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시차
〈모닝캄〉은 일상의 주제에 통찰의 언어를 더한 ‘옴니버스 스토리’를 연재한다. 다국적, 다방면의 전문가들의 연재로 완성되는 ‘옴니버스 스토리’가 비행 중 그리고 비행이 끝난 후에도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그 두 번째 작가는 시인 박준.
- 시인 박준은 기억과 상상이 한데 엮인 서정성 짙은 시들과 상실과 죽음을 애도하는 따뜻한 산문으로 한국 문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시인의 보편성을 각인시켰고 이후 발간한 시집을 통해 “한국어로 시를 쓰고 읽어온 백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심미적 유전 형질 같은 것이 그의 시에는 있다”는 평을 받으며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올 4월,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출간하며 다시 한번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1. 서울
생각하는 일을 점점 멀리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제자리걸음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 나아가지도 못하고 길을 잃거나 수렁에 빠지는 탓이다. 잊고 싶은 시간만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졸리지 않은데 잠을 자고 배고프지 않은데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익숙한 얼굴을 가급적 피하고 낯선 얼굴은 여전히 낯설게 마주한다. 날 선 시선과 마음을 쌓아둔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아는 것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의 시간을 지나며 나의 말은 점점 앙상해진다. 이 끝에 여행이 있다. 머물 곳을 찾아 떠난다. 아니 떠나고 싶을 때 머물 곳을 찾는다. 여행이란 얼마간의 멀어짐을 통해 진정 멀어지지 말아야 할 것을 곁에 두는 일이다. 떠난 사람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동네
모르는 동네에서 이발을 한다 먼저 온 사람이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조금 기다려줄 수 있냐고 주인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어 보였다 잘린 빛들이 바닥을 구르는 오후에 몸을 기댄다 이 동네 사람이냐는 말을 듣고서는 근처에 산다고 답을 했다 이제 스스로 떠나온 곳을 멀다 말하지 않기로 한다
2. 부산과 제주
부산에 다녀온 것도 수일이 흘렀다. 부산은 늘 변화하는 방식으로 변함없다. 부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제주에 와서야 떠올린다. 파도 소리 덕분일까. 북제주에서의 잠은 유난히 달다. 잠 같은 잠. 오늘도 그때처럼 깊은 잠을 잤다. 내가 두 시간을 잤는지 아니면 수년 동안 잠을 잤는지 모를 기분이 들 정도로.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제주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제주였다. 제주가 아닌 시절을 지났지만 다시 제주다. 하지만 내일이면 제주의 시간을 떠나보내야 한다. 이런 글이 떠나기 전의 흔들림을 잠시 묶어둘 수 있을까. 다시 찾은 관음사는 금색이 많아졌다. 그래도 좋다. 우환을 두고 온 기분. 새벽에는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옆 침상에는 환자보다 더 아파 보이는 보호자가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고열. 수액을 거의 다 맞아갈 때쯤 비자림에서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한 어르신이 새로 왔다. 그분은 누군가와 오래 통화를 했는데 그 이야기는 이곳에 정확히 옮겨 적지 않기로 한다. 언젠가 필요한 날이 오면 미래의 내가 분명 잘도 기억을 불러낼 것이다.
