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
토마스 헤더윅은 천편일률적인 건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맞서, 세대를 넘어 천 년 동안 사랑받을 건축을 남기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혁신적인 창조가이자 건축 디자이너다. 2025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으로 활약 중인 헤더윅과 한국 대중에게 그를 알린 글로벌 아트디렉터이자 오랜 협력자인 이지윤 숨프로젝트 대표를 〈모닝캄〉이 만났다.
건물 파사드에 인간성을 불어넣다
Q. 올해 9월 26일부터 11월 18일까지 열리는 ‘2025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으셨습니다. 주제는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Radically More Human)’인데, 영문을 직역하면 ‘급진적으로 더 인간적인’이란 뜻입니다. ‘인간적’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헤더윅⎮ 전 세계 곳곳에서 건축과 관련해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시와 마을마다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해로운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고, 사회가 건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들을 손쉽게 허물어버립니다. 특히 특징 없는 건물일수록 쉽게 철거합니다. 저는 이를 한국어로는 다소 어색하겠지만 ‘블랜데믹(Blandemic)’이라고 부르는데, 오래 머물고 싶을 만큼의 매력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공간을 뜻합니다. 현재 우리는 오페라하우스나 미술관처럼 특별한 건물에는 많은 정성과 자원을 쏟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건물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화’ 캠페인은 바로 이런 평범한 일상의 건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움직임입니다.
한국의 상업용 건물 평균 수명은 약 30년, 영국은 40년이라고 해요. 그런데 건물을 철거할 때 발생하는 환경적 피해는 막대합니다. 따라서 이 캠페인은 단순히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공간을 더 매력적이고 관대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동시에 건강과 환경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Q. 이지윤 감독님은 이번 비엔날레의 프로젝트 큐레이터 중 한 분으로서 ‘창작커뮤니티 프로젝트(Creative Community Project)’를 기획하고 계신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지윤⎮ 보통 비엔날레에는 큐레이터, 디렉터, 작가 등 예술계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이번 도시건축비엔날레가 특히 흥미로운 점은, 서울 시민들이 직접 주체가 돼 참여한다는 데 있습니다. 공개 모집 과정이 만만치 않았는데요, 애초 서울에서만 창작 그룹을 선정할 계획이었는데 해외에서 2만 명이 넘게 지원했습니다. 결국 많은 지원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800여 개 지원서 가운데 어렵게 아홉 개 그룹을 뽑았습니다. 이들과의 협업은 온라인 회의와 현장 미팅을 병행해야 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각자가 바라보는 서울과 그들의 경험담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헤더윅은 그들에게 ‘일상의 벽(Humanise Wall)’을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즉 자신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상징하는 파사드 이미지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죠. 이 아홉 개 그룹은 도시를 대표하는 목소리이자 시선입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하나로 모여 거대한 ‘일상의 벽’, 즉 조각작품으로 탄생했고, 그 안에는 서울 시민들의 메시지가 새겨졌습니다. 전시가 열리면, 그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서울스러운' 대화를 촉발하다
Q. 당신에게 서울의 첫인상은 어땠고, 이번 ‘공적 대화’를 통해 도시가 어떻게 변하길 바라시나요?
헤더윅⎮ 지금 전 세계가 한국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 중심이자 활력의 허브가 바로 서울입니다. 영국의 유명 미술 큐레이터와 조각가에게 “요즘 가장 흥미로운 도시는 어디인가?”라고 물었을 때, 모두 망설임 없이 “서울”이라고 답합니다.
저 역시 서울의 역사적 건축물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고, 한옥에서 일주일간 머물렀습니다. 세심한 인간적 디테일 하나하나가 매우 인상적이었고, 한국의 풍부한 역사와 현재 그리고 독특한 에너지와 첨단 과학기술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미래를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는 자신감 넘치는 도시라는 것이 느껴졌죠.
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대중과 함께하는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논의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확대하고 더욱 매력적인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갈 방법을 모색하는 나라가 있다면, 저는 단연 한국이라고 확신합니다.
Q. 헤더윅과는 오랜 인연이 있고, 2023년에는 그의 대규모 전시를 서울에 유치했습니다. 함께 작업한 경험은 어떠셨나요?
이지윤⎮ 헤더윅과 함께 일한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감성을 짓다〉라는 부제의 그 전시는 헤더윅의 건축과 헤더윅 스튜디오를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건축 전시로 시도해본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임에도 그는 “내가 이룬 가장 큰 성취는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 팀을 만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 말이 특히 존경스러웠어요.
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로 일하던 2015년 무렵, 헤더윅은 “워털루 인근에 ‘가든 브리지’를 만들고, 그곳에 한국 정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런던에서 25년간 살았던 저에게 워털루는 익숙한 장소였기에 무척 반가운 제안이었죠. 그는 한국 정원 조성을 위한 모금 활동까지 제안하며 그 비전과 ‘인간적인 도시’를 향한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그의 철학을 서울에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Q.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상징적인 건축물을 설계한 헤더윅 스튜디오가 앞으로 몇 년간 서울에 여러 프로젝트를 남길 예정입니다.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즐기고 소통하길 바라시나요?
헤더윅⎮ 노들섬은 하나의 플랫폼입니다. 그곳에서 서울 시민들이 그들의 창의성을 초고속으로 충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 시민이 바로 예술 작품이고, 노들섬은 그들을 위한 프레임입니다. 제 프로젝트가 종착점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여정의 일부가 되길 바랍니다. 작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큰 이벤트뿐 아니라 일상의 필요와 기쁨을 채우는 것, 그리고 시민들의 창의력이 발현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기후 위기와 사회 전반의 격차가 심화되는 오늘날, 고도로 도시화 된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 디자이너로서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헤더윅⎮ 저는 태생적으로 낙관주의자라 미래에 대해 늘 희망적인 시선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지 말고 직접 만들어 나가라”라는 말처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함께 발명하고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히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잠깐의 천재적인 순간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기쁨을 선사했을 때, 그들이 사는 공간과 일터, 가족이 모이는 장소에서 고립감을 덜 느끼게 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건축을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사실 건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림은 부유한 이가 소유하거나 갤러리에 전시할 수 있지만, 건물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건축계 전체가 건축은 ‘공공서비스’라는 마음가짐으로 사회를 최우선에 두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토마스 헤더윅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이너로 인간 중심의 건축을 추구한다. 세계 각지에서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으며,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은 건축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공공서비스로 바라보게 한다. ‘2025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임명돼 한국의 대중과 소통하며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과 서울을 기반으로 글로벌 현대미술 전시 기획 사무소 숨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전을 기획했으며, ‘2025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토마스 헤더윅 총감독과 함께 주제전 창작 커뮤니티 감독을 맡고있다.
- 글. 제니퍼 장
- 사진. Heatherwick Studio and SUUM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