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 August 2026 (Vol. 50 No. 04)

도시를 듣는 방법

<모닝캄>은 일상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생각을 ‘옴니버스 스토리’를 통해 전합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들이 독자의 여정 속에 작은 생각 하나로 머물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 다니엘 린데만은 독일 출신 방송인으로 한국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언어와 정치,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국에 정착했으며, 2014년 JTBC 〈비정상회담〉에 독일 대표로 출연하며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식 앨범을 발표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하고 2017년 첫 정규앨범 〈Esperance〉를, 2019년 두 번째 앨범 〈Story〉를 발표하며 전곡을 직접 작곡·연주한 피아노 음악을 선보였다.

경청의 미학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직업에 따라, 취향에 따라 혹은 오래 품어온 관심사에 따라 같은 바다와 같은 거리, 같은 식당조차 전혀 다른 풍경으로 남는다. 어떤 이는 도시의 건축을 먼저 바라보고, 어떤 이는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를 기억한다. 그런데 낯선 도시를 걷는 순간 오래전 즐겨 들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문득 마음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한다면, 아마 그는 음악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음악으로 세상을 바라봐왔다.

실제로 내 삶에서 음악은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방송인으로 기억하지만, 내 안에는 오래전부터 음악을 향한 시간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어린 시절 취미처럼 시작한 음악은 몇 년 전부터 조금 더 본격적인 삶의 방향이 됐다. 피아노 연주곡을 녹음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주 천천히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늘 어딘가를 경계하며 살았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관계 속에 형성되는 미묘한 긴장 혹은 스스로 만든 기준들까지. 마음 한편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송이라는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때때로 자신을 쉬지 않고 증명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음악에 깊이 몰입하게 된 뒤부터 이상하리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조금 더 느슨해졌고, 조금 더 고요해졌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사람의 말투와 도시의 리듬, 바람과 거리의 속도까지도 이전과는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음악은 소리를 듣는 일인데, 그것이 세상을 듣는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음악이 내게 만들어준 그 감각을 꼭 챙겨 간다. 어디에 있든, 나만의 방식으로 그 도시를 듣기 위해서다.

그날도 나는 비행기 창가에 앉아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적지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니스. 지중해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창밖 가득 번지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며칠 동안 니스와 그 주변 도시들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나의 고향인 독일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이지만, 이상하게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도시.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대체 어떤 풍경을 가진 도시일까?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끌었던 건 따로 있었다. 나는 과연 그곳에서 어떤 소리를 만나게 될까?


