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가 된 악동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매일 음악을 이야기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 그가 남긴 음악 메시지
‘성숙’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유는 별 거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수도 없이 써먹은 탓에 뭔가 뻔하고, 관습적인 듯한 기분을 줘서다. 쉽게 말해 ‘성숙’은 게으른 선택지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가끔 이 표현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곡이나 앨범을 만난다. 악동뮤지션(이하 ‘악뮤’)의 〈항해〉(2019)가 정확히 그런 경우다.
그렇다. 악뮤의 〈항해〉에는 이 남매 듀오의 음악적인 깊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했음을 증명하는 곡이 여럿 담겨 있다. 그들이 ‘아이 동(童)’ 자를 빼고 ‘악뮤’로 이름을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진행돼 역사로 남을 겨를조차 없는 세상,그럼에도 이 음반은 위대한 예외로 인정받아 먼 후대에도 거론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굳건히 차트에 자리하고 있는 풍경이 이를 증명한다. 〈항해〉는 가히 현대 대중음악의 클래식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다.
악동뮤지션의 시작
그들의 데뷔를 기억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K팝스타2〉 우승을 통해 먼저 인지도를 쌓았고, 2014년 대망의 데뷔앨범 〈PLAY〉를 발표했다. 상업적 결과는 예측 그대로였다. ‘200%’와 ‘얼음들’이 히트하면서 곧장 정상으로 치고 올라갔다.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악뮤는 음원 강자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발표하는 곡과 앨범이 차트 줄 세우기를 일상처럼 치러냈다.
글쎄. 무 자르듯 나눌 순 없지만 기왕의 악뮤 음악과 〈항해〉 사이에는 결정적인 분기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항해〉 이전까지 악뮤의 음악은 동심과 장난기로 가득했다. 나이를 고려할 때 음악적인 숙련도는 그 어떤 곡에서든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타고난 센스가 발휘되는 측면이 여러모로 강했다. 이를테면 이 시기 악뮤의 음악은 ‘감각’의 음악이었다. 그들은 번뜩이는 재능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줄 알았다. 〈K팝스타2〉에서 나온 히트곡인 ‘다리꼬지마’(2012)와 ‘라면인건가’(2013)를 시작으로 〈사춘기 상(思春記 上)〉(2016)의 수록곡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RE-BYE’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들의 ‘항해’
〈항해〉는 다르다. 통통 튀는 분위기는 어느덧 사라진 대신 거기에 풍성하고 다채로운 결이 스며들었다. 음악만 놓고 보면 더 이상 악동이 아니라 대중 예술가의 지위에 훌쩍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외에도 좋은 곡이 다발이다. 서정미 넘치는 선율로 듣는 이를 부드럽게 자극하는 ‘뱃노래’, 록과의 연계를 시도한 동시에 탁월한 완급조절로 고루함을 벗어던진 ‘더 사랑해줄걸’, 컨트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소화한 ‘물 만난 물고기’ 등등. 곡 설명하다가 지면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다. 그 중 최고를 꼽으라면 ‘고래’를 선택할 것 같다. 이곡에서 악뮤는 아날로그 감성의 어쿠스틱기타와 클랩(박수) 비트, 휘파람 소리 등을 절묘하게 섞어내는 방식으로 ‘최신 바이브’를 일궈낸다. 정말이지 이 곡 듣고는 깜짝 놀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솔직한 독후감이다. 2020년 발표한 ‘HAPPENING’, 아이유와 함께 부른 ‘낙하’(2021)에서도 이런 평가는 유효하다. 이 곡들에서 악뮤는 굳이 절정으로 치닫지 않는다. 담백한 전개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설득력을 일궈내면서 듣는 이를 자연스럽게 쓱 끌어당긴다. 뭐로 보나 보통내기의 음악이 아니다.
이제 노랫말을 봐야 할 차례다. ‘달’에서의 다음 문장은 어떤가.
“자막없이 / 밤하늘보고 / 번역없는 / 바람 소릴 듣지”
그런가 하면 이런 가사도 있다. ‘뱃노래’의 일부다.
