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차린 가장 오래된 양식, 도토리
가을 산길에서 도토리는 늘 뒷전이지만, 이 작은 열매가 실은 가뭄과 기근의 시기마다 사람들의 목숨을 이어준 생명의 양식이었다. 한국인은 이 흔한 산열매를 묵이라는 독창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며 오늘날까지 식문화의 한 자리를 이어왔다.
인류의 오래된 탄수화물
step 1. 냄비에 도토리 녹말과 물을 1:5 비율로 넣고 섞는다.
step 2. 눌어붙지 않게 저어가며 걸쭉해질 때까지 끓인다.
*이때 참기름을 소량 넣으면 쓴맛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윤기와 풍미를 더할 수 있다.
step 3. 굳은 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step 4. 끓인 묵물을 틀에 부어 식히며 굳힌다.
가을 산길을 걷다 보면 발끝에 툭 차이는 것들이 있다. 뾰족한 밤송이, 노랗게 익은 은행 그리고 매끈한 껍질에 작은 털모자를 쓴 듯한 도토리다. 밤과 은행은 영양가 높은 열매를 생산해서 귀하게 대접받지만, 도토리는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도토리가 걸어온 역사는 결코 소박하지 않다.
도토리는 인류가 가장 오래 이용한 식물성 먹거리 가운데 하나다. 벼농사가 정착되기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에게 도토리나 밤 같은 나무 열매는 중요한 탄수화물 공급원이었다. 이것을 모으는 일은 단순한 채집이 아니라 계절을 넘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가장 오래된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도토리는 밤처럼 껍질만 벗기면 먹을 수 있는 친절한 열매가 아니다. 먼저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을 없애기 위해 말리고, 빻고, 물에 여러 차례 우려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녹말을 가라앉힌 뒤 그 녹말을 다시 일정 비율의 물과 섞어 끓여서 굳혀야 비로소 도토리묵이 완성된다. 야생의 열매를 사람의 음식으로 바꾸는 일은 단순한 조리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가공·저장해 두고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지혜는 훗날 식품 가공 기술의 출발점이 됐고, 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생존 기술 중 하나였다.
실록이 기록한 구황식품,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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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에 도토리”란 속담이 있다. 여럿 가운데 끼지 못하는 존재를 의미하는데, “먹을 게 많으면 도토리엔 관심도 주지 않는다”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기근과 전쟁으로 굶주림에 허덕일 때마다 도토리는 한국인에게 구황의 보물단지로 변신했다. 옛 문헌이나 농서의 기록을 보면 도토리는 한반도 역사 속에서 구황의 구실을 똑똑히 해왔다.〈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22대 임금 정조가 도토리를 파종한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도토리를 관리한 기록이 있다. 다른 임금의 실록에도 흉년이 들 땐 임금이 관찰사와 수령들에게 명해 “산중의 도토리를 거둬 가루를 만들어뒀다가 백성들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한 내용이 여럿 등장한다. 조선 후기의 사상가 이익(1681~1763)도 〈성호사설〉에서 굶주린 백성을 다스리는 위정자들은 산림자원에 눈을 떠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라북도 순창군에 가면 주민들 사이에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도토리에 얽힌 전설이 하나 돌아다닌다. 일명 강천산의 ‘1000년 도토리’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강천산에는 1000년을 지켜온 거대한 도토리나무가 살고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흉년이 들면 거대한 도토리나무가 유난히 많은 열매를 맺어 사람과 짐승을 살렸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를 동신목으로 모셨다고 한다. 또 욕심을 부리는 사람에게서는 도토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자연과 공존하고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도토리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었다는 기억을 품고 있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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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묵이 만든 풍경
지구촌 다른 지역에서도 도토리를 식용으로 사용한 흔적은 있다. 북미의 원주민은 도토리 가루로 죽을 쑤어 먹었고, 중동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 때 도토리 가루를 빵 반죽에 섞어 먹었다. 스페인에서는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코 돼지가 명품 식재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토리 녹말을 추출해 묵으로 만들어 일상적인 반찬이자 향토 음식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산지에 널린 것을 마음대로 주울 수 있어 제대로 대접받은 적 없는 열매지만, 도토리가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곳도 있다. 호남고속도로 북대전IC 근처의 대전 구즉마을(현 구즉동). 한때는 ‘한 집 건너 한 집’이라고 할 만큼 도토리묵집이 번성하며 ‘구즉묵마을’로 불렸다. 1980년대 초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생계 수단으로 시작한 묵 장사가 동네를 바꿔놓은 것이다. 인근 야산에서 도토리를 채취해 만든 묵으로 묵밥을 말아 팔았는데 이것이 ‘구즉마을=도토리묵’이란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냈다. 아쉽게도 지금은 원조 묵집 중 몇몇 집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대전 곳곳으로 흩어져 영업 중이다.
구황식품에서 별미로, 담백함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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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은 스스로 강렬한 맛을 내지 않는다. 특유의 은은하고 담백한 풍미, 혀끝에 남는 쌉싸름한 여운 그리고 치아를 살짝 밀어내는 듯한 쫀득거림이 식감의 전부다. 그런데 이 담백함이 한식 양념과 개성 있는 조화를 이뤄낸다. 도토리묵무침의 경우 짭조름한 간장과 고소한 들기름, 알싸한 파와 마늘, 붉은 고춧가루의 맵싸한 맛, 여기에 들깨와 상추까지 도토리묵과 어우러져 화려한 풍미를 완성한다. 여름철에는 묵을 새끼손가락 크기로 잘라 만든 묵사발에 차가운 동치미나 채수를 부어 시원한 청량감을 맛보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국물에 말아낸 묵밥으로 차가운 몸을 녹이면서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한다.
최근에는 산채 음식이나 향토 음식의 영역을 넘어 파인다이닝에서도 새로운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도토리의 담백한 풍미와 투명하면서도 탄력 있는 식감이 현대적인 담음새와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셰프들은 제철 채소와 허브, 해산물, 숙성한 육류 등을 곁들여 도토리묵을 전채 요리로 선보이거나, 도토리 녹말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하며 전통 식재료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오랜 세월 굶주림을 견디게 해준 생명의 음식이 오늘날에는 계절의 맛과 자연의 가치를 담은 미식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토리 한 톨을 통해 우리 유전자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숲의 기억과 생존의 역사를 함께 맛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 글. 유지상
- 유지상은 식품 제조 기업의 연구원으로 경력을 시작해 일간지 음식 전문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했다. 현재는 식문화온라인 매거진 ‘쿡앤셰프’의 편집인으로 일하며, 방송 출연 및 다양한 매체 기고를통해 음식 문화, 식재료, 한식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