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최고를 위한 최선
처음 길을 내는 사람에게는 따라 걸을 앞사람의 등도, 찾아볼 지도도 없다. 그러니 방향을 정하는 기준은 오직 자기 안에 있어야 한다. 1998년 스무 살의 나이로 US여자오픈 정상에 올랐고,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박세리.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기준으로 새로운 길을 냈다. ‘박세리 키즈’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됐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최고라 부른 적이 없다. 최고라고 여기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수에서 감독으로, 경영자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사람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여전히 앞을 향해 걷는 그를 만났다.
Q. 골프 인생을 달려오는 동안 수많은 갈림길이 있었을 텐데요. 지금 돌이켜봤을 때 ‘내 골프 인생을 가장 크게 바꾼 선택’ 단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육상을 하다가 아버지를 따라 골프를 처음 접했는데, 그때는 혼자 하는 운동이라 재미가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대회를 직접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골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의미 있는 성적도 비교적 빨리 냈어요. 하지만 정말 ‘이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조금 뒤였어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내가 꼭 성공해서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거든요.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제게는 골프를 끝까지 붙잡게 만든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Q. 많은 사람이 1998년 US여자오픈의 ‘맨발 샷’을 한 시대의 상징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본인에게는 그날이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나요?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미국 투어 진출 첫해에 거둔 두 번째 우승이었어요. 그것도 메이저 대회였죠.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서 첫 우승을 했으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였어요. 제 자신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는 확신이 생겼죠. 그렇다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라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부모님은 늘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더 큰 사람이 되려면 자만하지 말고 누구보다 성실해야 한다고요. 그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지금도 제 신념은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Q. 갓 스무 살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머쥔 선수로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부모님은 늘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더 큰 사람이 되려면 자만하지 말고 누구보다 성실해야 한다고요. 그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지금도 제 신념은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고 믿거든요. 골프는 자연 속에서 결국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스포츠예요.
Q. 당시 한국 선수에게 메이저 무대는 참고할 지도도, 앞서 걸어간 선배도 거의 없는 곳이었습니다. 무엇이 감독님을 그쪽으로 이끌었나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치른 대회에 저도 출전한 적이 있어요. 그 선수들을 직접 보면서 ‘바깥에 더 큰 무대가 있구나’라는 걸 처음 실감했죠. 그때부터는 망설임이 없었어요. 무조건 가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목표가 분명하니까 환경은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Q. 그 뒤로 이름 앞에 ‘최초’라는 말이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그 무게는 어땠나요?
부담감보다는 해보고 싶은 게 더 많았어요.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항상 더 큰 사람이거든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성급하게 움직이진 않아요. 머릿속에서 계속 그려보고 지워보고, 선 하나를 긋고 기둥 하나를 세우듯 충분히 생각한 뒤에 움직이는 편이죠. 그렇게 하나씩 쌓아가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런 감독님에게도 길고 깊은 슬럼프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투어 생활 7년 만이었어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된 뒤 한국 대회를 치르고 다시 미국 투어에 나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샷 감각이 예전 같지 않은 거예요.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예선 탈락이 이어지고, 쉬는 동안 연습을 더 해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슬럼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Q. 슬럼프는 얼마나 이어졌나요?
1년 반 정도 됐어요. 저는 대회장 첫 티샷의 순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갤러리가 많을수록 더 힘이 나는 선수였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즐기던 그 순간이 두려움이 된 거예요. 포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내가 이제 골프를 못 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벗어나려고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렸지만 오히려 몸을 다치고, 그립조차 잡기 힘든 상황까지 갔어요.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도 공허하게 다가왔고요.
Q. 그 시간에서 빠져나온 계기가 있었나요?
우연히 꽃게 낚시를 갔는데, 그날 바다가 유난히 고요했어요.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다가 문득 ‘나는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가혹하게 대하고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 정도면 잘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웠어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나아지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나아지면 된다는 걸요. 그렇게 조금씩 회복했고, 결국 대회 연장전 우승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가장 값진 것을 배운 시간이었어요.
