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학, 여백
한국인에게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감상자가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남겨둔 미완의 영역이다. 여백은 인간이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완결하기보다, 자연과 시간의 흐름이 그 일부를 완성하도록 허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여백은 단절이 아닌 연결을 위한 공간이자, 비움을 통해 의미가 확장되는 지점이다.
- Gradation K는 전통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이 깃든 미의식을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칼럼이다. 다섯 번째 주제는 ‘비움으로써 채운다’는 ‘여백(餘白)’이다. 비워야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감각이자 미학으로서 여백을 살펴본다.
보이는 세계 너머의 세계
암시적인 마음 공간, 여백
여백(餘白)은 여실(如實)과 상대적이다. 그냥 물리적으로 텅 빈 공백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여백은 ‘두 눈에 똑똑히 보이는’ 여실을 전제로 의도적으로 비워낸 암시적인 마음의 공간이다. 그래서 여백에서는 대상을 안 그렸지만 대상은 여전히 마음속에 있다. 지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氣)라는 관점에서 리(理)와도 보완적이다. 그래서 여백인 음(陰)이 양(陽)과 둘이 아니라 하나로 간주된다. 동양의 일원론적 사유다. 여백은 단지 형식의 문제를 넘어, 서양의 이원론적 사유와 대비되는 동양의 ‘마음의 철학’이자 ‘존재의 미학’이다.
붓이 멈춘 자리, 자연이 말을 건다
1751년(영조 27), 76세 말년의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를 보자. 한여름 지루한 장마가 지나가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더없이 맑게 갠 인왕산의 인상을 필묵만으로 훤하게 드러냈다. 당시 〈승정원일기〉는 지루한 장마가 윤달 5월 25일 오후가 돼서 갰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인데, 비가 갠 뒤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처럼 대자연이 품은 순수미의 결정을 겸재가 순간 포착해 냈다. 여기가 겸재 마음이 의탁된 물아일체의 지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백에 방점을 두고 그림을 좀 더 뜯어보자. 먼저 겸재의 대담한 농묵(濃墨)과 담묵(淡墨)의 반복 붓질이 눈에 확 들어온다. 겸재만의 묵직한 적묵법(積墨法)이다. 붓도 대지 않았지만, 비에 젖어 검디검은 바위산을 가로질러 희디흰 운무가 자욱하게 화면 한가운데로 흐른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흰 바탕(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기본이 중요하다는 뜻]의 관점에서 〈인왕제색도〉의 여백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여실한 것은 바위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회사의 영역이다. 여백은 운무로서 후소, 본바탕에 해당한다. 여기서 소(素)는 한지의 물성으로 인간의 감성이기도 하다. 바로 물아일체다. 이런 맥락에서 〈인왕제색도〉는 인왕산이라는 형태를 겸재가 고도의 음양 철학으로 추상화해 낸 철학 그림으로 다가온다. 지필묵이라는 물성이 겸재의 감정이고 정신이 되는 이유다.
획과 획 사이, 마음이 숨 쉬는 공간
글씨야말로 여백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필획(筆劃)은 여백의 집에서만 살 수 있다. 추사체(秋史體)의 미학 또한 여백의 아름다움에서 발원된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말년작 〈學爲儒宗(학위유종)〉이나 〈板殿(판전)〉과 같은 현판 글씨가 그것이다. 〈학위유종〉은 글자 그대로 ‘학문은 유학(儒學)이 근본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추사는 그 의미를 단순히 문자로 새기지 않았다. 그는 고예(古隸)의 법도를 따르되 균형을 일부러 깨뜨리고, 획의 무게와 간격을 파격적으로 변주함으로써 문자의 형상을 해체하고 새로이 구성했다. 글자는 뜻을 담는 기호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그림이 된다.
여백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면, 글자의 내용보다 필획 사이에 숨 쉬는 기운이 먼저 다가온다. 붓의 ‘펴고 굽힘’ 속에서 추사의 정신이 호흡하고, 그 사이의 공간에서 생동하는 기운이 예술의 중심이 된다. 추사는 이미 100여 년을 앞서 19세기에 로버트 마더웰과 같은 서구 추상표현주의 본질인 필획의 굴신을 이야기하면서 글자가 아니라 그림임을 선언한다. 여백 속에서 탄생한 추사체는 시공을 초월한 유희의 미학, 즉 갓난아이의 천진함으로 되돌아가는 적자미학(赤子美學)의 경지에 도달한다.
