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이 빚은 하나의 풍경, 밴쿠버
밴쿠버는 가능성을 품은 도시다. 누구든 이곳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로키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캐나다 서부 해안 도시인 밴쿠버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도시와 자연을 오가는 삶이 일상처럼 이어지는 도시다. 밴쿠버에서는 수천 년간 이 땅에서 살아온 퍼스트 네이션스와 유럽, 아시아,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며, 이곳의 토템폴은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캐나다의 ‘문화적 모자이크’를 상징한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어우러지는 태도는 현대 캐나다 사회가 지향하는 형평성, 다양성, 포용성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겹쳐진 시간, 공존의 풍경
밴쿠버국제공항과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토템폴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 온 선주족, 퍼스트 네이션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다. 독수리, 고래, 개구리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육지를 연결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온 신화적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토템폴에 조각돼 있다. 밴쿠버 도심에 위치한 광대한 도심 속 자연 스탠리파크 안 브록턴 포인트에서도 토템폴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들을 지나 해안가 등대로 나오면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퍼스트 네이션스의 국기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캐나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평화적 공존의 미래를 함께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정주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인류학 박물관(MOA)을 찾아가 보자. 이곳은 캐나다 서부 해안의 퍼스트 네이션스 문화를 중심으로, 전 세계 각지의 전통과 현대 원주민 미술품을 수집·연구·전시하는 공간이다.
19세기 캐나다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자 많은 인구가 밴쿠버로 유입됐다. 개스타운은 밴쿠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 지역 중 하나로 빅토리아풍의 붉은벽돌 건물들과 현대적 도시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곳이다. 개스타운을 걷다 보면 이곳의 상징인 고풍스러운 대형 증기 시계가 나타난다. 시계는 15분마다 증기를 뿜어내며 기적을 울리는데, 매시 정각에 음악에 맞춰 분출되는 증기의 양과 기적 소리가 가장 길고 멋지다.
캐나다를 동과 서로 연결하며 캐나다가 지리적 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한 마지막 철로 공사의 주역은 초기 중국인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의 정착지가 밴쿠버 차이나타운 거리다. 이곳에 가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중국식 정원을 비롯해 조밀하게 들어선 식당과 상점들을 볼 수 있다. 캐나다 다문화 역사의 중요한 장소로, 2011년에 캐나다 국립 사적지로 지정됐다.
자연이 일상이 되는 도시
도심 어디에 있든 5분만 걸어가면 초록의 공원이 나타나는 밴쿠버에서 자연은 삶의 일부다. 잉글리시 베이 비치는 밴쿠버 다운타운 서쪽에 위치한 해변으로, 밴쿠버 대표 일몰 명소이자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휴식 공간이다. 해변 산책로와 자전거길,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한편 도심과 가까우면서 자연 속 은밀한 쉼을 원한다면 밴쿠버의 숨겨진 보석인 딥 코브로 가보자. 산, 숲, 바다 그리고 마을이 한데 어우러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파도가 잔잔한 만 안쪽에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고, 다양한 수상 레포츠 장비 대여 및 클래스를 제공하는 딥 코브 카약 센터가 있다. 하이킹을 하거나 카약, 패들 보드를 타고 잔잔한 수면 위를 노 저어 가보거나, 느릿한 템포로 마을을 거닐며 갤러리와 작은 상점을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짧지만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울창한 숲에서 짜릿한 스릴을 느끼려면 캐필라노강이 만들어낸 깊은 협곡 위의 현수교를 걸어보자. 22층 빌딩 높이에서 경험하는 발아래 흐르는 강물과 머리 위를 스치는 바람은, 아찔한 고요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이 다리는 자연과 모험, 원주민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캐필라노강의 또 다른 경이로운 모습은 생명 탄생과 순환의 기적이다. 바다로 나갔던 어린 연어들이 수천 km를 거슬러 다시금 자신이 태어난 작은 강으로 돌아온다. 이곳 캐필라노강은 그들이 떠났던 시작이자 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여정의 장소다. 클리블랜드 댐으로 인해 강 상류로 향하는 연어들의 이동이 어려워지자, 캐필라노 연어 부화장을 설립하고 이들의 귀환을 도와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이 필요 없는 풍경
도시적 서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로키로 향하는 여정에 올라보자. 따사로운 가을볕 아래 계곡의 노랗고 붉은 단풍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호수와 설산, 빙하가 펼쳐지는 광활한 원시의 로키를 만나게 된다. 로키의 관문이자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인 밴프의 가을은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짧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초록의 침엽수림 사이로 보이는 샛노란 단풍은 회색 바위에 거칠게 칠해놓은 유화의 마티에르 같다. 10월 초가 되면 산 정상에는 이미 첫눈이 내린다. 눈 덮인 산과 황금빛 나무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순간,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간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올해는 태양 활동의 극대기로 오로라를 관측하기에 최적기라 하니, 밤하늘에 형형색색 빛이 춤을 추듯 퍼지는 마법과도 같은 경험을 기대해 본다.
