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이 건네는 현장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음악을 이야기하는〈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 그가 남긴 음악 메시지
단 한 소절로 청중을 압도하는 힘, 그것이 라이브의 본질이다. 가수는 라이브를 통해 노래를 말 그대로 ‘살아 있게(Live)’ 만드는 존재다. 골수팬이 아니어도 뇌리에 박힌 목소리를 잊지 못해 다시 듣고, 따라 부르고, 끝내 그 순간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 음원이라는 기록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현장의 생명력이 거기 있다.
내게는 그날의 성시경이 그랬다. 그의 라이브를 처음으로 봤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연장이 아니라 내가 일하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이브 코너에서 그의 노래를 듣기 전까지, 나는 성시경을 ‘노래 괜찮게 하는 가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날 역시 막연히 ‘나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그는 충격적일 만큼 노래를 잘했다. 안정적인 음정 처리는 기본이고 진성과 가성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테크닉까지, 흠잡을 구석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나는 듣기도 전에 판단한 나 자신을 타박했다.
라이브로 말하는 가수
강렬한 라이브 때문이었을까? 성시경의 유명한 별명 ‘모다시경’ 역시 2004년에 있었던 라이브콘서트 도중에 탄생했다. 감성적 발라더인 그가 유일한 댄스곡 ‘미소천사’에 맞춰 팬들을 위해 어색하지만 열정적으로 춤을 추던 순간은 인터넷에 두고두고 회자될 밈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라이브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공연장이 아닌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그의 라이브를 무한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몇 가지 주제로 나뉘어 운영되는데, 그중 내가 즐겨 보는 것은 맛집을 탐방하는 ‘먹을텐데’와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는 ‘부를텐데’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도 음악을 듣는 일만큼 애정하기에 두 코너 모두 좋아하지만, 그가 연출한 ‘부를텐데’를 더 즐기는 이유는 퀄리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의 라이브는 사전 녹음된 반주에 맞춰 노래만 따라 부르는 단순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다양한 커버곡을 즉석 연주에 맞춰 부르면서 진행되는데, 그중 팝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Something Stupid’와 ‘You’ve Got A Friend’를 커버한 라이브는 그야말로 탁월하다. 또 성시경은 이따금 동료나 선배 가수를 초대해 그들과 음악적 합을 이루기도 한다. 최근 김광진이 출연해 명곡 ‘편지’를 함께 불렀는데, 이 코너가 추구하는 라이브의 결정체였다. 이 버전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악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코너에는 성시경의 팬이 아니더라도 알 만한 히트곡이 총망라돼 있다.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내게 오는 길’,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까지. 어떤 영상을 선택하든, 결국 나와 비슷한 감상 평을 쓰게 될 것이다.
성시경이라는 장르
흔히들 “곡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노래의 완성은 가수가 한다. 곡이 아무리 좋아도 가수가 노래를 잘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성시경은 그 진리를 몸소 증명하는 가수다. 그의 탄탄한 노래 실력을 토대로 발표된 곡들은 대개 좋다. 그중 영순위로 꼽는 곡은 단연 ‘거리에서’다. 내게 성시경이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해 준 이 곡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발라드의 정석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가끔 이 곡을 꺼내서 듣는데, 완벽한 발라드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만약 누군가 한국 발라드 딱 한 곡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이 노래를 슬쩍 꺼내지 않을까 싶다. 작곡과 작사에 참여한 윤종신의 감성과 별다른 수식이 필요 없는 성시경의 가창이 더해진 이 노래. 별다른 준비 없이 쉽게 덤비다가는 큰일 나기 십상이다. 멜로디가 워낙 깊은 데다 후렴구의 난도가 상당해 제대로 소화하기가 정말 어렵다. 나도 한번 도전해 봤는데 목 나가는 줄 알았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정말이지 굉장한 재능이다. 닮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번 생은 글렀다.
어느덧 성시경도 데뷔 30년에 가까운 중견 가수가 됐다. 변화의 속도가 곧 시대적 사명인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차트 위에서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어려운 걸 성시경은 해냈다. 실제로 2021년에 발매된 그의 정규앨범 8집 〈ㅅ(시옷)〉은 공개와 동시에 각종 음원차트에 올라 여전히 식지 않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노포에서 국밥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와중에도 성시경은 절대 음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타면서도 언제나 ‘기본’을 지키는 자만이 롱런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것은 유행을 넘어서는, 변치 않는 인생의 진리다.
배순탁이 추천하는 성시경의 곡들
내게 오는 길 (2001)
성시경의 데뷔곡이자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처음 알린 노래다. 담백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는 한국 발라드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 곡이 발표된 2000년 전후는 고음 중심의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러나 작곡가 김형석과 성시경은 중저음의 편안한 울림에 집중하며,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곡을 완성했다. 데뷔곡은 단순한 첫 노래가 아니라, 그를 ‘가수’로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시경은 ‘내게 오는 길’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구축했다.
희재 (2003)
영화 〈국화꽃 향기〉 OST로 작곡가 MGR의 작품이다. ‘내게 오는 길’이 감정을 절제하며 부드럽게 스며드는 노래라면, ‘희재’는 영화의 슬픈 서사와 맞물려 애절한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호소력이 특징이다. 특히 떠나간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아 그리움을 극대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곡은 성시경 보컬이 지닌 ‘슬픔의 질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로 평가받는다.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이 노래만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많은 이들의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두 사람 (2005)
대한민국 결혼식 축가로 가장 많이 사랑받은 노래를 꼽는다면 단연 ‘두 사람’이 최상위권에 위치할 것이다. 화려한 기교를 걷어내고 “여전히 서툴고 또 부족하지만 / 언제까지나 네 곁에 있을게”라는 노랫말에서 전해지는 진심은 그 어떤 명곡보다도 큰 울림을 준다. 어쿠스틱기타의 단출한 선율에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걸 듣고 있으면 가장 단순한 구성으로 가장 깊은 감동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성시경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PREVIEW
IVE, REVIVE+
아이브의 정규 2집은 이전까지 선보였던 자신만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불꽃을 피운다. 셔플과 EDM에 기반한 더블 타이틀곡의 어두운 매력에 더해, 앨범 속 여섯 멤버의 솔로 곡 안에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태도가 담겼다. 완성된 이미지를 깨고 끝없이 변주하고자 불안과 호기심을 끌어안고 도약하는 앨범.
Lang Lang, Piano Book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피아니스트 랑랑의 앨범. 베토벤, 드뷔시, 쇼팽 등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명곡을 담았다. 피아노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북 같은 앨범으로, 피아노로 편곡된 한국의 민요 ‘아리랑’도 담겨 있다.
J. Cole, The Fall-Off
1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제이 콜이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총망라한 앨범으로 돌아왔다. 미니멀한 붐뱁과 재즈 위를 흘러가는 펀치라인은 랩이라는 거친 장르 안에서 그가 지녀온 성찰의 태도를 전면에 드러낸다.
Yunchan Lim, Bach: Goldberg Variations
임윤찬의 연주는 바흐의 생애를 그린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특유의 허밍으로 개성 있게 각인시킨 연주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무한히 달라지는 골드베르크가 카네기홀에 울려 퍼진다. 지금 그의 호흡에 귀를 기울여보자.
Various Artists, Bridgerton Season Four (Covers from the Netflix Series - Pt. 1)
넷플릭스 오리지널 〈브리저튼〉의 수록곡이 담겼다. 팝을 고전적 오케스트라와 조합한 곡들은 우리를 영국의 우아한 사교계 현장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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