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 December 2026 (Vol. 50 No. 06)

환대의 도시, 치앙마이

역사가 700년이 넘는 란나왕국의 수도로 기능하며 사람과 문화를 맞아온 치앙마이에는 오래된 환대의 마음이 여전히 사원과 공방, 축제와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유서 깊은 도시가 낯선 이를 맞이하는 방식은 오늘도 일상의 풍경 속에서 계속된다.

화려한 문양의 아치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왓 프라탓도이수텝 사원의 황금 체디

꽃을 놓고, 음식을 차리고, 공간을 장식하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꺼내 입는다. 치앙마이에서 환대는 말보다 먼저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들여 꾸미고, 손으로 만든 것을 내어놓고, 함께 빛을 밝히는 일은 오랜 시간 이 도시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왔다. 사원의 섬세한 장식과 장인의 공예, 마을의 일상과 축제의 불빛까지, 치앙마이의 아름다움은 그저 바라보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전하고, 좋은 것을 나누고, 함께 기뻐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경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문 앞에

치앙마이는 1296년 망라이왕이 세운 란나왕국의 수도였다. ‘새로운 도시’라는 이름 그대로, 기존의 거점들을 대신할 새 수도로 조성됐고, 삥강 유역의 비옥한 분지를 기반으로 이후 수백 년간 태국 북부 정치와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100만 개의 논’이라는 뜻의 란나는 방콕 중심의 시암(태국을 뜻하는 ‘타이’의 옛 이름)과는 다른 언어와 문자, 건축과 예술을 꽃피웠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사람을 받아들이며 만들어진 시간의 흔적은 오늘의 치앙마이 곳곳에 환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환대의 모습은 치앙마이 서쪽, 도이수텝산 중턱 해발 약 1000m 높이에 자리한 왓 프라탓 도이수텝 사원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다. 계단 끝에 오르면 나타나는, 햇빛을 받아 찬연히 빛나는 황금 체디(불탑)와 그 둘레를 지키는 금박 차뜨라(층층이 겹친 우산 모양 장식)의 눈부신 환대. 란나의 사원을 걷다 보면 장식이 가장 섬세하고 화려한 자리는 언제나 방문자를 맞이하는 정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벽 북쪽 바깥, 여행자의 동선에서 조금 비켜난 왓 록 몰리 사원은 결이 다른 환대를 보여준다. 1527년에 세운 붉은벽돌 체디에는 왕족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벽돌과 짙은 색의 목재로 마감한 경내는 화려함보다 단정함으로 방문자를 맞는다. 한편 구시가 남쪽 성문 너머, 대대로 은세공 장인들이 모여 살아온 우아라이 길 한가운데에는 왓 시수판 사원이 있다. 1500년 무렵 망라이 왕조의 므앙깨오왕 시대에 세워진 이 사원은 오랫동안 마을 장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 2008년부터 장인들이 본당 안팎을 은과 니켈, 알루미늄 판으로 덮어나가면서 ‘은 사원’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망치로 두드려 새긴 부조가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햇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건물 전체가 은은하게 빛난다. 마을이 대를 이어온 솜씨를 고스란히 신 앞에 바친 셈이다.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홈스테이 마을, 매깜뽕. 굽이진 길을 따라 늘어선 목조 가옥들은 카페와 공예품 가게를 겸한다.
전통 사원 장식에서 착안한 마이암 현대미술관의 거울 타일 외관. 빛과 지나는 풍경을 그대로 비춘다.
종이등이 내걸린 반깡왓 예술가 마을의 야외 원형무대. 작가와 방문객이 함께 머무는 공간이다.
손글씨가 가득한 벽에 각자의 마음을 보태는 방문자들

손끝으로 잇는 어제와 내일

수려한 사원을 쌓아 올린 란나인들의 솜씨는 오늘날 치앙마이의 공예로 이어진다. 구시가 동쪽으로 뻗은 산깜팽 길을 따라가면 직물, 은세공, 목공, 도예 등 다양한 분야의 공방이 길게 늘어서 있다. 길 초입, 구시가에서 9km 남짓 떨어진 보상 우산 마을은 마을 어귀부터 색색의 종이우산이 꽃처럼 펼쳐져 있다. 우산 하나하나가 여러 손이 오랜 시간 함께 들인 정성의 결과다.

붓끝에서 피어나는 꽃무늬를 보고 있으면, 이 우산이 햇빛과 비를 가리는 도구이기 전에 누군가의 머리 위로 펼쳐 드는 환대의 마음임을 알게 된다. 손으로 짜고 물들인 란나 직물, 두드려 문양을 새긴 은세공 제품, 나무를 깎아 만든 공예품과 흙으로 빚은 도자까지. 산깜팽의 공방들은 같은 마음을 저마다의 재료로 건넨다. 사원 박공의 덩굴무늬가 직물 테두리로, 법당 문의 조각이 생활 가구로 옮겨 앉은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이 길의 즐거움이다.

