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 August 2025 (Vol. 49 No. 04)

감성을 품은 코드의 도시, 시애틀

기술과 감성이 공존하는 도시, 시애틀. 미래와 자연, 실험과 회복, 혁신과 낭만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결을 따라가 본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피디아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의 허브인 시애틀은 최첨단 산업의 중심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코드의 틈새마다 감성과 예술, 음악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바다 안개가 내려앉은 항구와 뮤지션들이 모이던 다운타운의 낡은 카페 그리고 예술을 싹틔운 폐창고까지, 시애틀은 테크 붐 이전에도 늘 창조의 도시였다. 지금 이 도시에선 첨단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며, 알고리듬과 감성이 나란히 걷고 있다. 유리 건물 사이로 여전히 낭만이 흐르고, 혁신은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한층 깊이를 더한다. 기술과 자연, 실험과 회복, 혁신과 문화가 교차하는 시애틀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이곳에서 미래를 향한 가장 인간적인 상상력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애틀 센터를 지나는 모노레일이 대중음악박물관 모팝(MOPOP) 곁을 스치듯 지난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유려한 곡선의 건물과 공중을 달리는 열차가 어우러져 미래적인 도시 풍경을 완성한다.
엘리엇 베이에서 바라본 시애틀 다운타운 전경

시애틀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한 더 스피어스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 전시장 내부

자연을 품은 알고리듬

도심 한가운데 솟은 유리 돔 세 개. 시애틀 아마존 본사 데이원 빌딩 바로 옆에서 울창한 열대식물이 자라고 있다. 바로 더 스피어스다. 이곳은 숲을 닮은 사무실이 아니라 사무실을 품은 숲에 가깝다. 이 공간은 4만여 종의 식물로 채워져 있으며, 자연 속에서 일할 때 더 창의적이고 회복력이 높아진다는 아마존의 ‘워크 라이프 하모니’ 철학을 반영한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실 같은 이곳은 직원들의 감각을 깨우고 리듬을 되찾게 하는 회복의 생태계로 기능한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적용된 더 스피어스는 기술이 만든 자연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낮과 밤의 주기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신선한 공기가 끊임없이 순환하도록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식물들. 그리고 이를 세심하게 관리하는 인간과 알고리듬이 공존하는 풍경. 이러한 모습은 자연을 갈망하는 현대 도시인의 마음과 그 갈망을 해소하려는 도시 건축의 방향성을 함께 제시한다.
또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재해석한 공간도 있다. 바로 시애틀 센터에 자리한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다. 시애틀의 대표적 문화 명소 중 하나인 이곳은 유리 조형예술의 정수를 보여 준다. 시애틀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데일 치훌리는 수천℃의 열을 견딘 유리로 꽃과 풀, 해조류 같은 유기적 생명체를 형상화했다. 더 스피어스가 알고리듬이 설계한 생태계라면 치훌리의 작품은 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난 자연이다.
인공과 자연, 기술과 예술이 서로 다른 언어로 하나의 세계를 그려 내는 이 두 공간은 시애틀의 창의성과 감수성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감각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방식의 도시 정원이 시애틀에서 자라고 있다.


대중음악박물관 모팝 내 전시장 전경
대중음악박물관 모팝 전경

심장은 기타 소리로 뛴다

시애틀은 테크놀로지의 도시이기 전에 록 음악의 도시였다.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 등으로 대표되며 1990년대를 뒤흔든 그런지 사운드는 바로 이곳, 안개 낀 항구도시의 골목에서 태어났다. 저항과 슬픔, 자유의 감정을 토해내던 멜로디는 지금도 이 도시에 깊이 스며 있다.
대중음악박물관 모팝(MOPOP)의 어두운 전시실, 너바나의 프런트맨이었던 커트 코베인의 낡은 스웨터와 손때 묻은 기타는 그 시절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한다. 그러나 시애틀의 음악은 회고에 머물지 않는다. 벨타운의 더 크로커다일 같은 라이브 하우스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리고 새로운 멜로디가 탄생한다. 더 크로커다일은 너바나와 펄 잼이 초기에 공연하던 전설의 장소로, 1991년 오픈한 후 30년을 넘어 현재까지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연주되는 곳이자 록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지다. 〈롤링스톤〉지가 꼽은 미국 내 최고의 클럽 중 하나기도 하다. 이 흐름은 레트로 문화와 아날로그 감성의 부활로도 이어진다.
이지 스트리트 레코드나 실버 플래터스 같은 바이닐 숍은 음악 애호가들이 다시 찾는 청춘의 아지트다. 손으로 넘기는 앨범 재킷, 턴테이블 위로 바늘이 내려앉는 순간의 설렘. 디지털 세대조차 이런 감각적 경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KEXP-FM도 빼놓을 수 없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이 공영 독립 라디오 방송국(90.3 FM)은 1972년부터 시애틀 시민과 함께해 온 곳으로 디지털 덕분에 이제는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한다. 지역민의 큰 사랑을 받는 이곳의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매일 ‘지금’의 시애틀 음악을 생생하게 녹음하고 송출한다.