오름
산간에 들어서야
안개는 빛과 나에게
품을 내어주었다
서쪽으로 곧장 내려가면
홍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마을에
오래전 큰 병이 돌았고
해안으로 가면
사람들이 사람들을 죽인 곳도 있다
마을로 드는 길에서도
당신은 신록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사실 꽃 지고 열매 맺힌 이 길을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은 적이 있었다
한번은 수국이 피어 있었고
다른 한번은 눈이 내렸다
근처에 넓은 목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나의 무렵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
당신의 걸음은 빠르기만 했다
3. 덴파사르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제목의 게임이 있었다. 고성(古城)에 갇혀 있는 사랑하는 연인을 구해내야 하는 설정. 구형 IBM 컴퓨터로 구현되던 조악한 그래픽과 반복되던 전자음. 게임의 방법 또한 간단했다. 달리기와 뛰기로 함정을 건너고 벽을 오르고 또 중간중간 나타나는 적을 무찌르며 성의 꼭대기까지 가면 되는 것이었다. 여러 모험을 거치고 거의 정상에 올랐을 때 난관을 만났다. 이제껏 한 번도 뛰어넘어 보지 못한 벼랑이 등장한 것이다. 아무리 타이밍을 잘 맞춰 점프 버튼을 눌러도 게임 속 주인공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결국 벼랑을 건너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게임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몇 해 전 게임에 관한 책을 읽다가 오래전 알지 못했던 ‘페르시아의 왕자’의 공략법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게임 속 벼랑을 건너는 방법은 멀리 뛰거나 높이 뛰거나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걸어가는 것. 걸으면 허공에서 절로 길이 생겨난다고 했다. 어찌 보면 여행이 그렇다. 지난겨울 발리 여행에서 나는 무작정 걸었다.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 기록을 보니 하루에 3만 보를 걸은 날도 있었다. 다행히 걷는 걸음마다 나의 길이 되었다.
어찌 보면 삶도 그렇다.
목욕탕 가는 길
지난 시월 보름부터
바깥 걸음을 하지 않았던 노승들이
긴 언덕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경을 처음 외우는 동자들처럼
떠듬떠듬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4. 런던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물론 비행기나 기차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 노트북으로 쓸 때도 있고 작은 메모장에 적기도 한다. 하지만 장점은 단점이 된다.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돌아온다. 매슥거리는 속과 어지러운 두통을 참아가며 달리는 버스나 택시에서 시를 쓴다. 한낮 호텔 수영장의 선베드에서도 일몰을 보러 간 해변에서도 글자 수를 계산하며 칼럼과 산문을 쓴다. 몇 해 전 비교적 긴 휴가를 내어 런던을 찾았다. 하지만 새로운 산문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그때의 기억은 호텔방의 흰 벽과 벽에 나 있던 작은 창문에 관한 것이 전부다.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다면 나는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을 좀처럼 글로 옮기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극지방을 여행하다 운 좋게 오로라를 보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글로 재현할 능력이 없다. 설령 온전히 적는다고 해도 이 아름다움은 나의 것이지 타인의 것이 되지 못한다. 독자들은 내가 쓴 오로라에 대한 시를 읽으며 ‘좋겠다. 부럽다. 그나저나 이제 네가 먹고살 만하구나. 그런데 오로라가 뭐 어떻다고’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다만 여행지에서 찾은 어느 식당의 저녁 풍경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쓸 수 있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처럼 혼자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당의 마지막 주문 시간을 조금 앞두고 한 젊은 사람이 내 옆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 젊은 사람은 이내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으리라. 이 장면을 쓸 수 있는 것은 시간과 세상과 허기에 쫓겨 밥을 먹어야 했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정말 귀하고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도 없는 것도 아닌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이름으로 가득한
머지않아 날은
어두워질 것입니다
인적이 끊긴 길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은
지금껏 온 길을 다시 가야 할 길로 만드는 일이지만
오늘은 이곳에
가장자리가 헌 배낭을 내려둘 것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유난히 원색을 좋아해서
이른 저녁부터
집 안 선반마다 놓인 그릇들은
가난한 제 빛을 밝힐 것입니다
물론 그쯤 가면
당신이 있는 곳에도 밤이 오고
꼭 밤이 아니더라도
허기나 탄식이나 걱정처럼
