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 June 2025 (Vol. 49 No. 03)

나는 그들의 우주로 간다 - Part 2.

〈모닝캄〉은 일상의 주제에 통찰의 언어를 더한 ‘옴니버스 스토리’를 연재한다. 다국적, 다방면의 전문가들의 연재로 완성되는 ‘옴니버스 스토리’가 비행 중 그리고 비행이 끝난 후에도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정유정 작가가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 정유정은 인간 본성의 이면을 탐구하는 강렬한 서사와 치밀한 플롯으로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는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와 〈내 심장을 쏴라〉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은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는 영화화됐으며, 그의 작품은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2021년부터 ‘욕망 3부작’을 집필, 2024년 〈영원한 천국〉을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지난 호 Part 1에서 이어집니다.


바하리야 사막

— 그들의 우주로 가다.

소설에서 공간은 중요한 요소다. 내 경우, 가장 중요하다. 공간이 구축돼야 인물에 숨이 붙고, 인물이 자기 세계에 서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파편화된 아이디어와 피상적 인물들이 ‘가능성’의 형태로 혼돈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공간은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이야기가 이야기되는 곳이라야 한다. 이는 주인공이 살아가는 물리적 세계를 뜻한다. 두 번째, 이 물리적 세계는 주인공의 내면을 은유하는 심연을 품고 있어야 한다. 지상과 지하, 신화와 동화, 육체와 영혼이 중첩되는 두 차원의 세계가 공간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공간을 그들의 우주라 부른다.

그곳을 찾는 방법은 많고도 많다. 책에서, 역사에서, 지도에서, 상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여행이다. ‘그곳’이다 싶은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직감에 의지한 여정이기에 실패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세상에 백발백중 사냥꾼은 없는 법이니까. 그래도 세 번에 한 번 정도 들어맞는다면 괜찮은 승률 아닐까. 실패한다 해도 여행을 즐기고 추억도 챙겼으니 이래저래 이득이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길었는데,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그날 아침 우리는 바하리야 사막으로 떠났다.

내가 이집트에 온 진짜 이유였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 〈영원한 천국〉의 여주인공 해상은 사막여우를 사랑하는 동물행동학자이자 루게릭병 환자다. 그녀의 영혼은 위축과 마비가 진행되는 몸 안에 갇혀 점점 황폐해진다. 나는 그녀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사막을 떠올렸다. 문제는 해상의 친오빠인 제이가 그녀와 사막여행을 떠난 시점에서 진도가 더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애 좋은 두 남매가 사막에서 뭘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무렵에 우연한 행운이 문학 행사 초청장이라는 형태로 내게 왔다. 그것도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만났을지도 모르는 곳, 바하리야 사막이 있는 나라의 초청이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답변은 딱 하나다. 땡큐.

나와 지니는 흰 SUV를 타고 카이로를 벗어났다. 승객은 우리 둘뿐이었다. 본래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갈 예정이었지만 알 수 없는 사정으로 우리만 가게 됐다는 여행사 사장의 전갈이 있었다. 사장의 이름은 투에 이은 세 번째 모하메드였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이집트 청년으로 그 역시 모하메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거리에서 부르면 지나가던 남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돌아볼 만큼 최고로 인기 있는 이름이란다. 나는 그를 ‘포’라 부르기로 했다.

포는 베이스캠프 격인 베두인족 마을까지 5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 말했다. 그곳에서 1박 2일 동안 우리를 책임질 가이드 및 기사와 접선할 예정이었다. 포의 임무는 접선 장소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었다.

이집트는 나라 자체가 사막인 것 같았다. 카이로를 벗어난 이후부터 황막한 모래벌판이 이어졌다. 황갈색 모래바람에 사막초가 구르고, 붉은 암석 절벽 위에선 까마귀가 날았다. 사람이나 문명의 흔적은 물론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원이었다. 마치 해상의 운명을 계시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베두인족 마을에 도착한 건 점심 무렵이었다. 활짝 열린 어느 집 대문 앞에 갈래머리 소녀가 서 있었다. SUV는 대문을 통과해서 지프가 주차돼 있는 마당에 섰다. 포가 여행이 즐거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최고’가 이집트어로 뭐냐고 물었다. 그는 엄지를 들었다.