“몇고개 몇고개의 / 파도를 넘어야 하나 /
소금기 머금은 바람 / 입술 겉을 적신다 /
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 / 자유하는 법을 알아”
“자유하는 법을 알아”라니, 시적 허용에도 예술이 있다면 이런 표현일 것이다. 심지어 악뮤는 특유의 재기도 잃지 않았다. 다만 조금은 더 의젓해진 태도로 삶을 노래하고, 듣는 이에게 응원을 불어넣는다. 일례로 ‘후라이의 꿈’ 같은 곡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다. 과연,그들은 더 이상 악동이 아니다. 음표를 제련하는 자신만의 연금술을 지닌, 젊은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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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은 음악평론가이자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100장의 음반〉, 〈청춘을 달리다〉, 〈평양냉면: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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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엔터테인먼트 내 ‘꿈으로 함께 비행하는 AKMU의 노래’ 섹션에서 청취가 가능합니다.
배순탁이 추천하는 악뮤의 곡들
다이노소어 (2017)
이 곡의 매력은 ‘구체성’에 있다. 어린 시절의 풍경을 세세하게 호출하는 속에 차근차근 부피를 키워나가는 후렴구를 얹어 명곡 하나를 빚어냈다. 이렇듯 구체적인 묘사는 설령 그것이 꾸며낸 것이라 할지라도 곡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다.‘다이노소어’이 곡이 바로 그렇다.
시간과 낙엽 (2014)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스트리밍 사이트 댓글을 보면 수많은 팬이 “2025년에도 들어요”라고 쓴 것을 알 수있다. 악뮤의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 ‘펀치라인’을 만날 수 있다.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 난 추억이란 댐을 놓아” 같은 노랫말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프리덤 (2019)
도입부를 듣자마자 확신했다. 찰랑찰랑 리듬 터치가 무엇보다 빼어나고, 곡 전개가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이게 바로 내가 악뮤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들은 정확하게 음악할 줄 안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다. 우리는 정확성과 감동이 동행하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이 곡이 증명한다.
그때 그 아이들은 (2017)
요즘은 졸업식에 바로 이 곡,‘그때 그 아이들은’을 애정하는 친구가 많다. 따라서 꼭 가사를 보면서 감상하길 권한다.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곡을 끌고 가는 초반부의 솜씨가 특히 대단하다. 현악이 추가되는 중반 이후도 근사하다.
Preview
아이브, 아이브 엠파시
‘K-팝의 독보적인 존재감’ 아이브가 팀을 상징하는 주체적인 자신감을 바탕으로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그동안 자기애로 가득 찬 아이브의 이미지를 그려왔다면, 이번엔 다양한 시선에서의 ‘공감’에 주목한다. 타이틀곡 ‘Rebel Heart’는 위로와 공감을 겨냥해 동료애를 강조하며 다채로운 보컬과 벅차 오르는 후렴구로 함께 어우러진다.
플레이브, 칼리고 파트 1
5인조 버추얼 보이 그룹 플레이브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다재다능한 다섯 멤버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Caligo Pt.1〉의 타이틀곡 ‘Dash’는 강렬한 록 기반의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록스타가 된 플레이브의 변신을 전면에 드러낸다. 버추얼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이들의 행보를 앨범을 통해 감상해 보자.
송가인, 가인; 달
트로트 여제 송가인이 정규 4집 〈가인; 달〉로 음악적 변신을 선보였다. 전통 트로트부터 발라드와 모던 가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담은 이번 앨범은 더블 타이틀곡 ‘아사달’과 ‘눈물이 난다’, 송가인이 직접 작사에 참여한 ‘평생’ 등 총 9곡으로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위켄드, 허리 업 투모로
두 앨범 〈After Hours〉(2020)와 〈Dawn FM〉(2022)으로 이어지는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 R&B, 신스팝, 트랩 장르에 펑크와 힙합을 더한 재치는 물론 위켄드로서의 피날레다운 완성도가 돋보인다.
사브리나 카펜터, 쇼트 엔 스위트 (딜럭스)
오늘날 가장 핫한 팝스타 사브리나 카펜터의 유머와 솔직함으로 가득 찬 6집 앨범. 사브리나 개인의 연애 생활과 2020년대 인간관계에 대한 ‘짧고도 달콤한(Short n’ Sweet)’ 감정과 시선을 위트 있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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