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로마
우리는 흔히 미래를 새로운 기술과 혁신에서 찾는다. 하지만 때로 가장 대담한 실험은 오랜 시간이 축적된 도시에서 시작된다. 로마가 그렇다.
길은 사라지지 않았고, 광장은 비워지지 않았으며, 오래된 건물은 새로운 문화를 품었다. 부서진 것은 폐허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무대가 됐고, 낡은 것은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배경이 됐다. 로마는 시간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삶을 겹쳐 쌓으며 미래를 만들어온 도시다. 오래된 도시가 어떻게 미래적인 도시가 될 수 있는지, 로마는 그 질문에 답한다.
과거를 오늘에 쓰는 법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오늘날 이 말이 문자 그대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마의 길은 모든 길의 어머니”라고 한다면 과장이 아니다. 나라와 도시, 사람을 연결했던 로마의 길은 이후 수많은 길의 이정표가 됐다.
로마는 도로를 공공재로 제도화한 최초의 국가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가도 곳곳에 일종의 간이 정류장인 마차 교체소(무타티오)를 설치해 제국의 행정망을 구축했고, 로마 도심에 세운 ‘황금 이정표(밀리아리움 아우레움)’를 기점으로 제국 전역으로 뻗은 가도의 거리를 표시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후 로마는 새로운 길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 위를 다시 걷고 달렸다. 기원전 312년,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만든 ‘아피아 가도’는 지금도 여전히 시민들의 산책길로 사용된다. 로마인들은 이 최초의 로마 가도를 ‘길의 여왕(레지나 비아룸)’이라 불렀는데, 2300년이 지난 지금도 소나무 그늘 아래 깔린 현무암 판석 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연인들이 오간다. 그리고 길 양옆에 늘어선 카타콤과 고대의 무덤들은 이 길이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걷는 길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이후 6000명의 노예가 이 길을 따라 십자가에 매달렸고, 전설 속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 바디스, 도미네)”라고 물었던 곳도 바로 이 길이다.
이 길은 제국의 영광뿐 아니라 패배와 순교의 기억까지 함께 품고 있다. 로마는 불편한 역사까지도 지우지 않은 채 오늘의 일상 속으로 끌어안는다. 지금도 시민들은 아피아 가도를 걸으며 2000년 전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살아간다.
사람을 이어주는 광장
로마를 살아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은 길과 건축물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공동체를 이어가는 광장 역시 로마의 시간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그 출발점이며, 광장이 위치한 카피톨리노 언덕은 유피테르 신전이 있던 자리이자 로마 건국신화와 공화정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로마인들이 이 언덕을 ‘세상의 머리(카푸트 문디)’라 불렀던 이유는 단지 권력의 중심이어서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이 가장 오래 쌓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쇠퇴한 뒤 한때 목초지로 변했지만, 153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방문을 앞두고 미켈란젤로에게 광장을 새롭게 정비하도록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낡은 언덕을 허물지 않고 거기에 완만한 경사의 계단인 코르도나타를 놓아 시민과 순례자가 함께 오를 길을 만들었다. 새로운 광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래된 언덕의 시간을 다시 읽어낸 것이다. 훗날 미국 의사당이 ‘캐피톨(Capitol)’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 카피톨리노(Capitolino) 언덕에서 비롯됐다.
‘캄포 데 피오리 광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품는다. 1600년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당했던 이 광장에서는 오늘도 시장이 열리고, 저녁이면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종교재판의 기억을 품을 자리에서 로마는 오늘의 삶을 이어간다. 과거의 상처까지도 공동체의 기억으로 품어가는 것이다.
‘나보나 광장’은 서기 8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육상경기장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네 강의 분수〉를 중심으로 거리의 화가, 음악가, 시민, 여행자가 한 공간을 공유한다. 고대의 경기장은 사라졌지만, 사람을 만나게 하는 도시의 역할은 200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로마의 광장은 과거의 시간을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늘도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시간을 품은 공간, 새로운 가능성
로마는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오래된 장소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고, 문화를 통해 도시의 시간을 이어간다. 로마에서 문화는 도시의 부가적인 기능을 넘어 사람을 모으고 도시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오스티엔세 지역의 ‘첸트랄레 몬테마르티니 미술관’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1912년 로마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세워진 이곳은 시설과 기술이 낙후되면서 가동이 중단된 뒤 오랫동안 방치됐다. 그러다 1997년 카피톨리노 박물관이 이곳을 임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거대한 터빈과 보일러 사이에 고대 로마 조각상을 전시했고, 이 독특한 조합은 결국 정식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로마는 낡은 발전소를 허물고 새 미술관을 짓지 않았다. 발전소 안으로 미술관을 들여보냈을 뿐이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국립21세기미술관 ‘막시(MAXXI)’ 역시 로마의 옛 병영터 위에 세워졌으며, 낡은 담장과 병영 건물 일부가 그대로 남아 현대건축과 공존한다. 막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렌초 피아노의 ‘아우디토리움 파르코 델라 무시카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당’도 마찬가지다. 딱정벌레를 닮은 세 개의 공연장이 반원형 야외극장을 감싸며 서 있는 이 초현대적 복합 시설은 기원전 6세기 중반부터 서기 3세기 초에 걸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귀족 저택의 유적 위에 세워졌다. 가장 새로운 예술은 가장 오래된 도시의 기억 위에서 비로소 로마다워진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위해서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의 돌길과 광장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정한 미래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며 공동체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도시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약 2800년 동안 살아 있는 도시 로마가 그 여실한 증거다.
- 김상근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르네상스와 동서 문화 교류사를 연구해 온 인문학자다. 16세기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연구로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르네상스 예술과 역사, 종교와 철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강연과 저술로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24 Hours in Rome
카페와 서점, 시장과 골목에서 오늘의 로마를 만나는 하루
로시올리 카페
로마를 대표하는 델리이자 카페인 로시올리.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신선한 페이스트리, 이탈리아식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으며, 출근길 시민과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로마의 일상을 경험하기 좋다.
스파치오 세테 리브레리아 서점
로마의 역사적인 팔라초에 자리한 독립 서점. 건축·예술·디자인·인문 분야를 아우르는 책들과 천장을 장식한 화려한 프레스코화는 오래된 궁전과 현대적인 서점의 독특한 대비를 보여준다. 북 토크와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메르카토 첸트랄레 로마 푸드 코트
2016년 로마 테르미니역 내에 문을 연 대형 푸드 코트. 파스타, 젤라토, 치즈, 와인 등 이탈리아 각 지역의 음식을 두루 맛볼 수 있으며, 전통 식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마크로 현대미술관
2002년 옛 페로니 맥주 공장을 현대미술관으로 재생한 곳. 산업 시설의 흔적과 건축가 오딜 데크가 설계한 현대적 증축이 어우러져 로마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전시와 카페, 서점을 함께 갖춘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오래된 건축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로마다운 도시재생을 경험할 수 있다.
테라차 델 핀초 전망대
빌라 보르게세 공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전망대로 포폴로 광장과 로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해 질 무렵 거리 음악과 함께 노을을 감상하려는 시민과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전망 명소다.
- 글. 김상근
- 사진. 암학현
- 대한항공은 인천 — 로마 직항 편을 주 3회 운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