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과 함께한 풍경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새로운 계절이나 중요한 행사를 맞아 떡을 빚으며 안녕과 건강을 기원했다.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지져 먹는 화전놀이는 전형적인 한국의 봄맞이 풍경이었다.
한국인의 삶을 품는 떡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날에는 가족이 모여 흰 떡국을 먹으며 새해를 맞이했고, 8월 추석에는 오려 송편을 빚어 가족과 마을의 친화를 돋우었으며, 10월에는 집안의 안녕을 빌며 고사떡을 쪄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또한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면서 삼칠일에는 백설기를, 첫돌에는 오색 송편을, 생일에는 붉은 수수팥떡을 만들어 무병장수를 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혼례, 수연 잔치에는 귀하고 화려하게 공들여 만든 떡으로 경사를 축하하고,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에도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떡이었다. 이처럼 명절이나 절기 그리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떡은 한국인의 삶 속에 어우러져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뉘가 떡의 향기를 알던가. 황금빛이 면모에 넘치며 팥으로 소를 박았으니 먹기 쉬우므로 배고픔에 쾌적하여라.”
고려 말기 문인인 이색이 읊은 시구의 수수전병은 모양이나 맛이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대보름날 약밥을 쪄서 여러 집에 나누고 동짓날에 팥죽을 쑤는 풍습은 1000여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한 떡은 종류만도 250여 종이 넘는다. 떡은 주재료인 찹쌀과 멥쌀을 떡시루에 찌거나, 떡방아를 찧어, 손으로 빚은 떡 반죽을 삶아 건지는 등 다양한 조리 방식으로 만들어 포슬포슬하고 존득한 식감을 전한다. 또한 그 계절에 나는 꽃과 열매의 향기, 알알이 여문 곡물의 구수함, 잎이 머금고 있는 특유의 맛을 떡에 오롯이 담아 계절의 맛을 대표한다. 여름에는 떡이 쉴까 막걸리를 넣어 반죽하는 선조의 지혜로움도 엿볼 수 있다. 오랜 시간 고유하게 내림 음식으로 이어진 떡은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맛을 전하는 전통 디저트로써 한국뿐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오늘날의 떡
2010년대 후반 메가트렌드로 주름잡던 뉴트로 문화와 함께 떡이 새롭게 등장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디저트 숍에 낯선 디저트로 친숙한 떡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외 대사 관저 요리사를 거쳐 한식 파인 다이닝 헤드를 역임한 신용일 셰프는 한국 병과를 모던하게 해석해서 선보이는 ‘합’을 2011년에 오픈했다. 빵을 반죽하는 믹서로 떡 반죽을 만드는데, 공기를 불어넣어 끈적한 식감을 줄이고 가벼운 텍스처를 지닌 특별한 개성주악을 만들었다. 개성주악은 맛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우면서 단아한 모양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후 과일과 크림을 토핑한 개성주악, 민트초코 인절미, 크림치즈 찹쌀떡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하는 떡이 인기를 끌다가, 초콜릿과 과일크림 등을 가미한 모던 약과를 선보인 ‘골든피스’의 등장으로 한국식 디저트가 정점을 찍는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5〉 3스타를 받은 ‘밍글스’ 브랜딩 디렉터인 김혜준은 오늘날의 떡 문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떡 이 단순히 끼니를 때우거나 간식용이었다면 최근에 병과라는 장르로써 다양한 조리 방법과 미감이 돋보이는 차과자의 영역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한편 지난겨울 ‘카멜커피’ 팝업스토어에서는 제주도의 떡 브랜드 ‘제라헌’과 협업했다. 미국 맨해튼까지 진출하고 루이비통과 컬래버레이션하는 등 트렌드를 앞서 나가는 카멜커피의 박강현 대표는 제라헌과 협업한 이유를 “젊은 세대의 손에 의해 전통 병과가 변화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젊은 세대에게 전통 떡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서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로컬의 맛을 담은 전통 떡부터 생과일, 크림, 아이스크림을 넣은 이색 찹쌀떡까지, 독특한 조합과 비주얼로 MZ세대의 인스타그래머블한 감성을 사로잡고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홀린 떡
한식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결합하며 K-컬처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에서 〈미쉐린 가이드〉 2스타를 받은 한식 파인 다이닝 ‘주옥’은 2023년에 미식 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뉴욕으로 옮겼고, 1년도 안 되어 〈미쉐린 가이드 뉴욕 2024〉에서 1스타를 획득했다.
주옥에서는 병과 코스를 위해 궁중병과연구원을 수료한 전문 셰프가 매일 병과를 만든다. “주옥 코스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병과는 떡과 한과를 고루 섞어 선보입니다. 매작과, 약과, 구름떡, 양갱 등을 담아내며 한국의 맛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전합니다.” 또한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자리 잡은 ‘라이스 블로섬’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떡케이크 전문점으로 최소 2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떡을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떡은 비건 & 글루텐 프리 디저트’라는 인식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뉴요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 방송국 NBC에서는 2023년 ‘떡볶이의 점령: 미국이 탐닉하는 다음 메뉴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추억의 음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떡볶이는 가래로 뽑은 가래떡에 고추장 양념장 또는 간장 양념장을 넣고 볶은 음식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며 국민 간식으로 불린다. “크리스마스에는 떡볶이예요”라고 외쳤던 BTS 지민의 떡볶이 사랑이 해외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래미어워즈와 패션위크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래퍼 도이치는 직접 떡볶이 만드는 모습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떡볶이는 더욱 글로벌한 음식이 됐지만, SNS를 통해 떡 문화가 역수입되기도 한다. 바로 ‘꿀떡 시리얼’이다.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만든 꿀떡 시리얼은 꿀떡과 우유가 만난 의외의 조합이지만, 쫀득한 식감에 달콤한 꿀과 우유가 어우러져 찰떡궁합을 이룬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4년 떡류 수출액은 역대 최대 규모에 달했고, 이 배경에는 떡볶이와 꿀떡이 있었다고 밝혔다. 떡은 이제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6, 7. 호두곶감쌈을 소로 넣은 찹쌀떡 8. 화이트초콜릿을 얹은 모던한 디자인의 약과
- 글. 양연주
- 사진. 박다빈
- 푸드 스타일링. 문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