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학, 겸양
한국인의 정서 저변에는 ‘겸양(謙讓)’ 이라는 미의식이 흐른다. 겸손하고 사려 깊은 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배려하며 물러서는 미덕. 이는 단순한 예의나 도덕을 넘어, 자연을 닮은 삶의 방식이자 지혜로운 선비 정신으로 이어진다. 과하지 않고 절제된 아름다움, 꾸밈없고 조화로운 것에서 완성되는 한국의 미감은 전통문화 전반에 겸양의 철학이 스며들도록 해왔다.
- Gradation K는 전통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이 깃든 미의식을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칼럼이다. 네 번째 주제는 한국인의 정서 깊은 곳에 자리한 미의식, ‘겸양(謙讓)’이다. 겸양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서며 타인을 배려하는 겸손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의미한다.
사심 없이 비워낸 유연한 내공
‘겸양지덕(謙讓之德)’, 겸손한 선비의 덕목
우리는 SNS ‘좋아요’ 버튼으로 매 순간 나를 증명해야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생각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지를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확인받으며 살아간다. 오래전 우리 선조들은 ‘겸양’이라는 선비 정신을 가지고 꼿꼿하게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묵묵히 걸었던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우고, 언제나 타인을 배려하며, 상대방에게는 균형 있는 태도로 예(禮)를 갖추었다. 100가지 지혜를 알고도, 100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내세우지 않았던 선비들의 절제된 덕목은 우리 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웠다.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뿌리내리면서 안방과 분리된 사랑방은 남자들의 생활공간이자 학문을 배우고 취미를 즐기며 손님을 맞이하는 접객 장소로, 가문의 권위와 위용을 나타내는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이면 서안 앞에 앉아 책을 펼쳤고, 손님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은 격식을 갖춰 소반 위에 올려졌다. 고요한 밤에는 그윽이 비치는 달빛 아래로 시 읊는 소리와 거문고 뜯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뜻 맞는 벗과 담소를 나누며 선비의 덕망과 이상향을 꿈꾸던 장소였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쥐고 있으면서도 더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가지 못한다. 금옥관자가 방 안에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지킬 수 없고,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속되게 여겼던 선비들은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덕으로 누리며 살았다.
‘대교약졸(大巧若拙)’, 소박한 삶의 미학
작은 부분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던 사랑방 가구를 보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사용자의 쓰임을 배려했던 선조들의 따뜻한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사랑방에서 사용했던 가구와 물건은 조선시대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이 엮은 〈산림경제〉 ‘가정’ 편에 잘 나타나 있다. 거문고, 퉁소, 책상, 평상, 의침, 각게수리, 등경, 서등, 연갑, 연적, 필통, 고비, 책장, 매장, 목좌탁, 발, 바둑판, 삿자리, 부채, 약 대롱, 패철, 전반, 나막신, 지팡이, 우산, 삿갓 등 다양한 기물을 통해 사랑방이 다목적으로 사용됐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사랑방은 서양의 침실과 거실, 서재가 모두 통합된 공간이었다.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던 서안은 60cm 남짓한 너비와 30cm 정도 높이의 작은 가구지만 사랑방 공간에서 중심축을 이루며, 앉아 있는 주인이 손님을 맞이할 때 적절한 거리를 유지시키는 역할도 겸했다. 수직과 수평의 선으로 이뤄져 공간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사방탁자는 못이 아닌 사개맞춤으로 이음매를 완성했고, 덧붙인 장석은 화려하기보다는 간결한 형태로 마감했으며, 여기에 붓두껍, 연적 등을 올려두고 감상했다. 주인의 취향을 고려해 다양한 형태와 구조로 만들어진 연상에는 문방사우를 보관했다. 무엇보다 기능성을 고려해 만든 책장은 무거운 책을 수납하기 위해 튼튼한 느티나무로 골재를 만들고, 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오동나무 판재를 사용했다.
사랑방은 작은 공간이지만 모든 물건은 각자의 역할과 용도를 가지고 적재적소에 유기적으로 배치됐고, 이러한 구성은 군더더기 없이 단아한 멋을 한눈에 느끼게 해준다. 자연을 사랑하고 산과 들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격조 있는 생활 방식은 시공간을 넘어 현재에도 충분히 낭만적이기만하다.
