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세상을 거닐다. 소프라노 조수미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으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100년에 한 번 나올 인류의 자산’이라 칭송받는 그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성악의 위상을 드높여왔다. 〈모닝캄〉이 조수미를 만나 그의 음악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Q. 세계 무대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고 계신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를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이라 표현하십니다.
저는 언제나 스스로를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무대에서 수천 번 넘게 노래했고 수많은 도시와 극장을 거쳤지만, 여전히 무대에 오를 때마다 떨림과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떨림이야말로 제가 계속해서 노래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해요. 완성됐다고 느끼는 순간 예술가로서의 성장은 멈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무대에서 비워내고 또 채워나가는 이 여정이야말로 예술가로서 제가 지켜야 할 길이니까요.
Q. 1983년 유학 이후, 아시아 여성으로서 서구 중심의 오페라계에서 전례 없는 길을 개척해 오셨습니다.
1980년대, 갓 스무 살을 넘긴 한국 여성이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서 주연을 맡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음악으로 평가받기보다 외모나 국적부터 설명해야 했으니까요. 그 벽을 넘게 해준 가장 큰 힘은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내가 음악이라는 길 앞에서 겸허해질 때, 주변의 편견이나 두려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 벽은 단지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관문이기도 했구나 싶어요. 제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겐 더 넓은 길이 돼 그들의 목소리로 세계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2024년 시작된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를 비롯해 후배 예술가들과 현장에서도 다양한 협업을 이어나가고 계시죠.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당신의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말에는 단지 성악가로서의 음성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적 개성과 존재 이유를 믿고 꿋꿋이 지켜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국제 무대는 화려하지만, 동시에 냉정하고 외롭습니다. 저 또한 그 길을 걸으며 수많은 순간에 흔들렸고, 때론 나 자신조차 믿기 어려운 고비를 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저를 버티게 해준 건, 제 안에서 우러나온 ‘진짜 목소리’였습니다. 기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술가로서의 중심인 감동을 전하려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경쟁력이라 믿습니다.
다양한 길, 확장된 무대
Q. 유네스코 평화 예술가 활동, 동물권 보호 활동, 장애인 권익 관련 캠페인, 후배 멘토링 등 음악가 그 이상으로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저는 ‘목소리’가 단지 무대 위에서만 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진정한 예술가의 목소리는 사회 속에서 더욱 큰 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것은 어떤 거창한 계획 때문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 마주한 세상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활동할 당시, 전쟁과 난민 문제에 직면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단지 노래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자각을 갖게 됐습니다. 또 언젠가 공연 중 만난 청각장애인 관객이 제 음악을 “진동을 통해 마음으로 들었다”고 전해준 적이 있어요. 음악의 힘은 단순한 음정과 리듬을 넘어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사랑과 관심은 결국 다시 사회로 환원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경계 없이 이념을 초월해 나누는 언어이기에, 그 언어를 지닌 자로서 저는 앞으로도 그 책임을 기꺼이 감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목소리’의 진정한 쓰임이라고 믿습니다.
Q. 2021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석학교수로 임용되면서 활동의 외연이 더욱 확장됐습니다.
노래만 하던 제가 카이스트와의 인연으로 첨단기술과 미래 예술의 흐름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게 됐고, 동시에 무대 밖에서도 예술의 미래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예술과 과학, 기술이 협업할 수 있는 접점을 탐색하며 기관 내에 ‘조수미 공연예술 연구센터’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센터에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무대 언어를 만들어가고자 AI 음성 기술을 활용한 고전 성악 발성 분석 연구, VR·AR·디지털 휴먼을 활용한 미래형 공연 실험 등 다양한 융합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제 예술 경험을 공유하고 학생들과 연구자들의 창의적 시도를 멘토링하며 함께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축적한 경험이 이제는 기술과 만나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Q. 그렇다면 미래의 공연예술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둬야 할까요?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대에 저는 오히려 ‘무엇이 변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공연예술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형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할 중심은 사람의 감정과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다음 조수미
Q. 앞으로 어떤 공연과 프로젝트를 앞두고 계신가요?
올여름은 제 음악 여정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6월 중순에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의 수상자들과 함께 공연한 오페라 갈라콘서트를 시작으로 한국과 유럽, 아시아 각국에서 의미 있는 무대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26년은 제게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을 맞아, 글로벌 프로젝트인 ‘Sumi Jo Festival: vocalNATION 2026’이 본격적으로 출범합니다. 특히 2026년 9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공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 음악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과 함께 호흡하며 오롯이 ‘소리의 본질’에 집중하는 무대를 꾸밀 예정입니다.
Q. 지금까지의 ‘조수미’가 아닌, 앞으로의 ‘다음 조수미’는 어떤 모습일까요? 인생을 하나의 ‘여정’ 혹은 ‘여행’으로 비유한다면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싶으신가요?
돌아보면 ‘조수미’라는 이름으로 걸어온 길은 어느 하나 평범한 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을 단순히 커리어나 업적의 나열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목소리의 여행’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로 살아가는 여정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그건 세계적인 무대에 섰던 날도, 상을 받았던 날도 아닌, 공연이 끝난 후 조용히 찾아와 “당신의 노래로 오늘을 견뎠다”고 말해준 어느 관객의 한마디였어요. 그 한마디가 저를 다시 무대에 서게 했고, 지금껏 이 여정을 멈추지 않게 해주었죠. 결국 예술가의 길이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저는 더욱 단단해진 울림으로 세상을 향해 더 넓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꼭 무대 위가 아니더라도, 음악과 사람, 기술과 세대, 문화와 언어를 잇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여정을 이어가려고요. 목적지는 멀리 있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제가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에 다가가기 위한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저는 오늘도 노래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조수미는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음악원을 졸업한 후 아시안 최초로 국제 콩쿠르 여섯 개를 석권하고 세계 5대 오페라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세계적 프리마돈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