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 October 2025 (Vol. 49 No. 05)

관찰자에서 플레이어로, 인지 추리 예능의 세계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에 답하는 정덕현 평론가가 K-예능의 오늘을 바라본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그 추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경험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문제 풀이를 보는 것과 직접 문제를 푸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관찰자에서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인지 추리 예능의 묘미는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크라임씬〉, 살인 현장으로 들어가 펼쳐지는 롤플레잉 추리 게임


크라임씬 리턴즈
출연진이 용의자이자 수사관이 되어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 예능 프로그램. 몰입감 있는 롤 플레이와 치밀한 추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동안 시청자는 함께 추리하는 재미를 만끽한다.
© TVING

여기 어느 대기업의 거대한 비리를 눈감아준 대가로 법무팀장 자리를 꿰찬 한 변호사가 있다.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그는 그룹의 핵심사업과 얽힌 굵직한 사건을 맡게 된다. 그는 국선 변호인으로 위장해 법정에 서지만, 실상은 각종 여론전을 펼치며 피고인이 재판에 불리하도록 이끈다. 피고인을 오랫동안 수감시키려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그때, 피고인은 자신의 변호인이 국선변호인이 아닌 대기업 소속임을 알게 되고, 이제는 법정 너머 심리전이 시작된다. 〈크라임씬 리턴즈〉의 도입 부분은 예능이라기보다는 여느 추리극의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극으로 재연된 법정 상황이나 스튜디오에 만들어진 모형 세트에서 현장 조사를 벌이는 장면들이 그렇다. 저마다의 역할을 맡아 일종의 롤 플레이를 하는 출연자들은 스케일과 디테일을 갖춘 생생한 세트로 인해 상황에 더깊이 몰입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사건을 저지른 범인도 있다. 하지만 수사를 하는 탐정이나 다른 용의자들은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게임의 룰은 마피아와 선량한 시민을 나눠 롤 플레이를 하고 누가 마피아인가를 찾아내는 ‘마피아 게임’을 사건 현장으로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수사 끝에 투표에 의해 범인이 결정되는데, 진범이 맞으면 그걸 맞힌 이들이 상금을 나눠 갖고 모두 틀리면 진범이 상금을 독식하는 방식이다.

가위바위보나 제기차기 같은 게임은 본래 예능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승패 자체도 묘미지만 그 승패에 따른 보상과 벌칙의 대비도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박2일〉 부류의 단순한 복불복 게임이 게임 자체보다 그 결과에 따른 자극에 집중하면서 어딘가 익숙해질 즈음, 진짜 머리를 써야 하는 ‘두뇌 예능’의 세계가 열렸다. 〈더 지니어스〉, 〈대탈출〉 등과 함께 〈크라임씬〉도 바로 그 대표적인 두뇌 예능의 하나로 등장해 마니아층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후 시즌 2, 시즌 3이 연달아 제작됐지만 낮은 시청률과 제작비 압박으로 〈크라임씬〉은 결국 2017년 시즌 3 이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지나 JTBC가 아닌 토종 OTT 티빙에서 〈크라임씬 리턴즈〉로 돌아왔다.


OTT 시대, 물 만난 몰입형 예능의 세계


문제적 남자: 수학편
수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문제적 남자〉의 특별판. 날카로운 문제해결력과 팀워크를 통해 수학의 즐거움과 지적 쾌감을 동시에 전하는 에듀테인먼트의 대표작이다.
© TVING

OTT로 돌아온 〈크라임씬 리턴즈〉는 물 만난 몰입형 예능의 세계를 마음껏 펼쳐놓았다. 스튜디오에 비행기 모형을 세트로 들일 정도로 규모를 넓혔고, 사인 추리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인형으로 구현했던 사체도 실제 같은 ‘더미’로 바꿨다. 총 10회, 한 사건당 2회 분량으로 구성해 다섯 개의 사건을 펼쳐내면서, 이전 시즌과 달리 사건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고리를 갖게 만들어냈다. 지상파 개념이라면 이러한 디테일이 마니아적 선택일 수 있었겠지만, ‘선택 시청’으로 분명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소비하는 OTT는 달랐다.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같은 취향을 가진 시청자들을 저격했다. 입소문이 퍼지고, 매주 2회씩 공개될 때마다 프로그램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시청률 같은 지표가 과거 지상파 시절의 유물처럼 여겨지게 된 건, 최근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일반화되면서 생겨난 변화다. 당연히 OTT라는 새로운 환경은 콘텐츠에 대한 다른 요구를 불러일으킨다. 과거 지상파 시절의 보편적인 재미는 OTT로 오면 밋밋한 것이 돼버린다. 예를 들어 단순한 가위바위보 게임 하나로는 게임에 ‘찐’으로 열광해 OTT에서 게임 예능을 찾아보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렵게 된 것이다. 훨씬 마니아적이면서도 깊은 몰입감을 주는 것이어야 선택을 받기 마련이다. 〈크라임씬 리턴즈〉처럼 관찰자가 아닌 플레이어가 돼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 게임 예능이 각광받게 된 이유다.