“메야메야.”

이집트에 온 후 처음으로 우리는 모하메드가 아닌 남자들과 만났다. 가이드는 20대 청년 센, 기사는 베두인족 알레. 우리는 방으로 안내됐다. 점심을 먹으면서 깨달은 것인데, 이집트 밥상과 한국 밥상은 비슷한 데가 있었다. 쌀밥과 에이시라는 이집트 전통 빵, 그 외 다양한 반찬이 한 상에 차려졌다. 전날 밤, 카이로의 코샤리(이집트 전통 음식) 맛집이라는 ‘아부타릭’에서도 느꼈지만 입맛 역시 비슷한 것 같았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코샤리가 일상에서 먹어온 음식처럼 익숙한 맛이었던 걸로 미루어.

“우리더러 조심하라는데.”

지니가 킥킥대고 웃었다.

“뭘?” 하고 묻자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지인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여자 둘이 건장한 청년 둘과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캠핑을 하는 게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였다. 나는 빵 한 쪽을 찢어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글쎄. 그런 걱정은 저 청년들이 하고 있을 거 같은데.

오후 1시. 우리는 알레의 지프에 탔다. 가져온 트렁크는 베이스캠프에 두고 사막에서 필요한 것들만 배낭에 챙겼다. 경량 파카, 물티슈, 고글, 모자, 선크림. 신발은 삼선 슬리퍼로 바꿔 신었다. 사막 캠핑에 최적화된 신발이란다.

지프는 마을을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섰다. 1시간쯤 후엔 바하리야의 첫 경유지, 검은 사막에 도착했다. 센이 설명하기로, 바하리야는 ‘바다의’라는 뜻이었다. 그 옛날 심해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물이 모두 증발하는 바람에 사막이 됐다는 것이었다.

검은 사막에는 폭발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변 모래언덕과 구릉, 봉우리까지 검은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봉우리를 올라가면서 만져본 결과, 모래라기보다는 까슬까슬하고 날카로운 질감을 가진 현무암 부스러기에 가까웠다.

다음 행선지는 오아시스였다. 놀랍게도 온천이 있었다. 이 역시 화산 폭발의 여파로 생겨난 것이었다. 더 놀랍게도 비키니 미녀들이 셀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소식은 이곳에 마지막 문명식 화장실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후부턴 자연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므로 반드시 다녀오라는 센의 조언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때부터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천지사방이 툭 틘 사막에서 바지를 내리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으므로.

세 번째 경유지는 크리스털 사막이었다. 화산 열기에 모래가 석영으로 변하면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반짝이는 모래언덕과 햇빛을 반사하는 암벽에 눈이 부셔 고글을 꺼내 꼈다. 기왕 낀 김에 프로 클라이머처럼 바위에 착 들러붙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알레는 크리스털 사막을 가로지르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경사가 가파른 모래언덕이 나타나자 전속력으로 올라섰다가 활강하듯 미끄러졌다. 사막판 롤러코스터 놀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소프라노 음역대의 비명이 터졌다. 두 배쯤 높은 언덕으로 올라서고 떨어지자 비명은 두 옥타브가 더 올라갔다. 세 배 높이로 비상했다 떨어질 땐 돌고래 소리가 났다. 만약 그때 지프 근처를 날던 까마귀가 있었다면 아마도 귀에서 피가 났을 것이다.

알레는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차를 세웠다. 센이 샌드 보드를 타러 가자고 했다. 나로 말하면 보드를 타본 적이 없는 생짜 초보였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 운동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나 신나는 놀이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보드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센은 발에 고리를 끼워주며 용기를 북돋웠다.

“고리에서 발을 빼지 마세요. 그럼 괜찮아요.” 센이 잡고 있던 보드 끝을 놓았다. 나는 보드와 함께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경사가 보기보다 가팔랐다. 흉악무도한 속도감이 온몸으로 덮쳐들었다. 배꼽 부근에선 간질간질한 감각이 야구공처럼 뭉쳤다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은 이내 소리로 터져 나왔다. 메야메야.