이르게 맞이하는 일들 역시 많을 것입니다
4. 도쿄
지난여름 일본의 주요 도시들을 찾았다. 일본어로 번역된 책의 출간 기념행사가 연달아 열린 까닭이다. 다른 언어로 처음 쓰인 문학을 읽는 이들의 마음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도쿄에서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나는 가까운 서점을 찾아 일본어로 된 시집을 몇 권 샀다. 물론 내가 전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그래도 번역기를 돌려가며 시의 문장을 하나하나 읽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만 어려움이 싫지 않았다. 이 어려움은 비단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질 때 생기는 불완전함 탓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거대한 난해는 한 인간의 사유와 감정이 언어의 옷을 입는 순간 탄생한다. 말의 번역이 아닌 마음의 번역.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고 출판사 편집자로 작가들의 책을 만들며 살아왔지만 나에게도 시는 어렵기만 하다. 어려워도 아주 희한하게 어렵다. 이미 알고 있는 평범한 낱말로 이루어져 있는데, 심오한 철학 용어가 담긴 문장도 아닌데 읽고 나면 내용과 의미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아 벙벙해진다. 비단 시와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를 대할 때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한 곡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한 폭의 추상화를 바라보며 나는 자주 머리를 긁적인다. 생각해 보면 세상 중요한 것들 앞에서 늘 같은 방식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먼저 사람이 그렇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가족이나 친구라고 해서 혹은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서 서로의 전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숱한 시간을 넘어 지금에 이르는 동안 어떤 환한 순간과 멍든 기억을 담아두었는지 익히 알고 있지만 막상 상대방이 툭툭 내보이는 말과 행동 앞에서 고개를 내젓는다. 이럴 때면 나에게 상대는 거리를 지나는 여느 행인보다 더 멀고 낯설게 다가온다. 사랑도 그렇다. 분명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인데 연유와 기원을 찾기 힘들 때가 많다. 어떤 면모는 나와 비슷해서 좋고 또 어떤 면모는 나와 반대여서 좋다. 예고나 기색도 없이 정연한 논리나 근거도 없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한 시절 전부처럼 품었던 사랑의 마음은 어느새 기울고 스러진다. 어떤 면모는 나와 비슷해서 싫고 또 어떤 면모는 나와 반대여서 싫다. 그토록 뜨거웠던 애정이 한순간 식어버리는 일. 역시 어떤 예고나 기색도 없다. 한 편의 시나 예술 작품 앞에서 사람이 보이는 낯빛과 태도는 타인은 물론 자신을 마주할 때도 이어진다. 모르는 것들 앞에서 굳은 얼굴로 돌아설 수도 있고 잘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을 알고 정직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예술과 사람과 사랑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다. 한번 알았다고 해서 외우거나 익힐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어려움과 불가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부디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대상을 무시하거나 멀리 치워둘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를 계속 가져보는 것. 곁에 두고 종종 들여다보는 것. 그러다 보면 눈앞이 넓어지고 환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바로 관점(觀點)이 생기는 것. 낯선 타인과 세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유일해지는 순간이다.
6. 다시 서울
내가 좋아하는 공항 풍경이 있다. 공항은 떠나거나 돌아오는 사람만 머무는 곳이 아니다. 공항에는 돌아오는 사람의 수만큼 마중 나온 이들이 있고 떠나는 사람의 수만큼 배웅하는 이들이 있다. 가방을 들어주고 캐리어를 끌어주고 조곤조곤 끊임없이 당부의 말을 건네는. 조금 전까지 손을 크게 흔들며 배웅을 마친 이들이 얼마간 의자에 앉아 있다 돌아서는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아울러 마중을 나온 이들이 도착 알림 전광판 앞에 서성이며 하염없이 눈을 끔뻑이는 장면도 좋아한다. 이렇게 다시 다정한 시차(時差)가 교차된다.
꿈속의 사랑
이번에 사준 거 한번 빨아 창가에 널어, 누가 뭐라 해도 빛이 제일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골라도 흰 것을 골랐을까, 성가실 텐데, 얼룩은 안 지고, 몇 번 입으면 헌것 같고, 그래도 구름처럼 참 곱기는 했어, 새로 담근 것은 조금 싱거우니까 부지런히 먹어, 남으면 친구들 불러다 기름 둘러 지져 먹고, 그리고 가끔 네 아버지한테도 기별 좀 해, 나한테 왔다가 들르는 거하고는 또 다른 거야, 서향집이라고 해서 어디 해가 안 드냐, 늦게 들어 탈이지, 그나저나 참으로 멀다 멀어, 한숨 잔다고 생각하면서 가, 눈 뜨고는 아는 길도 멀리 못 가는 법이다, 잘 가, 다음에는 오지 마. 내가 네게 갈 거야
- 글. 박준
- 일러스트레이션. 다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