청명한 푸른 하늘 아래, 에메랄드빛 레이크 루이스가 산자락에 고요히 안겨 있다. 호수의 신비로운 물빛은 맞은편 산 정상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낸 것이다. 이 호수를 감싸 안은 로키산맥의 웅장한 봉우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하루에 수천 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곳답게 단연코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칭송한다.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피아노 연주곡인 ‘레이크 루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레이크 루이스와 쌍벽을 이루는 호수가 있으니, 그건 바로 모레인 레이크다. 이곳은 도로의 눈이 녹는 시기에만 개방되는데, 마치 현실과 동화 사이의 경계에 잠시 멈춰 선 듯한 느낌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열 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싼 풍경은 자연이 만든 성벽처럼 장관을 이룬다. 이 풍경은 한때 20캐나다달러 지폐 뒷면에 그려졌을 만큼 유명하며, 많은 이에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풍경’으로 손꼽힌다.
- 김옥선은 교육과 환경 분야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온 작가다. 〈조선일보〉, 대한민국 환경부 웹진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YTN 월드의 캐나다 캘거리 리포터로서 다양한 현장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4 Hours in Vancouver
밴쿠버 여행의 디테일을 높이기 위한 스폿 5
UBC 인류학 박물관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캠퍼스 내에 위치한 세계적인 인류학 박물관으로 북미 서부 해안 퍼스트 네이션스 문화를 중심으로 특히 캐나다 원주민(퍼스트 네이션스)의 예술과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다. 웅장한 토템폴과 조각들이 전시된 전면 유리 홀은 대표적인 하이라이트다.
- ✓ moa.ubc.ca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 투어
현지 미식 전문가와 함께 밴쿠버의 대표 명소인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을 둘러보며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20여 종의 로컬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투어. 치즈, 훈제 연어, 사워도 빵, 싱글 오리진 커피 등 다양한 식품을 시식하고 생산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 투어로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소그룹 프로그램이다.
- ✓ foodietours.ca
아쿠아 버스
밴쿠버 도심과 그랜빌 아일랜드, 예일 타운, 사이언스 월드 등
주요 수변 지역을 연결하는 소형 수상버스. 해안을 따라 여덟 개의 정류장을 순환한다.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인기 있는 교통수단으로, 짧은 이동 중에도 밴쿠버의 수변 풍경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 ✓ theaquabus.com
밴쿠버 아트 갤러리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캐나다를 대표하는 화가 에밀리 카의 작품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외관은 고전적인 건축양식을 따랐지만 광장에선 다양한 거리예술과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 ✓ vanartgallery.bc.ca
스티브스톤 빌리지
리치먼드 남단에 위치한 고즈넉한 어촌 마을로 매력적인 영화 속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신선한 해산물 직거래 시장과 역사적인 어업 역사를 보여주는 유산, 바다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며, 실제 밴쿠버 지역에서 가장 ‘스크린에 자주 등장하는’ 어촌 마을이다.
- ✓ stevestonharbour.com
- 글. 김옥선
- 사진. 한성필
- 대한항공은 인천 — 밴쿠버 직항 편을 주 11회 운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