옛 공예의 길 한편에는 뜻밖의 풍경도 있다. 2016년 문을 연 마이암 현대미술관은 3000m2 규모의 옛 창고를 개조한 공간으로 전통 사원의 장식 기법에서 착안한 거울 타일 외관이 인상적이다. 하늘과 나무, 지나는 사람을 비추는 건물은 과거의 장식 언어를 현대건축으로 옮기며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도시 서쪽 도이수텝산 자락의 반깡왓 예술가 마을도 있다. 도예가 나따웃 룩쁘라싯이 2014년 만든 이곳에는 도자와 공예 공방, 갤러리와 작은 서점, 카페가 들어서 있다. ‘나눔’을 중심에 둔 이 마을은 전통을 재현하는 대신 자기 세대의 방식으로 란나의 환대를 이어간다.


빛으로 환대하는 도시

한 해 중 치앙마이가 가장 환하게 방문자를 맞는 때는 태국 음력인 12월 보름, 양력으로 대개 11월 중순에서 말 무렵이다. 이 시기 태국 전역에서는 바나나 잎을 연꽃 모양으로 엮은 작은 배에 초와 향을 꽂아 물에 띄우는 러이 끄라통이 열린다. 한 해 동안 물을 쓰게 해준 데 감사하고, 묵은 액운을 흘려보내며, 새해의 복을 비는 의식이다. 같은 때 치앙마이를 비롯한 북부에서는 란나 달력으로 ‘2월 보름’을 뜻하는 이뼁 축제도 함께 열린다.

축제의 문을 여는 곳은 구시가 동쪽의 타패 게이트다. 란나 시대 도시의 동쪽 관문이었던 성문 앞 광장은 축제 기간 내내 퍼레이드와 공연,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거리마다 란나식 종이 등과 깃발이 내걸리고, 집과 사원 문 앞에는 ‘팡 쁘라띱’이라 부르는 작은 흙 등잔이 줄지어 놓인 채 불을 밝힌다. 밤이 깊으면 풍등 ‘콤로이’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오늘날 대규모 풍등 행사는 항공 안전을 위해 도심이 아닌 지정된 장소에서 열리지만, 수천 개의 불빛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장관은 여전히 이 도시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같은 밤 삥강에서는 물 위로 빛이 흐른다. 하늘로 올려 보내는 빛과 물에 흘려보내는 빛이 한 밤을 나란히 밝힌다. 하늘과 물 위로 빛을 띄우며 서로의 안녕과 소원을 비는 이 밤, 치앙마이는 가장 따뜻하고 환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 박경은은 태국 탐마삿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태 비교언어학과 태국 사회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해 왔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학과 학과장과 동 대학원 인도아세안어문번역학과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24 Hours in Chiang Mai

올드타운의 조용한 골목과 님만해민의 거리, 노을 지는 운하까지 공예와 예술로 새로워지는 지금의 치앙마이를 만나는 하루

깜 빌리지

올드타운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예술·공예·문화 복합공간. 2021년 치앙마이의 건축가 가족이 문을 열었으며, 북부 태국의 대나무 짜임 공예에서 영감을 받은 검은 벽돌 건물 안에 갤러리와 직물 아카이브, 도서관, 카페가 모여 있다. 투명한 지붕을 얹은 루프톱 ‘글라스 파빌리온’에 오르면 붉은 기와지붕 너머로 왓 체디 루앙 사원의 거대한 불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란나 아트 뮤지엄

옛 담배 공장을 개조해 2025년 문을 연 사립미술관. 태국 북부 옛 란나왕국의 신앙과 직물, 공예, 생활사를 10개의 테마로 나눠 각 전시실에서 소개한다. 오랜 세월 수집한 소장품에 프로젝션 매핑과 거울 설치 작품을 더하고, 공장 시절의 산업적 구조를 그대로 살려 건물 자체를 하나의 전시 작품으로 만들었다.

원님만

치앙마이에서 가장 트렌디한 동네인 님만해민 초입에 자리한 야외형 라이프스타일 복합공간. 붉은벽돌 아케이드와 돌길, 시계탑 광장이 유럽의 오래된 마을과 란나 전통 건축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로컬 디자인 브랜드와 공예품 가게, 카페, 레스토랑이 모여 있으며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광장에 야시장이 열린다.

마야 라이프스타일 쇼핑센터

린캄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원님만과 마주한 대형 쇼핑몰. 부티크와 레스토랑, 푸드 코트, 영화관까지 갖춰 님만해민 일대 쇼핑의 중심 역할을 한다. 백미는 루프톱 테라스. 더위가 한풀 꺾인 오후, 도심과 그 너머 산자락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쉬어 가기 좋다.

클롱 매카

옛 치앙마이 성곽도시의 바깥 해자 역할을 하던 운하. 오랫동안 방치됐다가 2022년 창클란 지역 약 750m 구간이 수변 산책로로 새롭게 단장되며 치앙마이의 새 명소가 됐다. 물길을 따라 작은 다리와 카페, 상점이 이어지는데, 해가 지고 이곳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 가장 운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 글. 박경은
  • 사진. 암학현
  • 대한항공은 인천 — 치앙마이 직항 편을 주 7회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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