Q. 길을 여는 결정만큼 어려운 것이 스스로 내려오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은퇴 시점을 정하셨는데, 이런 판단은 어떻게 내리셨나요?
흔히 박수 칠 때 떠나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봐요.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을 때 내려와야 한다고요. 정상에 있으면서 내려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런 위치일수록 미련도 아쉬움도 남김없이 내려놓을 마음이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은퇴 시점을 마흔 살로 정하고 3년 전부터 조금씩 정리했죠. 어느 날 갑자기 “은퇴합니다” 하는 게 아니라요. 그 3년은 성적에만 매달리던 선수에서 벗어나 골프에 이런 의미도 있구나, 그런 걸 느껴보려 한 시간이었어요. 성적을 떠나 팬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여유도 그때 생겼고요. 은퇴식 날은 시원섭섭했지만 그걸 미룰까 하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마흔 살 이후는 또 다른 제 인생을 살아봐도 되는 시간이라 여겼죠.
흔히 박수 칠 때 떠나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봐요.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을 때 내려와야 한다고요.
Q. 은퇴 후에는 방송이라는 낯선 무대에도 서게 됐습니다.
워낙 보수적이고 운동만 해온 사람이라 처음 방송 활동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무슨 방송이냐 싶었어요. 그러다 2016년 여자 골프가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되고 제가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에 홍보 일환으로 출연한 것이 시작이었죠. 이후에도 섭외가 계속 들어왔지만 한동안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많은 분이 저를 강한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계신 게 아쉽더라고요. 제 진짜 모습을 보여드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어요. 없는 모습을 만들어내지는 못해서 정말 가감 없이 보여드렸는데, 그런 솔직함을 오히려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죠.
Q. ‘박세리 키즈’라는 말이 생길 만큼 많은 후배가 감독님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선수들이 자라는 환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커요. 다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부분도 있습니다. 요즘 데이터와 정보는 훨씬 많아졌지만, 정작 선수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느끼거든요.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모든 것이 비즈니스 중심이 됐고, 연습 환경이나 지원도 예전만 못한 부분이 있죠. 그런 여건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우리 선수들이 참 대단하고,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Q. 유소년 선수의 부모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늘 같은 말씀을 드려요. 부모의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아이의 꿈은 없어질 수 있다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은 재미를 느껴야 해요. 재미가 있어야 욕심도 생기고, 스스로 더 해보고 싶어지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중요한 선택은 제가 직접 하도록 믿고 기다려주셨던 게 큰 힘이 됐어요. 성적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마다 성장 속도는 다르니까,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결국 가장 큰 응원이라고 생각해요.
부러워해야 왜 잘하는지 궁금해지고, 배우려는 마음도 생기거든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계속 발전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결국 좋은 자리에 가는 것 같아요.
Q. 오랫동안 승부의 세계에 계셨습니다. 감독님에게 ‘좋은 승부’란 무엇인가요? 단순히 이기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부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나보다 잘하는 선수를 보고 ‘저 선수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돼요. 부러워해야 왜 잘하는지 궁금해지고, 배우려는 마음도 생기거든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계속 발전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결국 좋은 자리에 가는 것 같아요.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죠. 많은 분이 겸손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저를 낮추는 게 가장 편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살다 보니 경기 때마다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었어요.
Q. 앞으로 박세리라는 이름으로 가장 만들어보고 싶은 길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1세대 신화’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세대, 3세대로 영광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니, 제 기록을 넘어 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갈 후배들이 계속 나오길 바라요. 현재 박세리희망재단을 통해 미국과 아시아, 한국의 주니어 골프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선수들이 목표한 꿈을 이루고 저와 다시 만나는 순간을 간절히 그리고 있습니다. 더 큰 욕심이 있다면 스포츠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발굴하고 싶다는 거예요.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인재를 찾아내고 키워나가는 선순환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 글. 한미림
- 사진. 전명은
- 장소. 로얄앤코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