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몰아 보기,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역지사지 체험
드라마의 가장 큰 묘미는 타인의 삶에 빠져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감정과 사연 속으로 들어가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에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빙의와 영혼 체인지 같은 판타지 설정은 이러한 체험을 한층 극대화한다. 몸은 같지만 영혼이 달라지거나 갑자기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떨어지게 된 인물이 낯선 세계를 통과해 가는 과정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와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는 바로 그 역지사지 체험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들이다.
〈신이랑 법률사무소〉, 신들린 변호사의 변호
귀신 보는 변호사 신이랑이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판타지 법정 드라마.인간과 영혼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정의와 공감의 의미를 되살린다.
© SBS
귀신 보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망자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변호에 나선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설정은 파격적이다.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 장르에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법정극을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설정은 K-드라마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한을 풀어줬다는 판관의 이야기는 예전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한 ‘아랑의 전설’ 편에도 등장했다. 이 드라마에서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은 사또 앞에 나타나 자기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한다. 이런 내용의 전통 설화가 현대적 공간인 법정에서 재해석된다면 어떨까.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전설 속 처녀 귀신과 사또를 각각 범죄의 피해자들과 변호사로 재배치하고 재해석한 것이다.
변호사 신이랑(유연석)은 과거 무당집이었던 곳에 변호사 사무실을 연 뒤부터 귀신을 보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각종 범죄로 억울하게 죽어 귀신이 된 망자들의 의뢰를 받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단순히 귀신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신이랑은 때로 귀신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빙의’까지 감수한다. 이를 통해 그는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 뿐 아니라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와 절망까지도 온몸으로 체감한다.
천재 과학자, 조직폭력배, 아이돌 연습생, 심지어 유괴된 어린아이까지. 귀신 의뢰인들이 품은 저마다의 사연은 증언과 빙의를 통해 차례로 드러난다. 망자와 그 가족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들이 등장하지만, 드라마는 무겁게만 전개되지 않는다. 빙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미디와 눈물 나는 휴먼 드라마가 이어지고, 여기에 악인을 향한 통쾌한 정의 구현이 더해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오컬트 장르에서는 귀신들이 직접 가해자를 처단하는 사적 제재나 초자연적 힘에 의한 즉각적 징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주로 법정이라는 공적 무대 안에서 망자들이 모은 단서를 통해 처벌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오컬트물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파괴적인 원한을 사법 시스템이라는 이성적 그릇 안에서 다뤄 진정한 정의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영혼 체인지로 절절해진 역지사지 로맨스 사극
웃음을 잃은 세자와 기억을 잃은 부보상의 영혼이 뒤바뀌는 로맨스 사극. 성별과 신분이 상극인 두 인물이 만나 서로의 진실과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 MBC
〈신이랑 법률사무소〉에서 망자인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빙의였다면, 로맨스 사극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는 신분도 성별도 다른 두 사람이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드라마는 사랑하던 빈궁의 죽음으로 복수를 꿈꾸며 살아가던 왕세자 이강(강태오)이 어느 날 빈궁과 똑같은 얼굴을 한 부보상 박달이(김세정)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비극적 사건으로 5년 전 기억을 잃은 박달이. 죽은 빈궁을 잊지 못한 이강과의 운명 같은 만남 속에서 그녀는 기억을 조금씩 되찾는다. 이 정도면 박달이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빈궁이었다는 걸 누구나 예측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는 그러한 숨겨진 비밀보다도 더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혼이 바뀌는 설정은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빛을 발하곤 한다. 이 드라마 역시 성별과 계급, 신분의 경계에 대해 엄격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더욱 긴장감을 유발한다. 두 남녀의 영혼이 바뀐 탓에 왕세자였던 이강은 날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부보상의 현실을 짚신 신은 발바닥으로 체험하고, 박달이는 화려해 보이는 궁궐이 매 순간 적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해야 하는 감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서로가 되어본 두 사람은 더 절절한 사랑에 빠져든다. 그뿐 아니라 서로의 위치에 있는 자들과 손을 맞잡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상호 구원의 서사를 그려낸다.
최근 K-드라마의 저력 중 하나는 여러 장르를 더하는 퓨전의 신선함이다. 오컬트 장르에 법정극을 더하거나 사극과 영혼 체인지 같은 판타지를 조합하는 시도는 익숙한 장르를 새롭게 변주시킨다. 서로 다른 장르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하나로 묶이는 이유는 이해라는 감정적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빙의나 영혼 체인지 같은 비일상적 설정은 언어나 이성만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는 타인의 아픔을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타인의 삶을 한발 떨어져 바라보지 않고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 똑같이 경험함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고요한 기내에서 잠시 이 두 편의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자신도 모르는 감정 속에서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시간 순삭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
TV PREVIEW
에픽 라이드: 더 스토리 오브 유니버설 테마파크 시즌 1
첫 에피소드 ‘건설’을 시작으로 유니버설 테마파크의 역사를 담는다. 영화산업과 놀이공원이 만나 거대한 몰입형 세계를 만들어온 과정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로, 창립 초기부터 최신 ‘에픽 유니버스’ 개발 과정까지 창작자들의 도전과 기술혁신, 스토리텔링 중심의 테마파크 철학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스크럽스 시즌 1
병원은 달라졌고, 의사들도 달라졌다. 2000년대 큰 사랑을 받았던 메디컬 시트콤 〈스크럽스〉가 리바이벌 시리즈로 돌아왔다. 원작이 젊은 의사들의 성장과 우정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변화한 의료 시스템과 새로운 세대의 시선을 반영해 오늘날 병원 안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셀레나+레스토랑 시리즈 1
팝스타가 셰프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셀레나 고메즈가 LA의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 다양한 셰프와 함께 주방 현장을 경험하며 음식 문화를 배워가는 버라이어티 시리즈다.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레스토랑 메뉴를 완성해 가는 여정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골드버그 패밀리 시즌 10
시끌벅적한 가족과도 결국은 작별할 시간이 온다. 1980년대 미국 교외를 배경으로 한 가족 시트콤 〈골드버그 패밀리〉의 마지막 시즌으로, 늘 요란하게 부딪히던 가족의 일상을 통해 세대 갈등과 가족애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장기 시리즈 특유의 추억과 아쉬운 작별의 분위기도 함께 담겼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