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학, 겹
한국인이 공유하는 미의식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정신의 근저를 살펴 이것을 현재의 지형에서 의미 있게 펼쳐보고자 살펴보는 두 번째 주제는 ‘겹’이다. 겹의 개념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축적된 시간의 층위, 선과 비례의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조형적 깊이 그리고 하나의 태도이자 질문의 방식으로서 정신의 스밈(침윤)까지 고루 아우른다. 한국인의 미의식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겹의 미학을 살펴본다.
- Gradation K는 전통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이 깃든 전통 미학을 오늘의 시선에서 탐구하는 칼럼이다. 그 두 번째 주제는 시대, 정신, 조형적 요소가 축적해 만들어내는 ‘겹’의 미학이다.
한복, 여미고 스미는 한국미의 정수
한복의 역사
5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한복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유산이다. 한복은 동북아시아 유목 문화권의 복식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정치·사회적 변화 및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전해져 왔다. 한국인의 미의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그 근간에는 자연과의 조화, 자연에 대한 순응이라는 자연주의적 미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미의식은 오랜 역사 속에서 시대의 사상과 문화가 축적되며 발전했고, 한복 역시 그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한복의 형태는 조선시대의 복식에서 비롯됐다. 조선 초기에 한복은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선비의 품격과 절제의 몸가짐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출발했으며,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자연을 즐기는 선비의 풍류 문화가 융합돼 더욱 발전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비움’의 미학이 강조되며, 소박함 속에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단순함이란 기교를 초탈한 무기교의 기교, 기교를 중요치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선 더 큰 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취했다.
- 크리스티나 킴의 한복 디자인 ⓒ Images courtesy of ONJIUM
한복의 미학, 선비 문화와 풍류 문화
한복은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선비 문화인데, 선비 정신은 선비들의 삶의 지향점이자 일상의 문화로 발현돼 가깝게는 조선시대부터 멀게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정신문화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소학〉에 따르면 선비는 항상 의관을 단정히 하여 용모를 다듬고 절제된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의복으로 예의범절을 가늠하던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나갈 때 입는 전형적인 형태의 관복뿐 아니라 평상시 집안에서도 의관을 정제하고 격을 갖추어 입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관직에 나갈 때 입는 전형적인 형태의 관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평상시 입는 편복의 모습은 품격 있는 선비의 정신문화가 빚어낸 미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바지저고리를 기본으로 여러 겹을 겹쳐 옷을 갖춰 입는다는 것은 의식과 태도를 단정히 하겠다는 선비 정신의 발로였으며, 이는 섬세하고 얇은 옷감이 간결한 선과 정제된 면으로 연결된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포(袍) 디자인으로 발전했다.
한편 조선의 선비는 진정한 인격체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 문학, 역사, 철학의 인문학은 선비 수기의 기본이요, 더 나아가 이른바 풍류라 하는 시서화를 교양으로 연마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추구했다. 선비들은 예법에 따른 의복을 여러 겹 차례로 입으며 품격과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풍류를 즐기는 또 다른 정체성을 지녔고, 이 모두가 오롯이 투영된 결정체가 우리의 한복이다.
한복의 색, 자연 그대로의 색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추구해 온 미적가치는 ‘자연미’다. ‘백의민족’이라고 칭해질 만큼 모시풀, 삼, 누에고치, 목화솜이 엮어내는 천연의 빛깔을 사랑했다. 옷감도 인위적으로 무늬를 넣은 불투명한 유채색 양단보다는 담백하고 맑고 시원한 ‘소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투명한 느낌을 선호했다. 조선 말기 여러 문헌에 기록된 옷감 이름은 갑사, 생고사, 숙고사, 은조사 등으로, 여기서의 ‘사’는 씨실과 날실의 교차점에 투공이 있게 짠 반투명한 옷감을 의미한다. 특히 개화기 무렵에는 자연이 준 색상, 섬유 본연의 빛깔과 재질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지나친 장식을 절제하고 자연의 미로 승화시킨 소색 한복이 돋보인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華而不侈)”는 선비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마치 조선백자와 같이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을 지닌 것이 개화기 한복의 특징이다. 1900년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화가 조제프 드 라 네지에르는 “흰색은 한국의 색이다. 조선의 고유 의상에서는 생동감이 넘치는 백옥같이 밝은 흰색부터 거칠고 광목처럼 투박한 흰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흰색을 만나게 된다”라고 기록한 바 있다.
