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 December 2026 (Vol. 50 No. 06)

© SWNA

흙이 울리고 시간이 익는 그릇, 옹기

옹기 장인은 흙을 두드려 울리는 소리만으로 그릇의 됨됨이를 가늠했다. 항아리 하나에도 태어난 고장의 흙과 불 그리고 그 울림에 귀 기울이던 장인의 손끝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까닭이다. 냉장고가 장독대를 대신하는 오늘, 우리가 옹기에서 다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그것을 빚고 돌보던 이들의 오랜 지혜와 자연의 이치를 읽어내는 일이다.


땅의 성질을 읽는 손과 귀

옹기는 흙에서 시작한다. 한반도의 흙은 어디서나 같지 않았다. 장인은 제 고장에서 나는점토의 성질부터 헤아렸고, 불에 강한 붉은 질흙과 탄성 좋은 흰 질흙을 섞는 비율부터 빚는 법과 불의 온도까지 모두 그 흙에 맞췄다. 몸체를 쌓아 올리는 ‘타렴’ 방식도 지역마다 달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장인의 몸이었다. 손끝은 흙의 물기를 읽고, 발끝은 물레의 속도를 조절한다.

안쪽은 ‘도개(조막)’로 받치고 바깥은 ‘수레’로 두드리며 벽의 두께를 맞추는 ‘수레질’에도, 언제 불을 올리고 낮출지 정하는 순간에도 기준은 숫자가 아니라 몸에 쌓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작업장에서는 소리도 기술이었다. 흙을 널빤지처럼 늘이는 ‘타렴질’ 때 바닥판에서 나는 ‘촥, 촥’ 소리만 들어도 초보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있었고, 수레질의 ‘터엉, 터엉’ 울림은 독이 커지고 형태가 잡힐수록 크고 맑아졌다. 장인은 그 소리로 흙의 상태를 읽었다.

마지막은 불의 몫이다. 잘 마른 그릇을 가마에 넣고 ‘피움불’에서 ‘큰불’까지 서서히 온도를 올렸다가 서서히 거둔다. 흙과 가마, 불의 기운에 따라 옹기의 빛깔도 달라진다. 화산회토로 빚은 그릇을 잿물 없이 현무암 돌가마에서 구운 제주옹기는 불길과 재가 남긴 노르스름한 빛에서 검붉은 빛까지의 변화로 유약을 바른 듯한 표면을 얻었다.



볕과 바람을 들이는 그릇

제주의 화산회토로 투박함 속 섬세한 미감을 빚어내는 김경찬 작가의 옹기그릇
© Jeju Clay Pottery Lab

옹기를 흔히 ‘숨 쉬는 그릇’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옹기의 중요한 특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질흙 속 유기물 등이 가마에서 타거나 변화하면서 옹기의 조직에는 미세한 구멍이 생긴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구워 조직이 덜 치밀한 질그릇은 기공이 많아 통기성이 높은 반면, 고온에서 구운 옹기는 태토가 치밀해지면서 강도와 방수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모든 옹기는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지 않으며, 필요한 용도와 기능에 따라 서로 다른 재질과 번조법의 그릇을 선택해 사용했다. 옹기의 성질과 상태를 보고 무엇을 담을지 가려내는 살림의 안목이 거기 있었다. 그래서 장을 담았던 독은 장독으로만, 물을 담았던 독은 계속 물독으로만 사용했다. 미세한 기공을 통해 공기와 빛이 드나들면서 이미 담겼던 내용물이 배어나기 때문이다.

옹기는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니라 자연의 조건을 이용해 음식의 시간을 관리하는 도구였다. 그 지혜가 잘 드러나는 공간이 ‘장독대’다. 장독대는 장독을 올려놓는 낮은 축대를 뜻하는데, 보통 볕과 바람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는 약간 높은 곳 또는 지름 20~30cm 정도의 호박돌과 자갈을 깔고 그 위에 판석을 올려 만들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뚜껑을 여닫으며 장과 김치가 익어가는 환경을 조절했고,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장독을 수시로 정갈하게 닦았다. 그러지 않으면 특히 여름철에는 장독 표면에 하얗게 소금쩍(어떤 물건의 거죽에 소금기가 배거나 내솟아서 엉긴 조각)이 피거나 끈적끈적한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릇의 재료와 기공, 햇빛과 바람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의 경험이 함께 작동하는 하나의 발효 시스템이었다.


새로운 쓰임을 빚다

SWNA가 2025년 아름지기와 함께 선보인 ‘장을 위한 옹기와 용기’ 시리즈 중 〈바람의 옹기〉. 전통 옹기의 통기성과 냉각 기능을 살려 야외에서 사용하던 장독을 현대적인 실내 공간에 맞게 재해석했다.
© SWNA
김경찬 작가는 제주옹기의 둥근 형태와 짙은 흙빛을 단정한 오브제로 옮겨왔다.
© Jeju Clay Pottery Lab

20세기 후반, 생활환경이 달라지면서 옹기의 자리도 빠르게 좁아졌다. 상수도가 놓이고 냉장고가 들어왔으며 플라스틱과 유리, 스테인리스 같은 간편한 그릇이 부엌을 차지했다. 물을 길어 나를 일이 사라지자 물동이도, 제주의 허벅(물을 길어 나르는 데 사용한 옹기)도 살림 필수품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늘 우리가 옹기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완성된 그릇보다 그것을 둘러싼 관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땅에서 흙을 찾고 손과 발로 형태를 세우며 불의 기운을 읽던 장인의 몸, 볕과 바람을 살펴 장독 뚜껑을 여닫던 살림의 손길, 작업장을 채우던 흙 두드리는 소리와 사람들 사이의 신호까지, 모두 옹기를 이루던 풍경이었다.

옹기는 고장의 흙과 가마에 따라, 담는 음식과 쓰는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그러니 오늘의 주거 공간에 맞춘 저장 용기나 식탁 위의 그릇으로, 술과 발효식품을 숙성하는 용기로 다시 쓰이는 것 역시 그 오랜 변화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증류식 소주 브랜드 화요는 숙성 공정에 옹기를 들여 술맛을 둥글게 다듬고 있다. 젊은 도예가들 역시 옹기를 박물관의 유물이 아닌 오늘의 그릇으로 다시 빚는다.

제주에서 작업하는 김경찬은 섬의 화산회토를 직접 채취해 고운체로 여러 차례 걸러내며, 제주옹기 특유의 투박한 숨결은 지키되 한층 섬세한 미감을 끌어낸다. 프로덕트 디자인 그룹 SWNA는 옹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오늘날의 생활공간에 어울리는 새로운 쓰임을 제안한다. 전통은 옛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새롭게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이어진다. 흙은 장인의 손에서 옹기가 되고, 옹기는 우리의 손에서 삶이 된다. 우리가 그 손과 소리를 기억할 때, 오래된 옹기 기술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다시 쓰이는 미래가 된다.

  • 글. 이경효
  • 이경효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이다. 제주옹기 연구를 시작으로 지역별 옹기의 조사와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 왔으며, 국립민속 박물관 소장 옹기를 정리·연구하고 관련 자료집 발간에도 참여했다.
  • 편집. 한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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