프랑스를 닮은 플레이리스트

니스는 생각보다 더 매력적인 도시였다. 아침이면 골목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천천히 퍼지고, 눈부신 햇빛은 오래된 건물의 벽면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관광객으로서는 눈과 코가 즐겁고, 음악가로서는 귀가 행복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해변을 따라 끝없이 러닝하는 사람들의 리듬을 바라보니 이상하게도 보사노바가 듣고 싶어졌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순간, 브라질도 아닌 이 도시에서 기타로 연주되는 보사노바의 멜로디가 얼마나 잘 어울릴지를 자연스레 상상하게 됐다. 보사노바는 원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 문화 속에서 태어난 음악이다. 삼바의 리듬 위에 재즈의 화성과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를 얹은 이 장르는 뜨겁기보다 오히려 절제된 여름에 가깝다. 나 역시 처음 보사노바를 들었을 때 강렬함보다 ‘온도’를 먼저 기억했다. 무언가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음악. 그래서인지 나는 오래전부터 햇빛 좋은 도시나 바다가 가까운 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보사노바를 떠올리곤 했다. 음악은 특정 국가에서 태어나고 특정 장르로 분류되지만, 정작 우리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그 음악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니스 근교의 빌프랑슈쉬르메르에서는 해변 가까이 차를 세워두고 한참 동안 산책을 했다. 이곳에선 빠르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어떤 차 소리도 없이 사람들의 느긋한 대화만 바람 사이로 떠다녔다. 그러다 웨이터들이 장난치며 웃는 소리가 겹쳐지고,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갈 때 해변의 소리는 마치 하나의 크레셴도처럼 점점 커졌다. 아주 작은 속삭임으로 시작된 도시의 리듬이 어느새 메조포르테 정도의 볼륨으로 주변을 채웠다.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교향곡 한 곡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동쪽으로 차를 몰아 가까운 에즈 빌리지로 향했다. 눈부신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 정상에 자리한 열대 정원은 탁 트인 야외 풍경 덕분에 바다와 언덕, 오래된 집들을 한눈에 품게 만든다. 선인장 사이로 보이는 지중해의 풍경은 마치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팝송처럼 익숙하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반복해서 찾는지 금세 이해하게 됐다.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Summer Soft’(1976)가 떠올랐다. R&B 거장 스티비 원더 특유의 부드러운 전자피아노 선율과 유영하듯 흐르는 리듬은 한여름 미풍 같은 에즈 빌리지의 공기와 묘하게 닮았다. 이 곡이 수록된 〈Songs in the Key of Life〉는 재즈와 소울, 펑크와 라틴 음악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사적인 명반으로 꼽힌다.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리듬과 감각을 탐색했던 스티비 원더의 태도는 피아노라는 하나의 악기로도 전혀 다른 세계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니스 투어의 마지막 장소는 망통이다. 이곳은 살아 숨 쉬는 한 폭의 유화라고 묘사할 수 있다. 이곳 같은 건축물의 색감을 다른 곳에선 본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황톳빛의, 수백 년간 햇빛과 소금기를 머금은 채 해풍을 받아 퇴색된 파스텔 톤 파사드들이다. 일렉트릭 재즈의 대가 허비 행콕의 정규 12집 〈Head Hunters〉 속 ‘Chameleon’(1973)과 같은 펑키한 곡이 떠오르는 색감처럼 그만의 그루브와 절제로 과하게 달아오르지 않는 적당한 열기가 거리에서도 느껴졌다. 단순한 베이스 위에 신시사이저의 레이어를 천천히 쌓아가는 방식 역시 이 도시의 느긋한 분위기를 닮았다.

이 마을에도 유명한 장소가 있다. 생미셸 계단을 오르면 푸른 하늘이 집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오는 좁은 골목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숲속을 천천히 걸을 때 나무들이 우리를 관찰하듯, 여기서는 건물들이 우리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침묵의 골목길에는 드뷔시의 ‘Ballade’(1890)가 더 어울린다.


피아니스트의 여행

사람들은 종종 피아니스트라면 클래식 음악만 가까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음악은 특정 장르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여행할 때도 의도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어떤 날은 재즈를, 어떤 날은 보사노바를, 또 어떤 순간에는 오래된 프렌치 팝이나 전자음악을 반복해서 틀어놓는다.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음악이 공간의 공기와 어떻게 섞이는가 그리고 그 장소의 감정을 어떻게 더 선명하게 들리도록 만드는가에 있다.

음악가로 활동할수록 이런 경험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예전에는 피아노 연주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소리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어느 도시의 골목에서 들었던 발걸음 소리, 카페 안에서 뒤섞이던 사람들 목소리, 해변에서 반복되던 파도의 리듬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의외의 방식으로 연주 안에 스며든다. 즉흥연주의 템포가 달라지기도 하고, 화성을 선택하는 감각이 이전과 달라지기도 한다. 결국 음악은 연습실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풍경과 기억들 속에서 천천히 완성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아마 이번 여행 역시 오래 남을 것이다. 니스와 그 주변 도시들에서 마주한 빛과 바람 그리고 그곳만의 느긋한 리듬은 언젠가 내 손끝의 멜로디로 다시 돌아올 것 같다. 나는 그 기억들을 피아노 위에 천천히 담아볼 생각이다. 곡 제목은 이미 정해뒀다. ‘Memories in Blue’.

사실 여기서의 ‘Blue’는 슬픔의 색이라기보다 지중해를 바라보던 순간의 색에 더 가깝다. 니스의 바다는 하루에도 수없이 다른 파란빛을 띠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파란색이 가장 감정적인 색이라고 생각해 왔다. 고요함과 그리움, 평온함과 깊이를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이 내게 남긴 감정도 그와 비슷할 것 같다. 화려하거나 강렬한 순간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공기와 리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햇빛 그리고 바다 위를 지나던 바람 같은 것들. 나는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음악으로 남겨두려 한다.

여행은 끝났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 또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를 만나게 될 것을.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여행의 기억들을 하나씩 소리로 번역하게 될 것이다.

  • 글. 다니엘 린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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