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미래, 프라하
프라하는 대립의 도시이자 조화의 도시다. 오랜 시간 쌓여온 화려함과 소박함, 기억과 역사가 어우러진 도시는 긴장된 만남 속에서 매일 새로운 내일을 써 내려간다.
프라하는 ‘보헤미아의 수도’라는 역사적 정체성과 더불어, 중세의 광장과 성당, 근대의 혁명과 현대건축이 공존하는 다층적 도시다. 블타바강과 카를 다리에 새겨진 시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가득 채운 역사와 혁명의 흔적 그리고 카프카에서 댄싱 하우스로 이어지는 상상력은 프라하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의 무대로 만든다.
보헤미아, 프라하의 시작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 ‘보헤미아’는 어디일까? 오늘날의 체코는 라틴어로 보헤미아, 모라비아, 실레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세 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보헤미아는 체코의 서부와 중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을 가리키며 체코어로는 ‘체히’라고 한다. 흔히들 체코를 ‘동유럽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체코 사람들은 “동유럽이 아니라 유럽의 중심”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이 나라가 서유럽과 동유럽, 북유럽과 남유럽을 연결하는 교차로였음을 알 수 있다. 몰다우강이라고도 부르는 블타바강은 남부 보헤미아에서 발원해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한 후 독일의 엘베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블타바강 너머 흐라드차니 언덕 위에 솟은 프라하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은 멀리서 보면 신비스럽기만 하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 다리는 단순한 교량이 아니다. 바로크 양식의 성인상들이 늘어서 있는 이 고딕풍 다리는 도시의 심장을 잇는 상징적인 회랑이다. 다리 위를 걷다 보면 양쪽으로 프라하성과 구시가지가 서로를 마주한 채 도시의 시간을 품고 서 있다. 돌바닥을 밟는 발자국은 수 세기 동안 상인과 순례자, 병사와 음악가가 남긴 흔적을 이어간다. 이 다리는 체코 민족 신앙의 상징인 요한 네포무크의 순교와도 연결돼 있다. 사람들은 네포무크의 동상 받침대에 부착된 부조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며, 오래된 전설과 현재의 삶을 이어간다. 강 위의 다리는 두 공간을 잇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과 전통, 역사와 감정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중세의 시간, 오늘의 발걸음
프라하의 독특함은 도시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유럽 도시들이 하나의 광장이나 구역을 중심에 두고 성장했다면, 프라하는 다섯 개의 주요 지역이 도시를 이루고 있다. 흐라드차니 지역에는 황제들의 위엄이, 말라 스트라나에는 바로크 건축의 화려함이, 마치 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양식이 건축 박물관인 양 들어선 구시가지 광장에는 시민사회의 활력이, 신시가지에는 혁명과 근대의 숨결이, 유대인 지구에는 공동체의 고난과 지성이 서려 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은 중세도시의 삶과 역사를 압축한 무대다. 매 시각 천문시계에서 인형들이 나와 움직이며 시간을 알릴 때,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수 세기 전 장인들의 솜씨와 상상력을 기념한다. 구시가지 입구에 자리한 시민회관의 정면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와 섬세한 장식, 내부를 수놓은 벽화와 조각들은 20세기 초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그늘 속에서도 독자적 문화를 꽃피웠던 열정을 담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예술적 공간을 넘어 정치적 선언의 무대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이 이곳에서 선포됐다는 사실은 시민회관이 가진 상징성을 배가시킨다.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현대사의 맥박이 뛰던 곳이다.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광장을 굽어보는 이곳은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 혁명’의 중심지였다. 시민들의 발걸음과 목소리가 켜켜이 스민 광장은 지금까지도 응축된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하다.
새로움의 시작
프라하에는 골목마다 역사와 이야기가 배어 있다. ‘이야기의 도시’ 프라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다.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그는, 바로 그 주변부에서 문학적 시선을 길러냈다. 카프카는 프라하라는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불안을 형상화했다. 카프카가 태어나고 자란 프라하의 구시가지 골목은 마치 그의 소설 〈변신〉처럼 매번 낯설고도 새로운 인상을 풍긴다.
