의 자수 버전으로 ‘자수팔곡병풍’을 완성했다.
그러나 자수는 쓰임의 공예나 감상의 예술을 넘어 인격을 함양하는 여성의 교양교육이기도 했다. 전통 사회에서 여성 교육은 덕육에 초점을 맞추었고 바느질은 핵심 교과목이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바느질을 할 수 있고 해야 했다. 조선시대 고전소설 〈박씨전〉에서 주위의 비난을 사던 여주인공 박씨부인은 하룻밤에 시아버지의 조복(朝服)을 지어 추앙받는다. 뛰어난 바느질 솜씨인 부공(婦功)으로 고결한 인품인 부덕(婦德)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반면 직업적인 자수 전문가도 있었다. 일찍이 일본에 백제의 자수 기술을 전수한 이는 봉채녀 진모진(眞毛津)이다. 한국의 본격적인 궁수는 통일신라시대에 시작한다. 수방(繡房)의 나인과 자수장(刺繡匠)은 어린 시절부터 훈련을 쌓아온 전문가였다. 궁수의 자수장에는 남성도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평안도 안주수(安州繡) 장인들은 수방에서 활동했다.
© The Han Sang Soo Embroidery Museum
© Han Jung Hye
왕실 자수와 생활 자수: 전통 자수의 미감
© The Han Sang Soo Embroidery Museum
© The Han Sang Soo Embroidery Museum
궁수는 국가 최고의 전문 시스템으로 제작되었다. 활옷은 공주와 옹주의 대례복으로 서민 여성은 혼례복으로만 착용할 수 있었다. 서민 혼례복의 물결, 바위, 불로초, 모란, 복숭아, 나비, 동자(童子) 문양은 장수, 부부 화합, 다산, 가정의 화목을 뜻한다. 또한 ‘이성지합 백복지원 수여산 부여해(二姓之合 百福之源 壽如山 富如海)’라는 축원의 글자도 수놓았다. 반면 궁중의 활옷은 꽃, 과일, 보배의 자수를 띠 형식으로 구성하고 금박 원앙문을 새겼다. 흉배(胸背)는 조선의 왕족과 관료의 지위를 나타낸다. 그중 특별히 왕실의 흉배를 ‘보’라고 불렀다. 흉배는 사각형이고보는 원형이다. 보는 흉배와 달리 가슴과 등 외에 양어깨에도 부착했다. 왕의 보에는 오조룡(五爪龍), 왕비의 보에는 오조룡혹은 봉황을 수놓았다.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의 둘레는 구름, 물결, 기암 문양을 오색실로 수놓았다.
흉배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조선 초기 문관 1품은 공작, 2품은 기러기, 3품은 백한(白鷳, 은꿩) 문양의 흉배를 달았다. 그러나 영조 이후 당하관은 백한 문양을, 고종에 이르러 당상관은 쌍학 문양을 흉배에 수놓았다. 조선 초기에 무관 1품과 2품은 호표(虎豹) 문양을, 3품은 웅비(熊羆) 문양의 흉배를 달았다. 그 후 문관과 무관의 흉배가 구별 없이 사용되자 숙종은 당상관의 흉배에 쌍호 문양을, 당하관의 흉배에는 단호 문양을 수놓게 했다. 민간의 생활용품 역시 부귀장수를 빌고 미적인 목적을 위해 자수로 장식했다.
굴레는 돌부터 5~6세까지 아기가 쓰던 모자이다. 모자 위에 꽃잎 다섯 장을 만들어 매화, 국화, 연꽃, 박쥐, 학을 수놓았다. 머리 뒤쪽으로 세 개의 천을 늘어뜨리되 가운데 천은 다른 천으로 길게 이어붙였다. 세 개의 천에는 연꽃, 십장생, 모란, 천도화, 배꽃, 나비 문양과 수(壽), 복(福), 다남(多男)의 글자를 새겼다. 보자기는 물건을 나르거나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조각보는 쓰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들었다. 이는 검약과 정성의 가치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비정형 조각의 다채로운 질감과 색상의 조화는 기하학적 추상 미학을 보여준다. 보자기의 중앙과 모서리에는 주로 길상어(吉祥語), 꽃, 새, 나비를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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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자수: 공예, 디자인, 예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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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서양의 예술 체계가 들어오면서 자수의 자리는 하나의 질문이 됐다. 이것은 공예인가, 디자인인가, 예술인가. 자수는 그 세 영역을 가로지르며 답을 미뤄왔다. 1945년 한국의 미술대학에 자수 전공이 생겼고, 1949년 시작된 국전에는 자수 작가들의 출품이 이어졌다.
1980년대에 이르러 자수는 ‘섬유예술’이라는 더 넓은 이름으로 걸어 나갔다. 섬유예술 작가들은 전통의 유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바늘과 실로 그린 그림’을 화이트큐브의 갤러리에 걸기 시작했다. 진덕여왕과 원해스님, 신사임당의 뒤를 이어 김혜경, 엄정윤, 송정인, 이신자가 구상에서 추상에 이르는 현대 자수 회화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전통은 하민수, 김수자, 이불로 이어져 동시대 미술의 언어가 됐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했던 고요한 헌신과 순응의 장르가 미술관 안으로 걸어 들어와, 비인간화되기의 돌파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자수의 전통이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에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격을 기르고 살림을 돌보던 이른바 ‘아마추어 자수’는 오늘날 자기를 배려하는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자급자족과 맞춤 소량 생산, 윤리적 소비와 디지털 디톡스를 지향하는 이들은 스스로 만들고 촉각에 집중하는 이 오래된 행위에 마음을 기울인다.
기계가 대량으로 찍어낸 값싼 물건을 사서 쓰는 편이, 이토록 바쁜 세상에서는 마땅하고 손쉬운 처신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살림에 제 손으로 정성을 다하는 일. 삼국시대의 바늘이 지나간
자리를 오늘의 손이 다시 걷는다. 자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어쩌면 문양이 아니라,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 글. 김주현
- 김주현은 미학을 전공한 철학박사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미술비평과 전시기획을 하고 있다. 미술 전시 〈셀프 아트: 자화상, 셀피, AI 퍼포먼스〉, 〈Biowatch: Untimely Meditation〉 등을 기획했다. 〈여성 공예와 한국 근대 자수〉, 〈살림 공예와 미적 평가론〉 외 다수의 논문을 썼다.
- 편집. 한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