관찰자 그 이상의
플레이어가 되는 경험

물론 너무 깊게 들어가면 시청자들도 따라 가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너무 쉽게 풀려도 쉬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크라임씬 리턴즈〉는 그 적절한 난이도를 맞추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도무지 도전 자체가 어려울 것 같은 미션(?)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문제적 남자 리부트: 수학편〉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있다. 어찌 보면 예능이 아니라 수학 인터넷 강의같은 이 프로그램은, 정승제라는 스타 강사의 매직 같은 강의를 통해 ‘수포자(수학 포기자)’들도 그 어려운 수능에 나온 미분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연예계 모범생으로 잘 알려진 엑소 수호나 미국 SAT 수학 만점자 출신 존박,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조기입학한 찐 수학 천재 김규민 같은 두뇌들이 출연하지만, 문제만 봐도 외계어처럼 머리가 아프다는 전현무나 배성재 같은 수포자들이 과연 정승제 매직으로 그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풀 수 있을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시청자 역시 처음에는 ‘저런 문제를 어떻게 풀지?’ 싶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저도 모르게 문제를 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OTT가 만들어낸 취향형 콘텐츠 소비는 이제 관찰자 입장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크라임씬 리턴즈〉나 〈문제적 남자 리부트: 수학편〉 같은 참여형 인지 추리 예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마치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 속에서 더 깊은 몰입감을 느끼듯이 이들 프로그램은 이제 시청자를 플레이어로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역시 보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이들 새로운 예능의 세계는 말해주고 있다. 물론 보다 확고한 취향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 정덕현은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기고, 방송, 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TV PREVIEW

© MBC

노무사 노무진

불의에 무기력했던 평범한 노무사 노무진(정경호)은 어느 날 죽음의 문 앞에선다.목숨을 담보로 삶을 되찾은 무진은 유령을 볼 수 있게 되고, 이를 계기로 얽히고설킨 현실 노동문제의 한복판에 들어선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 여러 인물과 사건을 마주하며 때로는 유쾌하게 또 한편으로는 통쾌하게, 노동권의 사각지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 JTBC

딥다이브 코리아: 송지효의 해녀 모험

제주 해녀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의 해양 문화를 소개하는 리얼리티 여행 다큐멘터리 시리즈. 배우 송지효가 진행을 맡아 제주 해녀들만의 전통 잠수 방식과 어업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바닷속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고, 우리가 이 유산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에 관한 질문을 이어간다.

© 2023 American Broadcasting Companies, Inc.

샤크 탱크 시즌 15

다양한 분야의 창업자들이 ‘샤크’라 불리는 다섯 명의 백만장자 투자자 앞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실제 투자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15시즌을 넘어선 지금도 자본, 아이디어, 소비시장과 인간 사이의 생생한 긴장을 전한다.

© Sapiens Studio

사피엔스 스튜디오: #역사읽어드립니다(유튜브 채널)

교과서엔 없는 역사 TMI가 궁금하다면 이 시리즈를 놓치지 말자. 언젠가 한 번쯤 들어봤던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 고전과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사피엔스 스튜디오: #역사읽어드립니다〉에서는 교과서 밖 이야기, 쉽게 지나쳤던 디테일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는 무엇인지’ 되묻는다.

© EBS

위대한 수업 Great Minds

세계 지식의 정수를 담은 강연 시리즈. AI, 인문학, 심리학 등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직접 전하는 통찰이 짧은 시간 안에 응축돼 있다. 교양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바꾸고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새로운 영감을 전한다.

  • 탑승하시는 항공편에 따라 제공되는 콘텐츠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Share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