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이 빛을 비추는 오늘, 명동
한국의 근대와 현재가 가장 밀도 있게 겹치는 무대, 명동. 대형 미디어파사드가 도시의 ‘현재’를 연출하는 순간, 맞은편에는 근대 상업도시의 기억이 겹겹으로 늘어선다.
관광지로 소비되던 명동을 이제는 서울과 세계가 새롭게 읽어낸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고도 성장의 시기를 거쳐온 이곳의 표정은 도시가 어떻게 기억을 써 내려갈 것인가를 묻는다. 대형 미디어파사드와 쇼윈도가 드러내는 시대의 취향과 흐름이 그 질문에 현재형으로 답한다.
도시의 창
요즘의 명동은 거대한 스크린으로 기억된다. 도심의 외벽들은 이제 단순한 광고판을 넘어, 도시의 시간과 감정이 투영되는 공공의 스크린이 되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초대형 LED와 롯데백화점 일대의 미디어파사드는 서로 마주 보며 서울의 오늘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이 빛의 교차 속에서 명동은 상업 공간이자 동시에 서울 시민이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는 열린 무대로 변모한다.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연말 시즌이면 스크린은 축제의 장면을 담아내며 도시의 정서를 시각화한다. 거대한 미디어파사드가 근대 석조건물의 질감과 나란히 선 장면은 기술과 기억,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자화상이 되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도시 이미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된다.
기억의 건축
붉은 벽돌의 고요한 리듬이 서울 도심의 속도를 잠시 늦춘다. 하늘을 향해 열린 아치와 첨탑이 시간을 품은 듯 서 있는 곳, 명동대성당이다. 근대도시 중심지에 남겨진 기념비적 건축물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본당인 이곳에 서면 단순한 종교적 장소를 넘어 도시의 기억을 축적하고 있는 명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맞은편 길목의 명동예술극장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광복 이후에는 국립극장으로서 1960~1970년대 명동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73년 국립극장이 이전한 뒤 잠시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상인과 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복원 운동을 벌였고 결국 정부가 부지를 매입해 건물을 인수했다. 이후 복원 공사를 통해 건축 당시의 얼굴을 되찾았는데, 그때 모습이 현재의 명동예술극장이다. 명동예술극장 건물에는 그리스식 기둥과 석조 기법, 아르데코풍 타일, 중세 문양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양식이 혼합된 근대적 서양 건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르네상스풍 석조 기법을 사용한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건물과 바로크식 파사드가 특징인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 건물에서도 이 같은 일본식 서구 건축양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전기·전신이 근대 국가의 표식이던 시절, 일제가 스스로 열강을 자처하며 ‘서구적 모더니티’를 증명하기 위해 차용하고 변형했던 건축 전략의 흔적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억이 단순히 아픈 과거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동의 건물들은 유산 위에 오늘의 의미를 덧입혀 도시의 시간을 새롭게 이어간다.
© SHINSEGAE
취향의 거리
서울 중심부에 ‘백화점’이라는 근대적 건축 유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이다. 근대 경성의 소비문화와 새로운 취향을 상징하던 이 건축물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도시의 문화공간으로 기능한다. 국내 최초의 백화점 건물에 들어선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역사적 건축을 현대적 소비와 문화 경험의 장으로 재구성한 사례다. 더 헤리티지관은 옛 은행의 공간 구조를 살리며 문화와 상업, 미학적 경험을 결합해 기억을 소비하는 도시 체험을 제안한다. 이곳의 쇼핑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근대의 시간과 오늘의 감각이 교차하는 공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명동의 거리로 시선을 돌리면, 로컬 브랜드와 감각적인 패션 오브제, 장인의 손길이 깃든 상점들이 시선을 붙든다. 그곳에는 한국적 감수성과 글로벌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또한 K-팝의 확산에 힘입어 굿즈 숍의 앨범과 다채로운 포토카드는 한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자 세계와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명동은 더 이상 과거의 상업 중심지에 머물지 않는다. 근대적 소비의 기억과 대중문화의 현재, 세계화된 감각이 중첩된 도시의 생태계로 진화하며, 기억과 콘텐츠가 서로를 매개해 도시의 정체성을 갱신한다. 명동은 기억이 현재로 이어지고, 소비가 문화로 확장되는 도시의 단면이다.
한 입의 명동
명동에서 맛을 고를 때의 기준은 메뉴가 아니라 역사가 되기도 한다. 시인 이상은 1935년 명치정(현 명동)에 ‘맥(麥)’이라는 이름의 다방을 열어 모던 살롱의 시대를 활짝 연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연극인,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명동 곳곳에 ‘성림’, ‘에리자’와 같은 다방을 세웠고, 광복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명동의 다방은 국립극장(옛 명치좌) 주변 예술인과 기자, 젊은 문예인이 모여 시를 낭독하고 음악 공연을 여는 등 종합예술의 장이 되었다. 그러니 명동에서의 한 잔, 한 입은 명동이라는 도시가 남긴 그 시대의 문화와 기억을 맛보는 일인 셈이다.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맞은편, 타이완의 청천백일기 문양이 여전히 남아 있는 1950년대 유럽 스타일 건물, 거기 들어선 ‘더 스팟 패뷸러스’는 공간의 오라를 그대로 간직한 카페다. 한때 중화민국(타이완) 네트워크의 흔적이 머물던 건물은 오늘, 커피와 디저트를 올리는 무대로 쓰인다. 명동 거리의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도심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에 작은 즐거움을 더한다.
1966년부터 오랜 시간 한 그릇의 상징이 된 ‘명동교자’ 본점은 명동의 아이콘이다. 칼국수와 만두라는 단출한 메뉴 구성이지만 마늘 맛이 알싸한 김치로 서울의 기억을 각인시킨다. 명동의 밤을 즐기고 싶다면, 자개장롱 닮은 비밀스러운 문을 찾아보자.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스피크이지 바 ‘명동 숙희’가 있다. 한 잔의 칵테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곳은, 거리의 활기와 정적이 공존하는 명동의 또 다른 얼굴이다.
- 글. 노소영
- 사진. 장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