한편 한복의 색동도 빠트릴 수 없다. 색동은 복을 기원하는 기복사상과 연결돼 있는 청, 적, 황, 백, 흑의 다섯 가지 오방색에서 기인한다.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를 지녀 주로 어린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색동옷이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신부의 혼례복에 활용했다.
- 글. 조효숙 / 사진. 아름지기재단 제공 및 구루비주얼
- 조효숙은 우리나라 복식사 분야의 전문가로, 현재 가천대학교 패션산업학과 석좌교수이자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의 공방장이다. 우리 전통문화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현대화해 올바른 내일의 유산을 연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종묘, 반복과 차이의 겹
겹겹이 이어지는 역사와 전통성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는 전통 건축과 제례 문화가 온전히 보존된 공간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 엄숙한 분위기의 건축양식, 신성한 공간을 강조하는 설계 방식 등은 한국 전통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종묘는 화려한 장식이나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긴장감 있는 단순한 구조를 유지한다. 이는 유교적 사상의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숭고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국 건축미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으로 구분되는데, 정전은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길고 낮은 형태가 특징이며 건물 한 칸 한 칸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단순한 구성을 한 신실이 겹겹이 모여 하나의 장대한 수평적인 건축 형태를 만들면서, 넓은 기단의 형식인 월대가 광대하게 펼쳐지며 공간을 장엄하고 숭고하게 만든다. 각 신실이 반복되고 겹쳐져 내뿜는 압도적인 장엄함은 고요하면서도 활력 넘치는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적조미’의 정수다.
차이와 반복, 종묘의 신실
종묘는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하고 있다. 정전과 영녕전 두 개의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각 사당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신실(神室)’이라는 독립된 방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정전에는 19칸, 영녕전에는 16칸의 신실이 있어 총 35칸이며, 이는 35명의 왕을 의미한다.
조선 왕은 모두 27명이지만, 이 중 연산군과 광해군은 제외돼 종묘에는 25명의 임금만 봉안돼 있다. 나머지 10칸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4대조를 추존해 4칸을, 사도세자 등 왕위에 오르지 못한 세자들을 왕으로 추존해 6칸을 채웠다.
종묘는 창건 당시 정전 7칸뿐이었다. 세종대에 이르러 신실이 부족해지자 별도로 영녕전을 세웠고, 이후 왕위 계승에 따라 정전은 19칸까지, 영녕전은 16칸까지 확장됐다. 1910년 조선이 멸망하며 더 이상의 증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전에는 공덕이 큰 왕들을, 영녕전에는 단명하거나 추존된 왕들을 모셨다.
신실은 독립된 사당으로서 동등한 격을 가지며, 동시에 긴 건물 속 일정한 질서에 따라 배열된다. 정전은 가장 서쪽에 태조를 두고 동쪽으로 갈수록 후대 왕을, 영녕전은 추존왕 4명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후대를 배치한다.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도 각 신실은 고유의 위치와 의미를 지닌 ‘부분이면서 전체’인 존재로, 반복과 차이가 공존한다.
정전과 영녕전, 초월적 척도와 인간적 척도
정전과 영녕전은 길이와 기능은 유사하지만, 지붕 형태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척도를 만들어낸다. 정전은 하나의 거대한 지붕 아래 19칸이 연속되며, 영녕전은 중앙 4칸 지붕이 한 단 높아 세 부분으로 분절된다. 이 차이는 두 건물의 척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척도(스케일)란 인간이 인식하는 상대적 크기를 의미한다. 예컨대 3층과 5층 건물의 차이는 쉽게 인식하지만 45층과 50층의 차이는 구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옆으로 3칸과 5칸은 구별하지만 종묘에서의 16칸과 19칸은 구별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수직으로는 5개 층, 수평으로는 5개 칸 정도가 인식 범위이고 이를 ‘인간적 척도’라 부른다. 그 이상의 규모가 되면 ‘기념비적 척도’라 부른다. 척도란 절대 크기가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정전은 19칸의 신실이 동일 높이로 연속돼 기념비적 척도를, 세 부분으로 분절한 영녕전은 인간적 척도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정전은 엄숙하고 초월적인 느낌을, 영녕전은 상대적으로 친밀한 느낌을 갖게 된다. 두 개의 유사한 사당을 조성하면서 척도를 달리해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종묘는 수없는 기둥과 칸이 겹쳐진 반복의 건축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질서와 척도가 공존하는 차이의 공간이기도 하다.
- 글. 김봉렬
- 김봉렬은 건축가이자 건축 역사학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의 상임 고문과 벽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 건축의 역사와 전통을 깊이 연구하고 이를 대중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