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위한 곡물 한 그릇
무더운 여름철이면 한국인의 밥상에는 자연스럽게 콩과 곡물로 만든 음식이 올라온다. 이는 단순한 계절 음식이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기후 대응형 식문화다.
한여름 곡물 보존 방법에서 탄생한 음식
베이징으로 가는 조선의 외교사절단 중 한 명이었던 학자 김창업(1658~1722)의 아내는 1712년 음력 11월의 출발일을 한참 앞둔 때, 먼 길을 떠나는 남편의 간식거리를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김창업은 베이징을 다녀오며 쓴 일기에서 전복, 소고기, 꿩고기, 홍합, 대추, 인삼 등의 말린 음식을 가져갔다고 적었다. 아마도 그의 보따리에는 찐쌀과 미숫가루도 담겼을 것이다.
미숫가루는 곡물의 알갱이를 찌고 말린 다음 이것을 다시 볶아서 만든 가루를 가리키는 한국어다. 잔에 미숫가루를 먼저 넣고 물을 부어 잘 저어주면 식욕을 잃은 사람이 먹기에 좋은 곡물 죽이 된다. 실제로 미숫가루의 ‘미수’는 ‘가루 낸 먹을거리’라는 뜻의 한국식 한자 ‘미식(穈食)’에서 파생된 단어다. 즉 미숫가루는 곡물의 가루이고, 그 가루로 만든 음식의 이름이 미수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대도시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얼음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릇에 미숫가루를 담고 얼음물을 부어 차가운 음료수로 먹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식품회사에서는 찹쌀, 보리, 율무, 현미, 콩 등의 곡물을 찌고 말린 다음 볶아서 가루를 낸 미숫가루 제품을 판매하게 된다.
요즘 한국에서는 미숫가루를 불교 수행자들이 참선할 때 먹는 선식처럼 잡다한 생각을 멈추게 하는 음식으로 여기고 먹는다.
냉장고 없던 시절,무더위를 이겨낸 건강 음식
19세기 학자 홍석모(1781~1857)는 음력 6월에 서울 사람들이 “밀가루로 만든 국수에 청채와 닭고기를 넣어서 백마자탕에 말아 먹는다”라고 당시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인 〈동국세시기〉에 적었다. ‘백마자탕(白麻子湯)’은 ‘임자수탕(荏子水湯)’의 다른 이름이다. 임자(荏子)는 들깨의 한자인데 조선 후기 사람들은 들깨 대신에 참깨로 만든 백마자탕도 임자수탕이라고 불렀다.
임자수탕은 볶은 들깨를 갈아 거른 물을 닭국에 섞고 여기에 밀국수를 말아 먹는 탕 요리다. 한반도의 밀은 겨울에 파종해 한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는 겨울밀이다. 홍석모가 살았던 시절에는 겨울밀의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귀한 어린 닭과 밀국수가 조합된 임자수탕은 부유층만의 여름 음식이었다.
부유층이 임자수탕만큼 귀하게 여겼던 여름 음식은 ‘수란채’다. 1999년 4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1926~2022)이 안동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 수란채가 73세인 여왕의 생일상에 올랐다. 숟가락으로 으깬 잣즙에 식초 조금과 물을 붓고 망에 내린 다음 여기에 한식 간장인 집간장, 소금, 식초, 설탕을 섞어 만든 국물은 수란채 맛의 바탕이 된다. 뜨거운 물에 불린 석이버섯, 살짝 삶아 꽃 모양으로 자른 당근, 다리 살을 발라낸 대게, 살짝 데친 미나리, 먹기 좋게 썬 홍고추 등이 수란채를 꾸미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수란채의 주인공은 달걀을 깨뜨려 끓는 물에 넣고 반숙으로 익힌 수란이다. 이 수란을 숟가락으로 떠내서 아름답게 배열된 재료 위에 올린다. 그 위에 잣즙을 뿌리면 화려한 색의 수란채가 눈앞에 펼쳐진다.
여름의 곡물 K-푸드, 세계인의 입맛을 홀리다
단백질을 듬뿍 담고 있는 콩은 한여름의 영양 부족을 채워주던 곡물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1889~1972)이 1957년에 펴낸 대한제국 황실 요리책 〈이조궁정요리통고〉에는 ‘콩국냉면’의 요리법이 실려 있다. 주재료는 고소한 맛을 내는 참깨다. 참깨와 콩을 함께 맷돌에 갈아 고운체에 거르고 물을 조금 탄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춰 콩국을 만들고 차가운 곳에 둔다. 삶아서 냉수에 헹군 밀국수를 그릇에 담고 콩국을 붓는다.
책에는 “이 콩국냉면은 (가장 무더운) 삼복 때에 먹는 음식이다”라고 적혀 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인은 콩국냉면을 ‘콩국수’라고 불렀다. 한여름만 되면 분식집은 물론이고 중식당에서도 팔 정도로 콩국수는 인기였다. 전라남도의 한 음식점에서는 밀국수 위에 볶은 콩가루와 곱게 간 얼음 가루를 산처럼 올려줘 동네방네 소문이 났다. 콩가루의 고소한 맛과 얼음 가루의 찬 기운이 만난 콩국수는 콩 속 단백질로 서민들의 한여름 건강을 지켜줬다.
콩국수에 올려준 얼음 가루는 빙삭기로 갈아낸 것이다. 빙삭기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발명됐다. 일본인은 빙삭기로 얼음덩어리를 갈아 만든 빙수를 ‘카키고리’라고 부른다. 1920년대 서울에 들어온 카키고리를 한국인은 ‘빙수’라고 불렀다. 당시 일본인은 카키고리 위에 연유와 함께 설탕이나 삶은 팥 따위를 올렸다. 1970년대 초반, 한국인은 일본의 삶은 팥 올리는 방식을 응용해 지금의 팥빙수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 남쪽에 문을 연 한국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훙더우빙산’이란 이름으로 팥빙수를 판매했다. 이것이 해외로 나간 첫 번째 팥빙수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여름이 다가오면 호텔 카페부터 미국 패스트푸드점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맛의 팥빙수를 한국식 디저트로 선보였다. 오늘날 팥빙수는 K-푸드 대표 디저트의 자리에 올라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지구온난화와 이상기온으로 인한 무더위를 예고 없이 맞고 있다.
냉장고도 얼음도 없던 시절에 한국인은 찌고 말리고 볶아서 갈아낸 정성 가득한 곡물 가루로 무더위를 이겨냈다.
굳이 냉장고와 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인의 지혜로 만든 곡물 요리 한 그릇이면 느닷없는 무더위쯤은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주영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 인류학자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글. 주영하
- 사진. 박다빈
- 푸드 스타일링. 문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