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간의 골목을 걷다
대구는 시간의 켜를 따라 걷는 도시다. 지붕 없는 박물관, 대구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대구는 도시 전체가 역사관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격동의 흔적이 골목골목에 스며 있다. 여행자는 대구의 옛 골목을 걸으며 돌담과 붉은 벽돌 건물에 밴 세월의 향기를 맡는다. 눈길 닿는 곳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풍경이 펼쳐져 마치 옥외 박물관 전시를 보는 듯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대구 근대골목 탐방은 관광을 넘어 한국 근대사의 한 장면 속으로 발을 들이는 경험이 된다.
청라언덕 ― 근대의 함성이 머문 자리
대구 중구의 언덕진 동네, 청라언덕. 이곳에는 100여 년 전 대구에 근대문명의 씨앗을 심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언덕 위 세 채의 붉은 벽돌집,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은 바로 옆 제중원(현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신명여자중학교(현 신명고등학교)와 함께 대구 근대 의료와 교육의 길을 연 선교사들의 헌신이 깃든 곳이다. 그들이 설계한 붉은 벽돌집은 대구에 서양식 주거 문화와 생활상을 처음으로 소개한, 몇 안 남은 소중한 근대건축 유산이다. 그중 스윗즈 주택은 한옥 기와를 얹은 독특한 외관이 이채롭다. 마룻바닥은 여전히 삐걱대고 목조 계단과 벽난로, 오래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은 이 공간이 오랜 시간 동안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음을 말해준다.
선교사 주택가를 지나 조금 더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3·1만세운동길이 시작된다. ‘90계단’으로 불리는 이 돌계단은 1919년 3·1운동 당시 대구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비밀리에 모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던 주요 동선이다. 당시 계성학교와 신명여자중학교의 학생들이 주축이 돼 계산성당 앞을 행진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계단 옆 벽면에 전시된 3·1운동 장면을 따라 걸으며 골목 곳곳에 설치된 QR코드를 스캔하면 그날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증강현실로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해 질 녘, 언덕에 드리운 주황빛 노을 속에서 돌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환자를 먼저 생각했던 의료인들,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려 했던 선교사들,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청년들의 목소리가 시대를 넘어 들려오는 듯하다. 청라언덕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 근대사의 장면들이 겹겹이 쌓여 숨 쉬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기억의 언덕이다.
계산성당 ― 고요한 붉은 벽돌, 대구 근대건축의 상징
청라언덕 아래 ‘90계단’을 내려와 마주하는 계산성당은 1902년 건축된 대구 최초의 고딕양식 성당으로 대구 근대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외관은 붉은 벽돌과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데, 프랑스 선교사 프와넬 신부가 설계에 참여하고 조선의 장인들이 건축을 맡아 동서양의 기술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단정하고 숭고한 분위기가 공간을 엄숙히 감싼다.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바닥이 색색의 빛으로 물들면 마치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은은하게 번지는 빛은 이곳이 품어온 오랜 세월과 그 안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듯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계성학교와 신명여자중학교 학생들이 이 성당 앞에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고 이후 이 일대는 대구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기억되고 있다.
서문시장 ― 정겨운 삶의 박물관
“어서 오이소!”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가 울려 퍼지는 서문시장에 들어서면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뒤섞인 활기가 몸을 감싼다. 조선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히던 대구장의 명맥을 잇는 이곳은 17세기 현종 연간에 시작돼 300년 넘는 세월을 품어온 전통시장이다. 시장의 골목골목에는 빛바랜 간판 아래 오랜 시간을 버텨온 한복집, 약령시 한편의 약재상 그리고 그 곁에 반듯한 조명을 켠 옷 가게가 나란히 자리해 서로 다른 시간대의 풍경이 빽빽하게 어우러져 있다. 낮에는 대구 향토 음식인 누른국수와 납작만두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밤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 여행자들이 야시장 불빛 아래서 어묵 국물을 호호 불며 저마다의 추억을 만든다. 특히 3월 21일 다시 문을 연 야시장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며 시민의 주말 저녁을 풍성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오래된 단골집 앞에서 주인장의 안부를 묻고, 누군가는 반짝이는 조명 아래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본다. 하루의 온기를 품은 상인들의 손끝과 그 앞에 선 이방인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시장은 오늘도 오랜 역사를 품은 풍경 속에서 묵묵히 사람들을 맞이한다. 오래된 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대구간송미술관 ― 대구의 끝에서 만나는 가장 조용한 감동
근대골목을 따라 대구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여정의 끝에 닿는 한 채의 미술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모든 것을 내놓은 한 사람의 신념이 공간으로 구현된 조용하고 단단한 기념비, 대구간송미술관이다. 그 주인공, 간송 전형필. 그는 칼 대신 붓을 들었고, 총 대신 고려청자를 품었다. 문화 말살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 것의 가치를 믿으며 고려청자, 훈민정음해례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유산을 지켜냈다. 2024년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우리의 것’이 전시돼 있다.
건축가 최문규는 간송의 ‘문화보국’ 신념을 고스란히 공간으로 빚었다. 미술관 입구를 지키는 11개의 아름드리나무 기둥, 동선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소나무, 지형을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내부와 외부까지, 이 모든 것은 자연과 건축을 하나로 엮는다. 이 땅에서 자란 나무와 오랜 세월을 견딘 돌로 만들어진 건축은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미술관’을 지향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미술관을 떠받치는 11개의 나무 기둥에 더해 이곳을 찾는 관람객이 12번째 기둥이 돼 비로소 건축이 완성된다는 상징이다. 미술관은 ‘지켜야 할 대상’에 더해 ‘함께 살아가는 공간’임을 말해주는 아름다운 은유다.
미술관을 나서 인접한 대구미술관까지 발걸음을 옮긴다면 고미술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한국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는 값진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현대적 건축의 창을 통해 여행자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예술의 숨결과 마주하며 대구 여행의 마지막 장을 가장 조용하고 깊은 감동으로 맺게 된다.
- 글. 이규정
- 사진. 장용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