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거인과 설화의 땅
단군의 흔적이 전해지는 태백산 아래, 한강과 낙동강의 물길이 시작되는 해발 900m의 고원 도시 태백.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모든 시작이 모여 있는 이곳으로 떠나본다.
“멀고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구름 사이에 솟아 있네. 사람들은 산마루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코 천지의 조화로세.” 조선 최초 한문 소설집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의 시 〈망태백산〉 속 태백산의 모습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딘가 영험한 이 산은 수많은 설화와 구전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탄생한 곳이다.
거인을 부르는 땅
태백은 시 전역의 평균 해발고도가 900m를 넘는 고원 도시여서 지형만으로도 이곳에 거인이 살았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도 거인의 크기를 실감케 하는 곳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매봉산 바람의 언덕이다. 약 132만 2314m2의 고랭지 배추밭 위로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능선은 거인의 걸음으로나 가늠할 법한 너른 하늘과 땅을 펼쳐 보인다. 태백에서는 인간의 몸이 유난히 작게 느껴진다.
바람을 등지고 금대봉 자락으로 내려가면 고생대에 쌓인 석회암층을 빗물과 지하수가 오랜 세월 녹여 만들어낸 용연동굴이 나타난다. 이 동굴의 이름은 연못 속에 살던 용이 계곡을 따라 하늘로 승천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거인의 자취가 있다면, 그 아래 동굴에는 용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설화 속 태백
이 땅의 이야기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곳은 태백산이다.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따라 금강산과 설악산, 오대산을 지나면 태백산에 이르며, 태백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성스러운 산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고대의 역사서〈삼국사기〉에는 “일성이사금이 겨울 10월에 북으로 순행하여 태백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단군과 태백산 천제단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을 정도다.
하늘과 인간 세계를 잇는 곳으로 여겨졌던 천제단은 지금도 태백산 정상에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풍경은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태백산을 한눈에 보려면 태백산국립공원 근처에 위치한 태백산하늘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890m 길이의 하늘탐방로가 이어진 이곳을 산책하듯 가볍게 걸어서 올라가면 시야를 압도하는 태백의 풍경을 360°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한국 신화의 흔적은 태백산뿐 아니라 태백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봉산 동쪽 고갯길인 두문동재에서 보이는 돌무더기 마고할미탑과 백병산의 마고할미바위는 한국 신화 속 창조신이자 이곳 지형을 만들었다는 마고할미의 이름을 땄다. 마고할미는 몸집이 아주 크고 힘이 세서 흙이나 돌을 옮겨 인간이 사는 세상의 지형을 창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흙을 퍼 먹고 배설물로 지형을 만든 거인 장길손의 전설도 태백에 남아 있다. 유독 거인과 관련된 전설이 태백에 많은 것은 경외감이 들 만큼 거대한 땅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전설과 일상이 함께 흐르는 도시
산이 빚어진 자리에서는 물도 시작된다. 이곳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4대강 가운데 두 강이 발원했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태백의 작은 샘물인 검룡소에서 발원해 김포를 거쳐 서해로 흘러가고, 약 510km에 이르는 국내 최장 강인 낙동강은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흘러가 남해와 만난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라는 지명에도 오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옛날 이곳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황씨’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하자 황씨는 곡식이 아닌 쇠똥을 던져줬다. 이를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모르게 쌀을 내주면서 사과하자 그 스님은 이 집에 곧 물이 들어찰 것이니 며느리더러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며느리가 아이를 업은 채 스님을 따라 산 정상 무렵까지 왔을 때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면서 천지가 진동했다. 놀란 며느리가 스님의 당부를 잊은 채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살았던 집이 연못으로 변해 있었고, 그길로 며느리와 아들은 돌이 됐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는 세계 여러 신화와 전설에서 반복된다. 황지연못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금기를 어기는 순간 사람은 돌이 되고 집은 연못으로 변한다. 그래서인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황지연못은 지금도 단순한 수원지를 넘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성역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뭄이 닥치면 제관이 기우제를 지냈고, 연못 물의 색으로 그해 농사가 잘될지 점치기도 했다.
연못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1971년 개장한 황지자유시장에 이른다. 고원지대에서 자라는 당귀나 천궁 등의 약재와 각종 산나물, 인근 동해안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과 과일을 사기 위해 태백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시간을 다시 쓰다
태백에서는 차를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억겁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구문소에서는 수억 년 전 바다의 흔적을, 불과 몇 km 떨어진 철암에서는 한 세기 전 석탄산업의 시간을 만난다.
황지천을 따라 장성동을 지나면 구문소가 나온다. 강이 산을 뚫고 흐르는 독특한 지형으로 약 4억 년 전쯤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며 산을 깎아 만든 풍경이다. 조선의 지리서 〈세종실록지리지〉와 〈대동여지도〉에는 이곳이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돼 있다. 구문소 부근에는 삼엽충을 포함해 고생대의 다양한 생물 화석이 많다. 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위치한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다. 46억 년의 지구사가 압축돼 디오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구문소에서 철암 쪽으로 향하면 옛 탄광촌의 생활 모습을 간직한 철암탄광역사촌이 나온다. 석탄산업이 번창하며 사람이 몰리던 시절, 좁은 땅에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천 쪽으로 기둥을 세워 집을 넓힌 ‘까치발 건물’이 지금도 남아 탄광촌의 생활상을 전한다. 맞은편에서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명장면이 탄생한 철암역두 선탄장을 만날 수 있다.
하이원태백복지관 옆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지지리골 자작나무숲이 나타난다. 이곳은 함태탄광이 1993년 문을 닫은 뒤 폐탄광 산림 훼손 복구 사업을 통해 조성된 인공림으로, 여러 폐광 지역을 잇는 운탄고도1330 6길이 지나간다. 한때 석탄을 캐던 산에 이제 자작나무가 자란다. 김시습의 시에 남아 있는 맑고 청정한 도시이자 거인의 땅이며, 수많은 설화가 깃든, 나라 안에서 가장 높은 도시 태백, 어서 가보고 싶지 않은가?
- 글. 신정일
- 사진. 장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