이지 스트리트 레코드
KEXP 전경
더 크로커다일의 공연 관람을 위해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

시애틀공립도서관 3층에 위치한 더 리빙룸
엘리엇 베이 북 컴퍼니는 50년 넘게 시애틀의 문화를 지켜온 독립 서점이다.
휴고 하우스 외관

활자 위를 걷는 도시

시애틀은 자타공인 문학 도시다. 2017년, 유네스코는 시애틀을 ‘문학의 도시’로 공식 지정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유네스코에서 문학의 도시로 지정한 곳은 아이오와 시티와 시애틀 단 두 곳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시애틀 문인들의 문학적 자부심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다. 유네스코는 90여 개가 넘는 시애틀의 활발한 문학 공동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교육 공간,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독서와 창작을 위한 탄탄한 기반 시설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휴고 하우스는 시애틀의 문학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비영리 문학 기관이다. 초창기에는 낡고 비좁은 주택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현대적 건물로 이전해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1990년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신진 작가에게는 창작의 기회를, 지역사회에는 문학적 교감을 제공하는 커뮤니티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편 1973년에 문을 연 엘리엇 베이 북 컴퍼니도 있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시애틀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다. 낭독회, 워크숍, 북 토크 등 다양한 문학 행사를 꾸준히 열며 지역 문학 생태계를 풍요롭게 해왔다. 이와 더불어 매년 개최되는 ‘시애틀 아츠 앤드 렉처스’, ‘리트 크롤 시애틀’, ‘쇼트 런’ 등의 문학 및 예술 축제는 도시 전역에 창작과 표현의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모든 문학적 풍경의 중심에는 시애틀공립도서관이 있다. 2004년 〈타임〉지가 ‘올해의 건축물’로 선정한 이곳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격자무늬가 유니크한 구조로, 도시의 아이콘이자 시민의 지적 놀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설계는 현대건축의 거장 렘 콜하스가 맡았으며, 정보 접근의 평등을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지식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기술이 도시를 설계하고 알고리듬이 일상을 채우는 시대에도 시애틀은 감성을 잃지 않는다. 유리 돔 아래 자라는 식물, 라이브 하우스의 진짜 목소리, 낡은 책장 사이 손 글씨처럼 시애틀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언제나 사람을 기억한다.


24 Hours in Seattle

시애틀의 다양한 얼굴이 궁금하다면 꼭 방문할 다섯 곳

올림픽조각공원

도심과 바다를 잇는 예술 공원이자 거대한 야외 미술관. 잔디밭과 산책로를 따라 알렉산더 칼더, 리처드 세라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조각작품을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시애틀 앞바다 너머로 펼쳐진 올림픽산을 배경으로 조성되어 ‘올림픽조각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2901 Western Avenue, Seattle, WA 98121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1907년부터 이어지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애틀의 살아 있는 역사다. 시애틀의 정체성과 지역민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전통시장으로 신선한 해산물과 농산물, 꽃과 로컬 아티스트들의 수공예품, 거리공연 등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타벅스 1호점도 이곳에 있다.

  • pikeplacemarket.org

시애틀 프리워킹 투어

약 2시간 안에 시애틀의 핵심을 꿰뚫는 최고의 입문 투어. 친절한 로컬 가이드와 함께 도보로 시애틀의 역사, 건축, 문화, 숨은 명소까지 두루 탐방할 수 있다. 도시를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첫걸음이 된다. 무료 투어지만 소정의 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seattlefreetours.com

REI 시애틀 플래그십스토어

시애틀의 아웃도어 정신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입구에서부터 산장에 온 것 같은 자연 친화적 설계 공간이 눈에 띄고 체험형 쇼핑도 인상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매장을 넘어 ‘밖으로 나가는 삶(Opt Outside)’을 철학으로 삼는 시애틀의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다. 비가 잦은 날씨 속에서도 자연을 향한 도시의 열망이 브랜드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 222 Yale Ave N, Seattle, WA 98109

케리공원

시애틀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 경사가 많은 시애틀의 도로를 따라 고급 주택가 정상에 오르면 스페이스 니들과 마운트 레이니어, 엘리엇 베이까지 한 프레임에 담기는 풍경이 펼쳐진다. 시애틀을 처음 찾은 여행자뿐 아니라 지역민도 즐겨 찾는 시애틀의 대표 전망 명소다.

  • 211 W Highland Dr., Seattle, WA 98119
  • 글. 최진이
  • 사진. 신규철
  • 대한항공은 인천—시애틀 직항 편을 주 7회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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