- 글. 이동국
- 이동국은 현재 경기도박물관 관장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35년 동안 학예연구사로 활동했으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및 문화재청 심의위원, 경기도박물관 유물평가위원을 역임했다.
달항아리, 여백이 빚은 한국의 아름다움
높이 41cm, 입지름 20cm, 바닥지름 16cm, 몸통지름 40cm로 17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조각·공예관 ‘도자공예-분청사기-백자’실에서 미디어아트 작품과 결합해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 Jo Jiyoung
©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 Koo Bohnchang
한국의 전통 도자기 가운데 유독 마음을 사로잡는 존재가 있다. 흰빛의 둥근 몸체, 달빛을 닮은 고요한 표정 그리고 완벽한 대칭이 아니기에 오히려 더 따뜻한 곡선을 지닌 도자기, 바로 달항아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리움미술관이나 호림박물관을 찾은 이라면 한 번쯤 그 앞에 멈춰 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커다란 항아리가 풍기는 고요한 아름다움은 단순한 도자기의 차원을 넘어 한국 미의식의 정수를 담아내고 있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백자대호(白磁大壺)다. 달항아리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자로 알려진 우현 고유섭(1905~1944)이 1930년대에 제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 사상가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는 이 도자기에 매료되어 조선 예술을 연구했으며, 일본의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달항아리를 가리켜 동양사상의 핵심인 무(無)와 공(空)이 구현된 매체라고 표현했다.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버나드 리치(1887~1979)도 “행복 한 조각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라며 달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니 이미 이른 시절부터 달항아리는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박한 도자기에 어째서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을 만든 장인은 각각 따로 빚은 두 개의 반구 모양을 하나로 연결하여 완성했는데, 그래서인지 항아리는 완벽한 원구(圓球)가 되지 못하고 약간의 비대칭을 남겼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생명감으로 재생(再生)했다. 이는 마치 둥그런 보름달이 완벽한 대칭의 구가 아닌 것과 같다. 천연의 아름다움, 그것이 달항아리의 미학이다. 진나라 시인 맹가는 “관악기나 현악기의 소리보다 인간의 목소리가 더 아름다운 까닭은 자연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꾸밈을 덜고 자연에 닿을수록 더 큰 울림을 느낀다는 이 통찰은 동아시아 미학의 근본 정신을 드러낸다. 완벽한 대칭을 벗어난 달항아리의 곡선이 오히려 더 따뜻하고 생명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달항아리는 서민과 귀족 모두를 아우른다. 왕실의 제례나 연회에서 사용됐던 동시에 사대부의 일상에도 늘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대개 이름을 남기지 못한 무명(無名)의 도공들이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옛사람들이 지닌 소박한 미의식이 그토록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에서 우리 내면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순수한 마음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며, 꾸밈없는 진실함만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달항아리의 곡선은 균일하지 않지만, 그 불균형이 오히려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는 한국 미학이 중시하는 비대칭의 조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표면의 순백은 동아시아 미학에서 중요시하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장식 하나 없는 순수의 흰 공간은 보는 이의 마음을 담아내는 무한으로의 공간이 된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며 존재한다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가르침은 달항아리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가 하면 흙과 불, 장인의 숨결이 함께 남긴 미세한 표면의 흔적은 우연과 필연의 놀라운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 Ik-Joong Kang
지난해 루브르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한국의 향기〉에 소개된 달항아리는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관에서도 달항아리를 전시하고 있다. 이는 달항아리가 한국을 넘어 보편적 아름다움의 증언자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항아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한국인의 문화적 자산이다. 한국 현대 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 박서보(1931~2023), 이우환(1936~)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확장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도예가 권대섭(1952~), 이용순(1957~), 최지만(1970~)은 달항아리를 새롭게 창조하여 옛사람의 숨결이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게 한다.
- 글. 이진명
- 이진명은 예술학과 미학, 동양철학을 전공한 큐레이터이자 연구자다. 간송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원,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다.
- 편집. 최진이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