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 October 2025 (Vol. 49 No. 05)

팝 리부트, 캐서린 번하드

이미지 과잉 시대인 오늘날에도 회화는 여전히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이다. 회화의 전통성과 스트리트아트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캐서린 번하드의 작품은 대담하고 독창적인 시각언어로 전 세계 미술관과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모닝캄〉이 그녀를 만났다.

우리가 여전히 회화를 말하는 이유

캐서린 번하드는 대중문화 아이콘과 일상의 사물을 과감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로 표현하며 현대 회화의 경계를 확장해 온 미국 현대미술 작가다. 그녀는 2000년대 초 뉴욕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회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번하드의 그림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핑크팬더·피카츄·심슨, 스와치 시계, 도리토스 나초 칩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하는 일상의 아이콘들을 낯설게 재구성한다. 과감한 색채, 즉흥적인 붓질, 과장된 구도. 그녀의 화면은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자유롭지만, 그 안에는 대중문화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직감적 통찰이 스며 있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출신인 번하드는 1998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학사학위를, 2000년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슈퍼모델을 소재로 한 초기 작업을 통해 주목받은 그녀는 회화라는 고전적 표현 방식 안에 동시대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직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확장해 왔다. 회화에 대한 신뢰는 그녀에게 원근법, 비례, 논리 없이도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그녀의 회화는 메시지를 설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각의 충돌과 즉흥의 물성이 만들어내는 회화적 유희에 가까우며, 이는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회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하나의 답변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동시대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이콘인 제러미 스콧과의 협업이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너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A Match Made in Heaven〉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팝 문화의 과잉, 유머, 대담함을 캔버스와 패션 위에 풀어냈다. 번하드의 거침없는 붓질과 스콧의 화려한 디자인은 마치 한 시대 두 개의 언어처럼 서로를 반영하며, 대중문화가 오늘날 예술 안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과 반복된 이미지로 소비사회를 반영했다면, 번하드는 손에 쥔 붓으로 오늘의 아이콘들을 ‘날것’ 그대로 표현한다. 워홀이 무표정하고 기계적인 거리감으로 팝을 다뤘다면, 번하드는 회화라는 느리면서도 꾸준한 매체로 거침없고 유쾌하게 정면 돌파한다. 팝아트가 20세기 중반의 혁신이었다면, 번하드는 그것을 21세기의 언어와 감각으로 리부트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말한다. “이 시대에 붓을 든다는 건, 우스우면서도 멋진 일이에요.” 그리고 바로 그 ‘멋짐’이 번하드의 회화가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NOROO Paint & Coatings co.,Ltd.
© NOROO Paint & Coatings co.,Ltd.

인터뷰

당신의 작품에는 만화 캐릭터, 슈퍼마켓 제품, 패턴 등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오브제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나요?

저는 제 주변에서 접하는 것들을 선택합니다. 매일 시야에 들어오고, 의도와 관계없이 제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들입니다. 예를 들어 치토스, 핑크팬더, 윈덱스, 바나나 같은 것들인데요, 어떤 사물이 시각적으로 눈에 띄거나 회화적으로 표현했을 때 유머를 자아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작품 소재로 삼습니다.

Cotton Candy, 2024 Acrylic and spray paint on canvas, 152.4×121.9cm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행이 작품에 어떤 영감을 주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어디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여행은 제게 시각적 자극과 사유의 계기를 풍부하게 제공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 사물과 예술 작품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익숙하지 않은 사고의 흐름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러한 모든 요소는 제 작업에 있어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장소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그리스 미코노스, 모로코 마라케시, 미국 뉴욕, 멕시코 멕시코시티 그리고 이탈리아 카프리섬을 들 수 있습니다.

Hawaii 50, 2016, Acrylic and spray paint on canvas, 152.4×121.9cm

색채 사용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색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색채는 대체로 제가 그리는 실제 사물의 고유한 색에서 출발합니다. 현실 속 대상이 지닌 본래의 색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하죠. 배경에는 대비되는 색을 활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색으로 구성된 회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당신의 작품은 자유롭고 충동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작업할 때 어떤 감정이나 리듬을 따라가나요?

