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의 시간들
유행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기준을 지닌 사람이다. 송골매의 리더이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37년째 진행하며 수많은 청취자와 저녁 시간을 함께해 온 배철수는 2026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받으며 한국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운 좋게 오래 했다”고 말한다. 음악평론가 배순탁과 나눈 이번 대화는 행운보다 기준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만의 취향과 방식을 선택하며 걸어온 배철수의 시간을 따라가 본다.
Q. 햇수로 37년째 매일 방송을 이어 오고 계십니다. 선배님은 늘 “운 좋게 오래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37년간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건 단순히 오래 버틴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여기까지 온 느낌이에요. 어떤 순간엔 내가 라디오인지, 라디오가 나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스케줄도, 삶도 전부 라디오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요. 남들 눈에는 특별한 궤적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저는 그냥 계속해 온 것뿐이죠.
Q. 사실 선배님이 처음부터 라디오에서 성공한 건 아니었잖아요. 1980년 첫 DJ를 맡았다가 6개월 만에 그만두셨고, 10년 뒤에 다시 돌아오신 건데요. 그 실패가 오히려 지금의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만든 것 같기도 해요.
실패로부터 배웠달까요? 그때는 인지도도 낮았고 무엇보다 너무 남의 말에 휘둘렸어요. 부장님의 한마디, PD의 한마디, 지나가는 방송국 사람들의 한마디에 다 흔들렸거든요. 스스로 기준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우왕좌왕하다가 6개월 만에 끝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할 땐 아예 마음을 새롭게 먹었어요. 이번엔 내 식대로 하자, 잘리더라도 내 패는 다 꺼내보고 끝내자. 남들이 원하는 DJ를 흉내 내다가 끝내는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순간엔 내가 라디오인지, 라디오가 나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스케줄도, 삶도 전부 라디오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요. 남들 눈에는 특별한 궤적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저는 그냥 계속해 온 것뿐이죠.
Q. 지금은 후배들이 선배님 스타일을 ‘교과서’처럼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굉장히 낯선 진행자였겠죠.
괴상한 DJ였죠(웃음). 그 당시 라디오 진행자들은 다 부드럽고 친절했거든요. 근데 저는 투박했고, 청취자들한테 듣기 좋은 말만 하지도 않았어요. 지금 보면 솔직한 타입이구나 할 수도 있는데, 당시엔 대부분의 사람이 “저 사람 왜 저래?” 그랬을 거예요. 근데 희한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받아들여졌어요. 사실 10년 전이나 후나 저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어요. 예전에 써둔 멘트 노트를 다시 봤는데, 기본적인 생각이 거의 똑같더라고요. 시대가 변한 거죠.
Q. 선배님은 라디오 안에서도 관행을 굉장히 많이 깨셨습니다. 대표적으로 “광고 듣겠습니다”라는 멘트나 DJ 휴가, 직접 선곡하는 시스템 같은 것들이요.
그때는 라디오 DJ가 휴가를 간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쉬는 일수만큼 다 녹음해 놓고 가는 시대였죠. 그런데 어느 날 뉴스를 보는데 앵커가 휴가를 간 거예요. 뉴스 앵커도 쉬는데 왜 라디오 DJ는 못 쉬냐 싶더라고요. 그래서 건의했죠. 선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PD가 다 했어요. 근데 저는 음악 프로그램이면 DJ가 자신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MBC가 저를 믿고 권한을 준 것도 컸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다른 프로그램과 가장 다르게 만든 지점 같아요.
Q. 선곡도 자기표현의 일부였던 거군요.
음악 취향이라는 게 결국 자기 자신을 내보이는 일이잖아요.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지 그 누가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겠어요. 다 주관적인 거죠. 저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틉니다. 재밌는 건 사람들이 제가 선곡한 노래는 다 어렵다고 한다는 거예요. 오히려 히트곡을 좋아하는 굉장히 대중적인 사람인데도요. 요즘 사람들이 예전 히트곡을 잘 모르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들 중에서 지금 다시 들어도 좋은 음악을 찾아 틀려고 해요.
Q. 재밌는 게, 송골매의 음악에서도 이런 자기표현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보위랑 같은 맥락의 말을 하셨더라고요. “결국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거고, 대중을 먼저 생각하면서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대단히 거창하게 생각하면서 음악을 만든 적은 없어요. 음악은 대부분 ‘어쩌다가’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요. 다만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했던 건 맞아요. 똑같은 길을 가는 게 재미없었거든요. 그게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 거고요.
Q. ‘빗물’, ‘모여라’ 같은 곡이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았지만 그것이 곧 송골매의 정체성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요. 특별히 애착 가는 노래가 있을까요? 송골매의 앨범엔 훌륭한 곡이 정말 많아요.