寂莫荒田側
繁花壓柔枝
香輕梅雨歇
影帶麥風
車馬誰見賞
蜂蝶徒相窺
自慙生地賤
堪恨人棄遺
고요하고 쓸쓸한 거친 밭 언덕에
탐스러운 꽃송이 가지를 눌렀네
매우 그쳐 향기 날리고
맥풍에 그림자 흔들리네
거마 탄 사람 누가 보아주리
벌 나비만 부질없이 엿보네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참고 견디네
- 글. 장인기
- 장인기는 온양민속박물관 학예사다. 전통 속에 깃든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고자, 한국의 공예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시, 교육, 출판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문화를 국내외에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겸(謙),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한국의 단색화
현대 예술은 점점 더 눈에 보이는 형식을 추구하며 강도 높은 자기과시로 치닫는다. 그러나 동양의 미의식은 오히려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고, 드러내지 않음으로 존재를 입증하는, 겹겹의 층위로 이뤄진 ‘겸허(謙虛)’의 태도로 생명을 이어왔다. 그 미의식은 눈에 띄지 않되 지워지지 않는 은은한 향기, 즉 은수(隱秀)의 품격 속에서 언어 이전의 감응과 떨림으로 다가온다. 겸허는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받아들이는 적극적 윤리적 태도이며, 사람과 사람, 존재와 존재 사이의 숨결을 읽어내는 시적 감응이자 공동체와 우주의 조화를 지향하는 윤리적 지향이다.
이러한 겸허의 미의식은 고대 〈시경(詩經)〉에 나오는 〈석인(碩人)〉이라는 시의 “의금상경(衣錦尙絅)”이라는 시구에서 비롯한다. 화려한 비단옷 위에 삼베 홑옷을 덧입는다는 뜻으로, 단순한 복식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과시의 절제를 통해 미를 가다듬는 동양 미학의 정수를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공자의 손자 자사는 〈중용(中庸)〉을 저술하면서 제33장에서 이를 인용했다. “간략하지만 문채(文彩)가 나며, 따뜻한데도 조리가 있다”라고 하거나, “군자의 도리는 은은하나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리는 현란하나 날로 사라진다”라고 했다. 이 은은함이야말로 겸허한 아름다움이며, 바로 겸이 가지는 내적 품위의 미덕이다. ‘석인’이란 덕이 크고 높은 사람을 뜻한다. 이 시의 주인공은 춘추시대 제나라 귀족 여성인 장강(미상~BC 690)이다. 공자(BC 551~BC 479)보다 100년 조금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장강을 칭송한 시를 다시 음미해 보자. “높으신 임 훤칠한데, 비단옷 위에 엷은 삼베옷을 걸치셨네.” 아름다운 여성 장강은 화려한 비단옷 위에 소박한 삼베 홑옷을 덧입었다. 결혼 예식이라는 규범을 지키면서도 백성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그녀의 아름다운 배려였다.
(오른쪽) 최명영, 〈평면조건 1831〉,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622×2273mm, 2018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중용〉의 “간략하지만 문채가 나며, 따뜻한데도 조리가 있다[간이문온이리(簡而文溫而理)]”라는 문장은 우리나라 단색화의 미덕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한국 단색화 1세대 화가 최명영(1941~)의 그림은 이 겸허의 정신을 가장 철저히 실천하는 현재 사례다. 작가는 표현보다 감춤을, 재현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최명영의 선은 어떤 대상도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이자, 감각의 축적이며, 윤리적 태도가 저절로 반영된 결과다. 그는 화려함이나 재현의 유혹을 끊임없이 거부하며, 자신만의 거듭되는 수행 작업 속에서 내면을 확인하고 또 재확인한 시간의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이러한 미의식은 단지 시와 회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무명의 도공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달항아리 속에 무한한 우주를 담았다. 조선의 풍속화와 민화는 또 어떤가? 겉으로 보기에 소박하지만, 그 속은 한없이 깊은 숨김의 미학을 배태하고 있다.
동양의 겸허는 미의식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차원에서도 작용한다. 〈서경〉의 ‘대우모(大禹謨)’ 편에는 “만초손겸수익(滿招損謙受益)”이라 하여 “가득함(과시, 척하는 것)은 손해를 부르고, 겸손은 이익을 불러온다”고 했다. 이 구절은 단지 인간 사회의 처세에 그치지 않는, 천지가 운행되는 이치이기도 하다. 하늘은 스스로 고요하며, 땅은 스스로 낮다. 바로 이 겸허함이야말로 만물을 품고 존재를 살리는 실제 힘이다. 동양에서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얼마나 현란한가보다 얼마나 깊은가, 얼마나 스며드는가, 자기 안에서 치솟는 과시를 얼마나 절제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겸에 관해 소동파는 다음과 같은 찬사를 단다. “겸손한 자는 높이 있으면서도 빛나고, 낮지만 넘을 수 없는 위엄을 갖추니, 이는 군자의 마무리이자 완성이다.”
- 글. 이진명
- 이진명은 예술학과 미학, 동양철학을 전공한 큐레이터이자 연구자다. 간송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원,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다.
- 편집. 최진이
- 사진. 온양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