작업할 때 제가 느끼는 주요 감정은 기쁨, 행복, 흥분 그리고 일종의 주체적인 힘입니다. 동시에 고요함, 평온감, 안도감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감정은 항상 단순하지 않아서 때때로 불안감이나 책임감과 얽혀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저의 욕망을 추구하고, 진정한 자아를 표현하며, 가벼움과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선택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삶을 주도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능력은 짜릿하면서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외부의 압박이나 내면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때, 저는 깊은 평온과 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때때로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나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책임의 무게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Happiness, 2018, Acrylic and spray paint on canvas, 182.9×152.4cm

당신의 작품은 예술의 ‘진지함’과 ‘유희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합니다. 예술이 반드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감각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보시나요?

저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모든 바나나나 바트 심슨을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세상은 이미 설명과 강연으로 가득하니까요. 저는 제 그림이 사람의 가슴을 울리거나, 웃음을 터뜨리게 하거나 혹은 혼란스럽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 반응 자체가 곧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제러미 스콧과 함께 전시를 진행하셨는데, 두 분의 작업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만났고, 서로에게 어떤 자극을 받으셨나요?

스콧과 저는 둘 다 키치, 혼란 그리고 색감을 사랑합니다. 우리 작업에는 공통된 언어가 있어요. 빠르고, 팝적이고, 유쾌하고, 때로는 터무니없죠. 이 전시의 배후에는 큐레이터 조앤 노스럽이라는 천재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한자리에 모아준 사람이에요. 사실 저는 이번 협업 이전까지 스콧의 작업을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공통된 주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됐죠. 둘 다 미주리 출신이고, 나이도 같아요. 제 회화와 그의 패션은 서로를 잘 보완해 줍니다.

A Match Made in Heaven: Katherine Bernhardt x Jeremy Scott installation view. Nerman Museum of Contemporary Art, Johnson County Community College, Overland Park, Kansas.

지금의 시대에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당신의 작업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예술은 생존을 위한 도구입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존재하려면, 아예 이 혼란이 의미를 갖게 되거나 혹은 아무것도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제 작업은 색채와 에너지 그리고 약간의 부조리함을 불러옵니다. 그것은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처를 제공합니다.

이미지 과잉 시대인 오늘날에 회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전히 붓을 드는 행위가 당신에게 중요한 이유는요?

회화는 벽에 걸어둘 수 있는, 움직이지 않는 물리적인 대상입니다. 그것은 바라보고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며, 훌륭한 작품일수록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말하거나 걷는 것처럼 인간 고유의 표현 방식 중 하나입니다.



캐서린 번하드를 만날 수 있는 곳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Katherine Bernhardt: Some of All My Work
June 6, 2025 – September 28

예술의전당 안에 자리한 한가람미술관은 1990년에 개관한 전시 공간으로 다양한 장르의 대규모 전시를 주로 선보인다. 〈캐서린 번하드: Some of All My Work〉전은 캐서린 번하드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2000년대 초반 번하드가 뉴욕 미술계에 데뷔하며 화제를 모았던 초기의 슈퍼모델 시리즈부터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대형 신작들까지 총 140여 점의 회화와 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 www.sac.or.kr

너먼현대미술관

A Match Made in Heaven:
Katherine Bernhardt × Jeremy Scott
2025. 2. 7 – 2025. 10. 26

너먼현대미술관은 캔자스주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2007년 개관 이래 연 1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지역의 대표 문화 명소다. 〈A Match Made in Heaven〉 전시는 미국 미주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제러미 스콧과 현대미술 작가 캐서린 번하드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며,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에 대한 유쾌한 접근을 탐구한다. 두 작가는 패션과 회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일상적인 사물과 아이콘을 재해석해 ‘키치’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 nermanmuseum.org
  • 대한항공은 인천 ― 댈러스 직항 편을 주 7회 운항하며, 캔자스시티까지는 경유 편으로 약 1시간 30분 걸린다.
ⓒ Nerman Museum of Contemporary Art
  • 글. 최진이
  • 사진. 작가 및 UNC 갤러리 제공
  • 협조. UNC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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