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기념비
〈모닝캄〉은 일상의 풍경에 깊은 사유를 더한 ‘옴니버스 스토리’를 전한다. 다국적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 비행 중에도 비행이 끝난 후에도 독자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이번 호에서는 길 위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과 상징들이 여행자의 세계를 어떻게 조금씩 새롭게 채워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이 포착한 제네바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 브라질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이자 영혼의 여행자로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 대표작 〈연금술사〉를 통해 삶의 본질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정을 들려주는 그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길’을 찾는 법을 제시해 왔다. 단순한 문장 안에 담긴 깊은 상징과 영적 통찰 그리고 일상에서 길어낸 우화적 이야기로, 이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시들이 자기 자신을 영원히 기억에 남기고자 눈에 띄는 장소에 세워둔 기념비를 보았다. 이름은 잊힌 지 오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말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위용 넘치는 남성들. 하늘을 향해 왕관이나 검을 치켜든, 더는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승전을 상징하는 여성들. 또 역사에서 잊힌 어느 조각가 앞에서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포즈를 취했을, 돌에 새겨진 이름 없는 외로운 아이들.
무척 드문 예시(구세주 그리스도 기념비를 가진 리우데자네이루 같은)를 제외하면 결국 도시를 상징하는 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전혀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이다. 박람회를 위해 철탑을 세운 에펠은 루브르박물관도, 개선문도, 웅장한 정원들도 아닌 바로 그 탑이 파리의 상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뉴욕을 상징하는 건 사과다. 그리 인기 없던 다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됐다. 타구스 테주강의 다리도 리스본 사진엽서에 등장한다.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로 가득한 도시 바르셀로나의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은 여전히 미완성인 성가족 성당이다. 모스크바의 주된 상징물은 그저 건물로 에워싸인 채 더는 현재를 나타내지 않는 이름을 가진 광장(공산주의를 기리는 붉은 광장)이다. 다른 도시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도시를 상징하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 필요하다.’ 아마 이런 생각을 품었던 것인지, 어느 도시에서 한 가지 모습으로 남지 않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매일 밤 사라졌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나타나고, 바람과 햇빛의 세기에 따라 매 순간 변하는 기념비. 전해지는 이야기대로라면 그건 한 소년이 오줌을 누다가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했다. 볼일을 마친 소년은 아버지에게 침입자들이 다가오기 전에 사라지는 조각상이 있다면 그들이 사는 도시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시의원들에게 그 말을 전했고, 시의원들은 프로테스탄트주의를 공식 종교처럼 섬기고 논리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미신으로 치부했던 이들임에도 이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또 다른 설은, 호수로 흘러드는 거센 강줄기를 막으려 수력발전용 댐을 세웠지만, 인부들이 집으로 돌아가 밸브를 잠그자 강한 수압 때문에 터빈이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한 기술자가 넘치는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자리에 분수를 세우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기술의 발전으로 문제가 해결되자 분수는 쓸모 없어졌다. 하지만 아마 그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인지, 동네 사람들은 이 분수를 없애지 않기로 했다. 도시에는 이미 분수가 여럿 있었고, 심지어 이 분수는 호수 한가운데 있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분수를 눈에 띄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움직이는 기념비가 탄생했다. 강력 펌프를 설치한 덕에 오늘날 초당 500L의 물이 시속 200km 속도로 수직 분사된다. 1만 m의 고도를 날아가는 비행기에서도 보인다는 설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특별한 이름 없이 ‘분수’라고 불리는 이 기념물은 말을 탄 남성, 영웅적 여성, 외로운 아이들의 조각상이 이미 넘쳐나는 제네바의 상징이다.
언젠가 나는 스위스 출신 과학자인 드니즈에게 분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사람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고 전기신호가 그 물속을 흐르며 정보를 전달해요. 그런 정보 중 하나가 바로 사랑으로, 온 존재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사랑은 끊임없이 변해요. 제네바의 상징은 여태 어떤 예술가가 만들어낸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랑의 기념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야기 속 소년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나는 분명 드니즈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 글. 파울로 코엘료
- 사진. 정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