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 June 2026 (Vol. 50 No. 03)

불판 위의 생활사, 삼겹살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한 점에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시간이 머문다. 연기와 냄새 그리고 쌈 한 입의 풍경 속에는 한국인의 생활사와 현대사가 함께 스며 있다.

2021년 9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는 한국어 기원 표제어 26개를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 중 여덟 개가 K-푸드와 관련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삼겹살’이 포함됐는데, 1976년 김치가 처음 등재된 후 막걸리, 비빔밥, 고추장, 된장 등에 이어 이 사전에 이름을 올리는 주인공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삼겹살이 본래 음식 이름이 아니라 식재료의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어 사전은 삼겹살을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로서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라고 정의한다. 살코기와 지방이 층층이 쌓여 결이 선명한 이 부위는 ‘세겹살’이라고도 불린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의 연대기를 따라가 보면, 그 안에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진화를 발견하게 된다.


1970년대, 삼겹살을 피했던 한국인


삼겹살과 김치, 신선한 채소가 어우러진 한국식 한 상

한국인에게는 삼겹살이 세겹살보다 발음하기 더 좋다. 그러나 언론에는 삼겹살보다 세겹살이라는 표현이 먼저 등장했다. 1934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 4면의 〈육류의 좋고 그른 것을 분간해 내는 법〉이라는 기사에는 “도야지(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중략)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삼겹살)이 제일 맛이 있고 그다음으로는 목덜미 살이 맛이 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에게 돼지고기는 그리 친숙한 고기가 아니었다.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오늘날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9년 1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설날 신선로’ 요리법에서부터다. 그러나 당시의 삼겹살은 구이용이 아니라 국물을 내거나 ‘편육’을 만드는 재료였다. 편육은 삶은 고기를 눌러 물기를 빼고 얇게 저며내는 음식으로, 본래 소고기가 주재료였다. 변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한국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자 소고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서민들은 비싼 소고기 대신 값싼 돼지고기로 눈을 돌렸다. 이때 삼겹살로 만든 편육이 대중적인 술안주로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돼지고기는 오늘날처럼 깔끔한 맛이 아니었다. 식용 품종도 아니었고, 농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여 키운 돼지에서는 특유의 고약한 노린내가 났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돼지고기 먹기를 꺼렸다. 한여름 상온에서 유통되던 돼지고기 편육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사건이 빈번했던 것도 부정적인 인식에 한몫했다.


품종개량과 삼겹살구이의 탄생


1970년대 초반, 삼겹살은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초기에는 홍콩이나 일본에 돼지고기를 수출하려 했으나 품질관리 미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부는 축산업의 규모화를 대기업에 권유했고, 삼성그룹의 제일제당(현 CJ)이 경기도 용인에서 1973년에 시작한 양돈 사업을 확장해 1976년부터 대규모 기업형 양돈장으로 키우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 양돈업은 현대적인 산업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돼지 품종을 식용에 적합한 개량종으로 바꾸고, 배합사료를 체계적으로 공급해 고기 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때 일본으로 안심과 등심 같은 저지방 부위를 대량 수출하게 됐는데, 상대적으로 기름기가 많아 수출길이 막힌 삼겹살이 국내 시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휴대용 가스버너와 일회용 부탄가스가 출시되면서 삼겹살 유행에 불을 지폈다. 당시 경제성장으로 여가 활동이 늘어난 한국인은 산으로 바다로 야외 나들이를 떠났고, 어디서든 간편하게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울 수 있게 되자 삼겹살구이는 야외 회식의 대명사가 됐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날것으로 내어 손님이 테이블 위 불판에 직접 구워 먹는 음식”이라는 정의는 바로 이 시기에 확립된 한국의 식문화다.

삼겹살을 가위로 잘라 먹는 방식은 한국 고유의 식문화이기도 하다.

천년의 ‘쌈’ 문화와 삼겹살의 만남


한국인이 삼겹살을 즐기는 방식은 독특하다. 단순히 고기만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상추나 깻잎 위에 고기와 각종 채소를 얹어 한 입에 넣는 ‘쌈’의 형식을 취한다. 이는 천년 전부터 이어져온 한국인의 쌈밥 먹는 방식이 삼겹살과 결합하며 진화한 결과다.

비록 삼겹살이 들어가지 않지만, 조선시대에 상추 쌈밥을 먹었던 방식을 조선 후기의 문신 이옥(李鈺, 1760~1815)의 글을 통해 살펴보자. “왼손을 크게 벌려 구리 쟁반처럼 들고, 오른손으로 두껍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먼저 흰밥을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잎 위에 놓는다.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한 다음, 젓가락으로 얇게 뜬 밴댕이회를 집어 노란 겨자장에 한 자밤 찍어 밥 위에 얹는다. (중략) 오른손으로 상춧잎 양쪽을 말아 단단히 오므리는데, 마치 연밥처럼 둥글게 한다. 이제 입을 크게 벌리는데, 잇몸을 드러내고 입술을 활처럼 펼쳐야 한다. 오른손으로 쌈을 입으로 밀어넣으면서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다.”

이옥은 이 맛을 “달고 상큼해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평했다. 오늘날 한국인은 밴댕이회 대신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얹어 천년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삼겹살과 마늘을 상추에 올려 싸 먹는다.
불판 위에 남은 삼겹살구이를 밥과 함께 볶아 먹는 것은 삼겹살구이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한 입이다.

무한히 진화하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


제주도 사람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멸치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젓갈인 ‘멜젓’을 꼭 곁들인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삼겹살을 먹는 방식은 멈추지 않고 진화 중이다. 삼겹살구이를 다 먹고 난 뒤 불판에 남은 기름에 잘게 썬 삼겹살과 배추김치 그리고 식은 쌀밥을 넣고 김과 참기름 등을 보태서 볶아낸 ‘볶음밥’은 식사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나무 표면을 매끄럽게 깎은 모양을 닮은 ‘대패삼겹살’은 1980년대 부산에서 생겨난, 청년을 위한 싼값의 삼겹살구이에서 시작됐다. 삼겹살의 기름기를 쏙 뺀 ‘솥뚜껑삼겹살’도 큰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19 시기에 해외여행보다 제주도 여행을 많이 간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들이 흑돼지 삼겹살구이를 멸치젓의 제주도 말인 ‘멜젓’에 찍어 먹는 방식을 배웠고, ‘멜젓 삼겹살’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삼겹살 설명 중에는 “전 세계 한식당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요리 중 하나다”라는 글이 나온다. 비록 삼겹살 유행의 역사는 40여 년에 불과하지만, 삼겹살 안에는 한국인의 고기구이에 대한 열망, 쌈과 비빔의 미학 그리고 함께 둘러앉아 소통하는 공동체 문화가 집약돼 있다.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구수한 냄새, 불판 위의 지글거리는 소리와 정성껏 싼 쌈 한 입. 한국인의 소울 푸드 삼겹살은 오늘도 전 세계인의 오감을 자극하는 중이다.

삼겹살은 단순한 구이를 넘어, 저온 조리와 글레이즈 기법을 통해 고급 요리의 미학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삼겹살 꼬치구이
  • 글. 주영하
  • 주영하는 동아시아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 인류학자다. 30여 년에 걸쳐 동아시아와 한국의 음식 문화 관련 저서를 30여 권 출판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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