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 August 2026 (Vol. 50 No. 04)

여름의 시작과 끝, 참외

한 계절은 달력보다 혀끝에서 먼저 열린다. 5월의 볕을 받아 올라왔다가 한여름을 함께 통과하고 8월 즈음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는 과일. 그 짧은 계절 안에 한국의 여름이 담겨 있다.


한국 참외만의 개성


덩굴에 매달려 노랗게 익어가는 참외
단맛의 정수인 태좌가 드러난 참외의 단면

참외의 영어 이름은 ‘코리안 멜론(Korean melon)’이다. 이름만 보고 한국에서만 나는 작물이라 여기기 쉽지만, 그건 아니다.

다만 노란 바탕에 흰 줄무늬가 또렷한 지금의 참외를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가 사실상 우리뿐인 것은 맞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이 권하는 표준명은 ‘오리엔탈 멜론’으로 이 이름이 알려주듯 참외는 본래 한·중·일이 함께 길러온 동아시아의 작물이다.

그중 중국은 참외를 포함한 멜론류 생산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로, 황금과(黃金瓜)·첨과(甜瓜) 같은 이름 아래 해마다 수백만 톤을 거둔다. 일본 역시 마쿠와우리라 부르며 오래 재배해 왔으나, 1925년 서양 멜론이 들어온 뒤로 빠르게 밀려나 지금은 일부 지역의 전통 채소로만 명맥을 잇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 참외만 따로 제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답은 그 개성에 있다. 노란 껍질에 흰 줄, 깨물면 경쾌하게 부서지는 식감, 15~17브릭스에 이르는 알맞은 당도. 이 조합이 이웃 나라 참외와 한국 참외를 또렷이 갈라놓는다.

이름을 한번 뜯어보자. 한자로 ‘진과(眞瓜)’라 적는 참외는 ‘참’과 ‘외’가 붙은 말이고, 여기서 ‘외’는 박이나 오이류 채소를 두루 일컫는다. 그 많은 박과채소 가운데 유독 이 열매에만 ‘진짜’를 뜻하는 ‘참’을 얹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외’들 중에서 가장 달고 귀한 것을 따로 가려내 그렇게 불렀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아삭함의 역사

조선의 농서들은 참외를 제법 진지하게 다뤘다. 18세기 전후에 엮인 〈산림경제〉와 19세기 전반의〈임원경제지〉는 어떤 흙에 심고 언제 씨를 뿌리며 덩굴을 어떻게 손봐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어 두었다. 농서가 한 작물에 이만한 지면을 내준다는 건, 그것이 그저 맛있는 먹거리 이상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그 선명한 노란 참외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전환점은 1957년이었다. 일본 도야마현에서 나온 은천참외가 이 무렵 국내에 들어왔는데, 재래종보다 수확이 이르고 당도도 한결 높은 조생종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참외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1975년 중앙종묘가 은천의 약점을 손본 신은천참외를 내놓았고, 1984년 흥농종묘가 금싸라기은천참외를 보급하면서 비로소 한국 참외는 자기만의 얼굴을 갖추게 된다. 같은 작물을 두고도 세 나라가 향한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일본은 서양 멜론에 자리를 내주며 참외를 거의 놓아버렸고, 중국은 자국 계열 품종을 대량으로 길러내면서도 국제 시장에 뚜렷한 인상을 새기지는 못했다. 한국이 붙든 것은 식감이었다.

한국 소비자는 깍두기처럼 이에 경쾌하게 걸리는 단단함을 참외의 미덕으로 쳤고 품종 개량도 그 입맛을 따라갔다. 은은한 단맛과 아삭한 조직감, 또렷한 향. 이 세 가지가 한국 참외를 독자적인 자리에 올려놓았다.

참외땅두릅된장무침. 얇게 썬 참외를 데친 땅두릅, 된장과 함게 버무리면 시원한 감칠맛이 배가 된다.