20세기의 위대한 문학가 중 한 명인 카렐 차페크(1890~1938)는 같은 도시 프라하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냈다. 1920년 발표한 희곡 〈R.U.R.〉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robot)’이 등장한다. 이 단어는 ‘(강제로) 일을 해주는 자’를 뜻하는 옛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 〈R.U.R.〉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 로봇들이 결국 인간을 지배하고 멸망시킨다는 이야기다. 프라하는 이렇게 문학을 통해서도 도시의 서사를 이어 왔다.
그리고 20세기 말, 프라하는 블타바 강변에 세워진 ‘댄싱 하우스’(1996)라는 새로운 건축물을 품는다. 비대칭으로 완전히 뒤틀려 있어 춤추는 연인의 실루엣을 연상케 하는 이 건물은 다양한 고전 건축 양식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프라하 도심에서 파격적인 존재다. 그러나 그 파격은 새로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댄싱 하우스는 ‘프라하에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날 수 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공존하는 어제와 오늘을 상징한다. 어떻게 보면 프라하는 카프카의 유산, 차페크의 예언, 그리고 댄싱 하우스의 ‘도발적 춤사위’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 건축사이자 작가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 체류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의 역사, 음악,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강연 및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4 Hours in Prague
프라하 여행의 디테일을 높이기 위한 스폿 5
카페 루브르
카페 루브르는 프라하의 아침을 열 수 있는 가장 클래식한 장소다. 카프카와 아인슈타인이 자주 찾던 프라하의 대표적 살롱 카페이기도 한 이곳은 1902년 문을 연 이래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전통적인 커피 문화로 명성을 이어왔다. 오늘날에도 식사는 물론 커피 한잔의 여유를 통해 프라하의 사색적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 ✓ cafelouvre.cz
프라하 유대인 박물관
프라하 유대인 지구에서 조용한 골목들을 따라 걷다 보면 여러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와 함께 작은 유대인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15세기 이후 조성돼 온 것으로 알려진 오래된 묘지에는 유대 공동체의 주요 인물들이 잠들어 있어 도시의 중심에서 신앙과 시간, 그리고 존엄이 교차하는 엄숙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 ✓ jewishmuseum.cz
비셰흐라드 언덕
비셰흐라드 언덕은 체코 민족 신화의 근원지이자 오늘날에도 프라하 시민이 사랑하는 산책 명소다. 블타바강을 내려다보는 요새 언덕에는 네오고딕 양식의 성 베드로 성당과 성 바울 성당 그리고 조용한 공원이 자리해 있으며, 체코의 예술가와 정치가들이 잠든 국립묘지도 있다. 이곳에서 감상하는 붉은 지붕과 강 너머의 도시 풍경은 프라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 ✓ V Pevnosti, Prague 2
파머스 토요 마켓
매주 토요일, 프라하 사람들은 블타바 강변을 따라 열리는 파머스 마켓으로 모인다. 이름 그대로 농부들이 직접 들고 나온 제철 채소, 수제 빵, 지역 치즈와 와인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빈티지 제품과 다양한 수공예품까지 더해져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브런치와 함께 느긋하게 와인 한잔을 즐기며 프라하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장소.
- ✓ farmarsketrziste.cz
페트르진 타워
1891년 프라하 국제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진 철골 탑, 페트르진 타워는 에펠탑을 모티브 삼아 건축된 전망대다. 잘 보존된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프라하를 상징하는 붉은 지붕과 성 비투스 대성당, 블타바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인근에 위치한 거울 미로는 이름처럼 수십 개의 거울이 미로처럼 이루어진 곳으로, 19세기 말 당시의 놀이문화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 ✓ Petrínské sady, Prague 1
- 글. 정태남
- 사진. 조지영
- 대한항공은 인천—프라하 직항 편을 주 3회 운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