앨범 작업을 할 때 한국적인 것을 록 음악과 접목해 보려는 시도를 한 번씩 했었어요. 그게 당시 리스너들에게 공감을 얻었는진 모르겠지만 6집 ‘어부사시가’나 7집 ‘처용가’ 같은 노래들에 그런 새로운 시도를 담았었죠. 꽤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Q.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굉장히 선명하게 기억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스타 탄생〉(1976) 영화 한 편 때문이었죠. 군대를 제대한 뒤 우연히 극장 앞을 지나가다 야외 록 페스티벌 장면이 그려진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그게 〈스타 탄생〉이었어요. 영화 첫 장면에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는 장면을 보는데 ‘아, 음악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복학을 앞둔 터라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는데, 그 영화 한 편으로 순식간에 인생이 바뀐 거죠.
음악은 인간이 사라지기 전까진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아닐까 싶어요.
Q. 송골매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독특한 밴드였어요. 특히 리드보컬이 둘이었다는 점도 그렇고요.
구창모와는 워낙 친했어요. 저는 그 친구 목소리를 정말 좋아했고, 그 친구는 제 거친 목소리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안 어울렸을 거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친했죠. 사실 송골매는 시대 운도 좋았어요. 당시엔 록 음악 자체가 거의 전무했거든요. 그러다가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스쿨 밴드들이 한꺼번에 등장했고, 우리가 그 흐름의 중심에 들었던 거죠.
Q. 2022년 송골매 재결성 공연 때는 꽤 울컥하신 것 같았어요.
거의 40년 만에 무대에 오른 거니까요. 사실 저는 그렇게 큰 공연장이 관객들로 꽉 찰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이거 사람이 안 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만 했죠. 막상 무대 뒤에서 준비하며 객석 쪽을 봤는데 자리가 꽉 찬 거예요. 첫 환호성을 듣는데 정말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Q. 송골매를 기다린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선배님은 늘 과대평가되는 걸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평가가 조금 불편해요. 저 스스로 제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제 능력이 7이라고 치면 5나 6 정도에서 사는 게 편해요. 근데 자꾸 8이나 9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피곤해져요. 사람들이 저보고 겸손하다고 하는데, 겸손이라기보단 그냥 메타인지가 제대로 되는 사람인 거죠(웃음).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시대를 잘 만났고, 운이 좋았고, 거기에 노력도 조금 보탰던 정도랄까요?
Q. 제가 선배님께 가장 크게 배운 건 자기 관리였습니다.
라디오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깨달았어요. ‘아, 나는 이게 맞는 사람이구나.’ 음악할 때도 처음엔 재밌었는데 나중에는 클럽을 돌면서 연주하다 보니까 점점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라디오는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 뒤로 웬만한 건 다 거절했습니다. 저녁 6시엔 무조건 라디오 부스에 있어야 했으니까요. 광고도 제가 실제로 쓰지 않는 건 하지 않았어요. 한번은 아파트 광고가 들어왔었는데 거절했죠. 그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까 광고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자동차 광고도 제가 타는 차 아니면 안 했고요.
Q. 지난해 만 35주년 기념 방송으로 미국 롤라팔루자 현장에 선배님과 함께 다녀왔는데, 그때도 인상적이었던 게 있어요. 선배님은 공연을 마음껏 즐기기보다 방송 컨디션부터 관리하시더라고요. 그렇다면 현장을 찾으시는 이유가 뭘까 싶었어요.
재밌으니까 가는 거죠. 실제 현장에 가보면 지금 음악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가 보이거든요. 사람들이 어떤 음악에 반응하는지, 분위기가 어떤지 그런 게 느껴져요. 하지만 저는 방송을 해야 하니까 마음대로 다 보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숙소에 들어가서 컨디션 관리도 해야 하고요. 꼭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의미한 재미’가 있어요.
Q. 사실 선배님은 라디오 말고도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았던 사람이잖아요.
많았죠. 축구 심판도 해보고 싶었고, 골프 해설가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여행작가도 되고 싶었고요. 1990년대엔 글도 꽤 많이 썼거든요. 그래서 ‘여행 다니면서 책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근데 결국 다 못 했고, 어쩌다 보니 라디오만 37년째 하고 있네요(웃음). 지금은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나이가 좀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흔이 넘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분들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Q. 4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음악을 매개로 살아오셨어요. 그런 선배님이 믿는 ‘음악의 힘’은 뭘까요?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최신 음악을 계속 듣고 있으면 지금 사람들이 뭘 느끼고 어떤 흐름 속에 사는지가 보여요. 제가 그나마 덜 늙어 보이는 것도 계속 새로운 음악을 듣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음악에는 분명 치유 기능이 있습니다. 정말 힘들 때 음악으로 버텼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기쁠 때도 음악이 필요하고 슬플 때도 음악이 필요해요. 우린 늘 음악과 함께 살고 있는 거죠. 공포영화조차도 음악이 없으면 하나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잖아요. 그러니 음악은 인간이 사라지기 전까진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아닐까 싶어요.
- 인터뷰. 배순탁
- 편집. 한미림
- 사진. 안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