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 December 2025 (Vol. 49 No. 06)

한국 드라마, ‘시간 순삭’의 비밀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에 답하는 정덕현 평론가가 K-드라마의 오늘을 바라본다.

시간은 물리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좋은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면 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른바 ‘시간 순삭(순간 삭제)’의 경험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소재의 스펙트럼을 크게 넓히며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 세팅으로 때로는 도파민을 자극하고 때로는 감성을 깊게 파고드는 한국 드라마의 오늘을 살펴본다.


국가대표와 액션의 결합, 〈굿보이〉


굿보이
전직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특채로 경찰이 되어 팀을 꾸리고, 각자의 운동 실력을 살려 강력범죄에 맞서는 액션 수사극. 스포츠 정신과 정의감이 교차하는 새로운 형태의 히어로 드라마다.
© JTBC

스포츠의 기량을 실전에서 쓰면 어떻게 될까?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에서 사격선수들이 그 먼 거리에서도 과녁의 정중앙을 척척 명중시키고 권투선수들이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면서 끝내 상대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볼 때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 보지 않았는지? 그 상상을 액션으로 구현해 낸 드라마가 〈굿보이〉다. 권투, 사격, 원반던지기, 펜싱, 레슬링 같은 스포츠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특채로 경찰이 돼 한 팀을 이룬다. 이른바 스포츠 액션 어벤저스의 탄생이다. 설정만으로도 이들이 국가대표 스케일로 펼쳐낼,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액션의 도파민이 기대되지 않는가.

권투 금메달리스트 출신 윤동주(박보검)는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추구하는 순수 정의파 경찰이다. 의욕이 앞서서 수사를 망치기도 하지만 특유의 권투선수다운 근성과 이름의 무게처럼 동주는 남다른 정의감을 갖고 끝까지 부패로 썩은 곳을 찾아 주먹을 날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특유의 맷집으로 단련된 국가대표 출신 동주의 권투 액션은 수십 명을 맨주먹으로 상대하며 도파민을 자극한다. 동주가 좋아하는 한나(김소현)는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특유의 ‘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유지한 채 달려드는 악당들을 향해 시크하게 방아쇠를 당기고, 펜싱 은메달리스트 출신 종현(이상이)은 막대기 하나로 수십 명을 상대하는 액션을, 원반던지기 동메달리스트 재홍(태원석)은 달려드는 차량에 맨홀 뚜껑을 던져 반파시키는 괴력을 선보인다. 이 어벤저스 팀을 이끄는 고만식(허성태) 팀장은 레슬링 동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허허실실하며 끈기 있게 악당들을 제압하는 통솔력을 보여준다.

스포츠가 액션으로 바뀌는 순간의 쾌감은 강력한 빌런들에 의해 증폭된다. 평범한 세관공무원의 얼굴로 어둠의 카르텔 권좌에 오른 민주영(오정세)이나 러시아마피아 레오(고준), 마약 딜러 마귀(이호정) 같은 빌런들이다. 돈과 힘으로 경찰 조직까지 좌지우지하는 만만찮은 악당들이 샌드백처럼 세워지면서 국가대표 어벤저스 팀의 피 튀기는 액션이 더욱 짜릿해진다. 스포츠의 정정당당함이 부조리한 세상에 날리는 한 방의 통쾌함이랄까? 보다 보면 어느새 정주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순삭’을 경험하게 된다.


멜로 너머 휴먼, 감성 촉촉, 〈첫, 사랑을 위하여〉


첫, 사랑을 위하여
삶의 무게 속에서 조금씩 잊어가던 사랑과 일상의 온기를 다시 마주하는 이야기. 가족, 이웃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다시 살아가는 법’을 찾는 따뜻한 힐링 드라마.
© tvN

“사람이 정말 힘들 때 ‘아, 그만 살고 싶다’ 숨이 꼴깍꼴깍 차오르는 지경이 되는 거. 근데 그때 사람을 살리는 게 뭔지 아세요? 사람. 그래도 사람이 숨을 트여주더라고.” 이 대사는 감성 드라마가 전하는 감동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첫, 사랑을 위하여〉라는 제목에 시작의 의미를 담은 ‘첫’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끝을 마주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딸 효리(최윤지)만을 위해 자신의 행복이나 삶 따위는 팽개치고 살아온 지안(염정아)은, 그렇게 의대까지 들어간 효리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해 버리는 일을 겪는다. 알고 보니 효리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 딸의 일탈은 엄마 지안의 삶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엄마의 첫사랑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로 떠난 딸을 찾아간 지안은 그곳에 집을 짓고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이다. 모든 것이 ‘첫’ 경험으로 다가오는 기적같은 삶. 지안은 드디어 진짜 삶의 행복을 소박한 일상에서 찾게 된다.

경쟁적인 삶을 살다 지쳐버린 도시인들이 조용한 시골(고향 같은)로 내려와 그곳에서의 삶과 사람들을 통해 생기를 되찾아가는 이야기는 최근 들어 한국 드라마의 중요한 서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웰컴투 삼달리〉 등이 그 서사를 갖고 있는 작품들이다. 〈첫, 사랑을 위하여〉도 그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지안과 그녀의 딸 효리가 작은 시골 마을로 내려와 경험하게 되는 순수하고 설레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효리가 보현(김민규)과 만들어가는 첫사랑의 설렘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이 떠오를 정도로 풋풋하고 예쁘다. 또한 지안과 그녀의 첫사랑 정석(박해준)의 다시 시작되는 중년의 사랑 이야기가 주는 설렘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따뜻한 이웃들과 나누는 훈훈한 정은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멜로로 시작한 드라마는 그 차원을 넘어서 휴먼드라마의 따뜻함을 전해준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한 사람의 존재가 별처럼 빛나는 작품이다.

스포츠와 액션의 만남 혹은 따뜻한 일상으로의 회귀. 서로 다른 소재의 두 드라마가 보여주는 흐름은 한국 사회가 동시에 갈망하는 짜릿한 해방감과 따뜻한 위로에 대한 반응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어딘가 여행과 닮았다. 기내에서 만나는 이 두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시간 순삭’의 경험을 선사한다. 한동안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 어쩌면 비행 중 만난 드라마 한 편이 당신의 여정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지도 모른다.

  • 정덕현은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기고, 방송, 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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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시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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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dbühn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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