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람, 선유와 망원 사이
선유도공원에서 출발해 양화대교를 건너 망원시장까지 이어지는 2km 남짓의 길은 서울의 일상을 매우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동선이다. 한강과 골목, 시장을 차례로 지나면 도시의 풍경이 천천히 겹쳐진다. 평범한 듯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서울의 봄 장면들.
선유도에서 망원동으로 향하는 다리, 그 길 위에 서면 서울의 오늘이 천천히 흘러간다. 때로는 알려진 명소를 찾아가는 여행보다, 평범한 한 도시를 천천히 통과해 보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강을 건너 선유도에서 망원동에 이르는 오늘의 시간은 기대 이상으로 찬란하다.
서울을 건너는 속도에 대하여
도시를 자신의 속도로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걷는 속도는 도시의 표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빠르게 지나가면 보이지 않던 골목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선유도에서 망원시장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30분 남짓, 자전거를 타면 10~20분 정도의 거리다. 한강 위를 건너는 동안 마주하는 풍경은 골목의 생활로 이어지고, 그 끝에서 시장의 활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2015년부터 정식으로 서울시의 주요 교통수단이 된 공공 자전거 서비스 ‘서울자전거 따릉이’는 걷다가 타고, 다시 내려 걷는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걷기보다 빠르고 자동차보다 느린 자전거의 속도는 서울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렇게 도시를 오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했다기보다 서울을 통과해 왔다는 기분이 남는다.
시간이 머무는 섬, 선유도
선유도는 서울 시민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한때 산업 시설이었던 이곳은 지금, 자연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공원으로 거듭났다. 과거 ‘신선이 놀던 산’이라는 뜻으로 선유봉이라 불린 작은 봉우리였던 이곳은 눈부신 풍광을 자랑하며 예술가와 시인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선유봉의 암석을 채취해 한강 제방을 쌓는 데 사용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고, 해방 후 1978년부터 2000년까지는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며 절경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2002년, 친환경생태공원의 모습을 갖춘 지금의 선유도공원으로 재생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조성룡과 조경가 정영선의 손길이 닿은 이 공원에서는 독특한 생태와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녹색기둥의 정원’은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을 들어내고 수위 측정용 기둥만을 남겨 조성한 공간으로, 현재 기둥은 담쟁이덩굴에 뒤덮여 질서 정연하게 서 있다.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한 ‘수질정화원’에는 다양한 수생식물을 식재해 식물의 생장과 물의 정화 과정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건너는 다리, 머무는 시간
선유도를 빠져나와 한강 위를 가로지르는 양화대교로 향해보자. 옛 양화나루의 이름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 다리는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이동의 중심축이었다. 지금은 자동차와 지하철, 사람들이 오가는 다리가 놓였지만, 이 자리에는 한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나루터가 있었다. 강을 건너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큰 이동이었고, 어쩌면 작은 여행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리 위에 마련된 카페에 잠시 들어서는 순간, 배경처럼 지나던 한강은 목적지가 된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건너던 다리 위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머무르는 시간. 다리 양편에 위치한 카페는 차를 중심으로 한 ‘티 하우스’와 커피가 중심인 ‘커피 하우스’ 두 지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그란 창문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커피 하우스는 특히 해가 질 때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창 너머로 그림 같은 석양이 지고 나면, 이윽고 건물들의 불빛으로 수놓인 서울의 야경이 펼쳐진다.
망원, 생활의 밀도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자전거 여행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망원동에 도착한다. 이 동네의 중심에는 망원시장이 있다. 생활의 리듬이 먼저 느껴지는 이곳에서는 반찬을 고르는 손, 가격을 흥정하는 목소리, 골목을 채우는 음식 냄새가 동네의 밀도를 높인다.
망원동(望遠洞)이라는 이름은 ‘멀리 바라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이 일대에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던 정자 ‘망원정’이 있었고, 그 정자 주변 마을의 이름이 지금의 망원동으로 이어졌다.
선유도에서 출발해 강을 건너 도착하는 여정의 끝이 ‘멀리 바라보는 동네’라는 사실이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잠시 머물던 섬을 떠나 도시를 바라보는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망원은 유람의 끝에서 다시 일상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장소다.
망원의 또 다른 중심, 망리단길로 접어들면 하루의 속도는 다시 느려진다. 작은 카페와 상점들이 이어지는 이 길은 거창한 볼거리 없이도 동네의 호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머물고 싶도록 만든다. 상업지구를 중심으로 생겨난 서울의 여러 번화가와는 달리 생활감이 묻어나는 지역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적인 길이다.
여유로운 하루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다면 합정역과 망원역 사이를 천천히 거닐어보자. 국내 유수한 출판사들이 모인 이곳에는 저마다의 색을 지닌 책방들이 곳곳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진열대에 놓인 책들은 단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트렌드와 취향에 따라 발굴된 보석들이다. 아늑한 분위기에 맞춰 엄선된 책 한 권을 펼쳐 들면, 자전거로 달려온 하루의 속도가 점차 차분해진다.
- 글. 노소영
- 사진. 신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