해 질 무렵, 우리는 세 번째 사막에 도착했다. 오늘 밤 묵을 캠핑지이자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하얀 사막이었다. 이름 그대로 새하얀 석회암의 세상이었다. 사막이 아니라 빙하와 유빙이 떠다니는 남극에 온 기분이었다. 띄엄띄엄 늘어선 주상절리 암벽도, 세상의 온갖 형상을 닮은 바위들도, 모래 사이로 물결을 이룬 바닥도 온통 눈빛이었다. 센이 말했다.

“태초의 바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알레는 캠핑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센은 우리에게 산책을 권했다. 운이 좋으면 고생대의 조개나 암모나이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발견하면 하나 정도 가져가도 된다고 귀띔했다. 나와 지니는 석회암 파도 위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먼 지평선에서 태양이 낙하하고 있었다. 암적색 구름 아래로 핏빛 노을이 번지고, 사막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 듯 진홍으로 일렁거렸다. 우리는 지평선을 향해 섰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선 채 붉은 무애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선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별 근거 없는 직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노을이 짙으면 비가 온다는데, 설마 오늘 밤 전설의 사막 비를 맞는 건 아니겠지? 비가 오면 별을 보지 못할 텐데. 여우가 굴에서 나오지도 않을 텐데. 별은 못 봐도 여우는 꼭 만나야 하는데….

우리는 지프로 돌아왔다. 그새에 캠핑 준비가 끝나 있었다. 네 방위에 말뚝을 박고 양탄자를 둘러 만든 벽, 바닥에는 매트리스 네 개, 그 위에 놓인 슬리핑 백과 담요. 지붕은 없었다. 텐트도 없었다. 희망이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두 사막 전문가가 텐트를 치지 않았다’와 ‘비가 오지 않는다’는 동의어로 해석됐다.

우리는 하얀 김을 내뿜고 있는 큼직한 냄비 옆에 앉았다. 고소한 밥 냄새가 났다. 알레는 채소를 다듬는 중이었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선 모닥불이 타오르고, 그릴에선 메인 메뉴가 익어가고 있었다. 양고기와 닭고기라고 센이 가르쳐줬다.

알레의 요리 솜씨는 훌륭했다. 고기도, 볶음밥도, 스튜도 다 맛있었다. 하기는 ‘모닥불이 타오르는 사막에서의 저녁 식사’라면, 뭔들 맛이 없겠는가. 배가 불러 다 먹지 못한 게 유감이었다. 그보다 더 큰 유감은 식사가 끝나갈 즈음 우려하던 불청객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비는 아니었으나 비보다 더 나빴다. 석회암만큼이나 희고 밀도 높은 안개가 삽시에 사막을 점령해 버렸다. 하얀 하늘은 이마 위까지 드리워졌다. 사막이 아니라 눈보라 치는 설원에서, 텐트도 없이 야영을 하는 기분이었다. 백색 어둠 뒤에선 늑대의 하울링이 들려올 것 같았다. 센의 말로는 이 사막에 안개가 끼는 건 폭우가 쏟아지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 직감은 왜 쓸데없는 일에만 들어맞을까. 그래도 나와 지니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여우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알레가 녀석을 위한 음식과 물을 저 앞에 놔두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여우에게 삶의 법칙에 대한 특강이라도 하고 싶었다. 안개가 끼든 말든 너는 먹고살아야지. 안 그래?

모닥불이 깜부기불이 돼가던 즈음이었다. 나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희미하긴 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것의 발소리였다. 먼 곳으로부터 점점 가까워져 오는 소리였다. 무언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애타게 기다린 것이, 사막을 포위한 하얀 어둠을 뚫고 석회암 바닥을 조심스레 디디면서, 자박자박.

