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 August 2025 (Vol. 49 No. 04)

DDP에 불이 들어오면 동대문은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동대문, 서울을 그리다

동대문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성벽 위로 오래된 역사가 드리울 때, 거리에서는 오늘날의 가장 창조적인 기운이 생동한다.

동대문은 서울이 가진 여러 시간의 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드문 동네다. 성곽과 옛 장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 하면, 세계적인 디자인 랜드마크인 DDP가 도시의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과거와 현재, 정적인 기억과 움직이는 문화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서울 도심을 다시 바라본다.


창의 기지 DDP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는 곡선과 금속으로 이뤄진 외관이 인상적인 서울의 디자인 랜드마크다. 조성 초기에는 역사적 장소를 허물고 들어선 생소한 형태에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즐겨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전시, 디자인 숍, 야외 광장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곳은 서울이 디자인 도시로서 갖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서 9월 7일까지 진행되는 〈톰 삭스 전〉은 DDP의 창의적 에너지와 맞닿아 있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톰 삭스는 합판, 박스, 테이프 등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산업 재료를 활용해 대중문화와 기술, 디자인의 주요 산물을 정교하게 재제작해 작품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탐사 계획을 재구성한 대형 설치작품을 통해 광활한 우주로 직접 나아가는 듯한 상황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DDP 내에는 디자인랩, 아트홀은 물론 야외까지 다양한 전시 공간이 있어 크고 작은 전시들이 수시로 펼쳐진다. 규모와 주제는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서 서울의 지금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문 시기마다 색다른 전시가 열리기 때문에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일정표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에는 DDP디자인스토어에 들러보자. 작게는 서울, 크게는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러 브랜드의 창의적인 아이템이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DDP에 방문한 톰 삭스와 그의 스튜디오 크루
© HYUNDAI CARD / Photo by Joshua White

도심 다시 보기

건물의 곡선을 따라 외부를 한 바퀴 걷다 보면 DDP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1925년 경성운동장에서 시작해 서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오늘날의 DDP가 되기까지의 흔적과 역사를 보여주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 그리고 재건축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동대문역사관은 DDP라는 공간이 단지 새로움만을 위한 장소가 아님을 말해준다. 누구나 지나치지만 아무나 기억할 수 없는 서울의 근현대사와 그 속에 깃든 일상이 이곳에 전시된다. 은색 건축물과 푸른 잔디밭이 잘 조화를 이루는 잔디언덕은 DDP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이질적인 공간이다. 바쁘게 지나치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푸른 경사면 위를 오르면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계절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DDP 건물 외관을 걸어 오르는 색다른 산책도 즐길 수 있다. 외관을 따라 이어지는 곡면 루프톱 위에서 바라보는 동대문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아니다. 건축물 위를 산책하는 이 특별한 프로그램은 예약제를 통해 제한적으로 운영되며, 도심을 입체적으로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해가 지면 동대문은 또 한 번 옷을 갈아입는다. 낮의 활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마무리되는 동대문의 하루를 따라 걸어보자. DDP를 휘감은 조명으로 건물은 낮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띠고, 근처 거리에는 노란 천막이 상징적인 새빛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길거리 음식을 먹고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쇼핑하면서 낭만적인 밤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조명이 켜진 저녁의 DDP

일상의 기억을 따라

DDP에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서울의 생활상과 시대를 불문한 스타일이 한곳에 모인 동묘의 풍경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도시의 생활 흔적을 담아낸 각종 생활 용품과 골동품이 가득한 시장 거리에는 서울의 옛 일상부터 오늘날의 멋까지 함께 담겨 있다. 취향을 좇는 이들에게는 과거의 물성이 현재의 감각과 만나는 자리인 동묘의 모든 물건 하나하나가 매력적인 발견이 될 것이다. 만물상처럼 뒤섞인 풍경 속에서 각자의 서사와 취향을 찾는 이들이 이곳에 모인다.

또 다른 전통의 한 축을 입맛으로 지켜내는 곳도 있다. 1985년 개업해 3대를 이어온 전통 평양냉면 맛집인 평양면옥은 동대문 지역을 대표하는 노포 중 하나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 초대 주인으로, 이 집의 냉면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도시의 기억에 가깝다. 평양냉면답게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먹을수록 입안에 조용히 스며드는 감칠맛이 오래 남는다. 맵거나 자극적인 간이 없는 이북식 만두와 따뜻하게 데워져 나오는 수육 한 판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오래된 일상의 흔적이 가득한 동묘 시장 풍경
평양면옥에서 맛보는 이북 음식 한 상

서울한양도성을 따라가는 시간 여행

서울 도심의 빌딩 숲 사이, 웅장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흥인지문(정식 명칭은 ‘서울흥인지문’)은 1396년 조선 건국과 함께 세워진 서울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하나다.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 이 문은 서울이 쉼 없이 바뀌는 동안에도 한결같이 이 도시의 시작과 변화를 지켜봐 왔다. 그래서 동대문은 서울의 과거를 품은 동시에, 서울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지를 보여주는 풍경이기도 하다.

흥인지문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맞은편 흥인지문공원 에는 조선시대의 도성 내외를 구분했던 성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흥인지문에서 동북 방향으로 연결된 이 구간은 수직으로 솟은 건물들과 차량 소음 사이로 성곽의 곡선이 말없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성곽길을 걷다 보면 서울의 과거와 현재, 빠른 것과 느린 것, 복잡한 풍경과 단순한 풍경이 함께 지나갈 것이다. 서울한양도성의 역사가 더욱 궁금하다면 공원과 연결된 한양도성박물관에서 조선시대의 도시 구조와 성곽 축조 방식 그리고 도성 안팎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이곳 박물관에서는 동대문의 겹겹이 쌓인 역사가 조용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흥인지문공원에서 바라본 흥인지문(동대문)과 주변 공원의 풍경
  • 글. 노소영
  • 사진. 장은주
Share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