성주, 흙과 사람이 만든 참외의 땅

한국 참외를 말하면서 경북 성주를 건너뛸 수는 없다. 전국 생산량의 75~80%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 성주가 참외의 본고장이 된 데는 무엇보다 땅의 조건이 컸다. 낙동강을 낀 평야에 깔린 미사질양토는 모래보다 곱고 점토보다는 거친 실트가 넉넉히 섞인 비옥한 흙이다. 물이 잘 빠지면서도 양분은 붙들어 두는 성질이라, 뿌리가 얕고 과습에 약한 박과채소에 더없이 잘 맞는다. 여기에 풍부한 햇볕, 큰 일교차가 더해져 단맛은 올라가고 살은 단단해진다. 성주참외의 당도가 15~17브릭스에 이르는 것은 이런 조건들이 함께 빚어낸 결과다.

1940년대부터 성주 농민들이 쌓아온 손끝의 노하우도 이에 못지않다. 참외는 기계에 좀처럼 내주기 어려운 작물이다. 12월부터 시작되는 하우스 농사는 새벽마다 온도를 살피고 보온덮개를 여닫는 일의 반복이며, 한 덩굴에 열매가 지나치게 달리지 않도록 어린 참외를 과감히 솎아내는 판단도 날마다 내려야 한다. 어느 것을 남길지 가려내는 일은 결국 수십 년 쌓인 안목의 몫이다.

여름에 즐기기 좋은 반디나물참외샐러드.
© Courtesy of Hansalim; Recipe by Lee Yang-ji, Macrobiotic Cooking Expert
참외의 달큰한 맛과 풍부한 수분을 그대로 살린 시즌 음료, 참외주스
© gip2cafe

노란 계절의 맛


고추장 양념에 무쳐낸 참외 장아찌
© Sunchangtown
잿방어와 참외를 조합하여 단단한 식감과 시원한 맛을 낸 파인 다이닝 그랑디르의 대표 요리
© Grandir

한국인이 참외를 먹는 모습은 서양인에게 꽤 낯설게 비친다. 서양에서 멜론을 손질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운데 씨와 즙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는 것이다. 식감을 해치고 보기에도 지저분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우리네 자리에서 누군가 그렇게 했다간 핀잔부터 듣기 십상이다. 우리는 씨가 박힌 그 하얀 부위, 생물학적으로 태좌라 부르는 자리를 오히려 참외 맛의 정수로 여긴다. 딱딱한 씨가 씹히는 다소 거친 식감을 감수하면서까지 태좌를 함께 삼키는 건, 재료가 품은 단맛을 한 점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한식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외국 요리사들의 관심도 참외로 옮겨왔다. 과일의 향과 채소의 식감을 동시에 지닌 그 모호함이, 파인 다이닝 셰프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모양이다. 향과 과육을 살린 가스파초는 한식 코스의 전채로 오르고, 얇게 저민 참외에 흰살생선을 더한 카르파초에서는 생선의 묵직함 위로 참외의 아삭함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청량한 단맛이 얹힌다. 태좌의 단맛을 응축한 소르베, 껍질 향을 입힌 디저트, 거기에 칵테일까지. 요리사와 바텐더의 손을 거친 참외는 접시와 잔 위에서 갈수록 폭넓게 쓰인다. 이런 전문가의 실험에 앞서, 우리 선조 또한 참외를 과일이자 채소로 받아들였음은 참외장아찌가 일러준다.

오이보다 조직이 촘촘한 참외는 오래 절여도 꼬들꼬들한 식감을 잃지 않는다. 장의 짠맛과 참외의 단맛이 만나 발효를 거치면, 다른 채소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달큼한 감칠맛이 피어오른다. 달고 짜고 꼬들꼬들한 것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그 빽빽한 맛은, ‘밥도둑’ 말고는 달리 옮길 말이 마땅찮다.

무더위를 반길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도 참외 앞에서는 잠시 마음이 누그러질지 모른다. 노란 껍질에 흰 줄무늬,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 칼을 댈 때의 경쾌한 저항, 반으로 가르는 순간 피어오르는 달큼한 향 한 줄기. 한국의 여름은 참외로 열려 참외로 닫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한 표현일까?

  • 글. 장준우
  • 장준우는 셰프이자 푸드 칼럼니스트로 한국 식문화와 세계 각지의 미식 경험을 폭넓게 다뤄왔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지역의 역사와 생활 방식까지 함께 조명하는 것이 특징이며, 현재 〈서울신문〉에서 ‘장준우의 푸드 오딧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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