잠시 후 발소리가 멈췄다. 1분 혹은 그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돌아가 버렸나 싶은 순간, 다시 발소리가 났다. 얼마 후에는 또 멈췄다. 나는 안달이 났다. 뒷덜미 털이 서고 따가운 감각이 살을 덮었다. 발소리가 다시 시작됐을 땐 숨까지 가빠왔다. 오려면 내처 오든가. 왜 오다 말다 하는 거야.

세 번째로 발소리가 멈췄다. 우리로부터 불과 20여 m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무언가를 먹는 소리가 났다. 지니는 먹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휴대전화 플래시를 켰다. 녀석이 놀라 도망치지 않도록, 바닥에 빛을 떨어뜨린 후 서서히 이동시켰다. 안개에 산란된 빛은 구무럭구무럭 기어가다 목표 지점에서 멈췄다.

안개 입자가 부옇게 떠도는 빛의 원 안에 여우가 서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녀석의 새까맣게 빛나는 눈과 마주친 순간이었다. 1초 어쩌면 2초, 녀석과 눈을 맞추고 있던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온 힘을 다해 피하고 있던 생각이 잠재의식 밑에서 튀어 오를 때 울리는 소리였다.

제이는 해상의 친오빠가 아니야. 그냥 오빠야.


에필로그

— 여행이 내게 선물한 것들

아마도 나는 〈영원한 천국〉을 구상할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상과 제이가 연인이어야 한다는 걸. 다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룰 자신이 없었다. 소설을 망칠 거라는 불안이 너무 컸다. 무명 시절에 썼던 연애소설이 불안의 발원지였다. 당시 원고를 읽어준 한 친구는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친구보다 좀 더 친절한 친구는 짤막한 평가를 남겼다.

“넌 사랑 이야기만 안 쓰면 돼.”

이후 다시는 이 분야에 도전하지 않았다. 연애 서사가 필요하면 신문 기사처럼 건조하고 짤막하게 다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는 작가는 따로 있다고 믿었다. 해상과 제이를 아득바득 남매로 설정한 이유였다. 소설이 몇 달째 표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바하리야에서 여우와 눈을 마주치던 순간에야 나는 문제를 똑바로 보게 됐다.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불안을 등에 업고 실패했던 길을 다시 가는 것.

바하리야 사막은 신작 〈영원한 천국〉에서 해상과 제이의 세계로 재현됐다.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이 시작된 무대이자 해상을 상징하는 우주가 됐다. 내 원고의 첫 독자인 지니는 해상과 제이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둘이 남매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

바하리야 여우는 내게 용기를 선물했다. 내 삶의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그 적이 바로 나 자신이었을 때 소매를 걷어붙이고 제대로 한 판 붙어볼 용기를.
돌아보면,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12년 전 암 진단을 받고 1차 치료를 끝냈을 때였다. 몸은 회복되고 있었으나 다시 펜을 들 힘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떠났다. 5416m 고지, 소롱 라 패스에 올라선 뒤 안나푸르나에게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안나푸르나의 답은 이랬다. 죽을 때까지.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그린 소설 〈종의 기원〉을 쓰기 전엔 내 생애 가장 먼 길을 떠났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 학습되고 길러진 나를 깨뜨리고자 산티아고 순롓길로. 8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1000km를 걸어서, 피니스테레라는 스페인 서쪽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내 영혼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지각변동을 경험했다. 인생의 수많은 상처와 숨겨왔던 열등감, 억눌러온 분노와 너무 일찍 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유 모를 설움 같은 것들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와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엎드려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울었다. 울음이 끝났을 땐, 소설 속 사이코패스로 태어날 준비가 돼 있었다.

누군가는 휴식을 얻으러 떠난다. 누군가는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는 불화하던 자신과 화해하기 위해 떠난다. 누군가는 피안에 이르고자 떠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우주를 찾아 떠난다. 혹은 내 안의 적과 맞설 용기를 얻고자 떠난다. 살아 있는 한,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일단은 일본 최대의 고산 습지라는 ‘오제’가 나를 기다린다.

  • 글. 정유정
  • 일러스트레이션. 권민호 & Hw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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